이영훈「우리, 내일도」
2013년 4월이었습니다. 그때 처음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어요. 몇 가지 검사 끝에 우울증을 판정받았지만 약을 먹지 않았어요. 2016년 6월에야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그야말로 쌩으로 우울증을 견뎠어요.
당시를 회상하면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너무 힘겨워서 뇌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 기억을 삭제시켰나 봐요. 그렇지만 친구 P가 나에게 계속 연락했다는 사실은 기억합니다. P는 제 상황을 듣고 병원에 가라고 말한 친구이자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고 있던 저에게 자주 연락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영훈의 '우리, 내일도'라는 노래를 들었을 때 P가 생각났어요.
툭하면 죽고 싶다는
친구와 함께 밥을 먹는다
살아서 보답해야지
살아야 갚을 수 있잖아
친구는 밥을 맛있게 먹는다
몇 번을 물어봐도
나의 대답은 내일도 나랑 놀자
같이 밥을 먹자
전화가 울려오면
반가운 너의 목소리 잘 지내니
그 후로도 우린 틈만 나면 본다
사랑해야 한다
이 노래의 화자에게는 '툭하면 죽고 싶다'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나 봐요. 그 친구에게 자주 연락해서 같이 밥을 먹자고 합니다. 내일도 자신이랑 놀자고 합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낭떠러지가 코 앞에 있을 때 천천히 뒤로 물러나거나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 있죠. 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끊임없이 발을 헛디디며 낭떠러지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어요. 그럴 때마다 뒤에서 조용히 나를 안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간 사람이 P입니다.
누군가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그것은 자신이 소멸되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경험하는 이에게는 생명을 주는 일이다. (파커 J. 파머,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116~117p)
P는 제 하소연을 들어주었고, 마음을 읽어주었으며, 잊고 있던 강한 제 모습을 떠올리게 해 줬어요. 그가 말한 지난 시간 속 제 모습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니었어요. 용기가 있고, 강하며, 내면의 힘을 가진 존재였어요. 저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약함과 강함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우울증 환자는 고립감을 느끼기 쉽습니다. 그럴 때마다 조용히 옆에 앉아 같이 시간을 보낼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를 변화시키려고 '덤벼들지' 않고, 그가 끝없이 아래로 내려갈 때 조용히 손을 잡아준다면 혹은 다시 올라올 수 있도록 뒤에서 버팀목이 될 수 있다면 그는 힘을 얻을 것입니다.
이번주 '타인의 취향' 매거진 글 발행일이 조금 늦었습니다. 매주 목요일에 글을 써서 발행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느낍니다. 제 게으름도 한 몫합니다. 게다가 불안증이 도져서 책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기존에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번주에는『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를 소개 하고 싶었는데 시작도 못했습니다. 2009년에 산 이 책은 제 오래된 친구같습니다. 수년 전에 밑줄을 그어가며 여러 번 읽었는데 이 책이 주는 커다란 울림과 위안은 앞에 언급한 이영훈의 노래 못지않습니다.
조만간 다시 읽고 소개글을 써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