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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야 Feb 26. 2021

3년간의 고시 생활을 마감하며

처음으로 '내 목소리'에 응답했다

엄마, 미안... 이번에도 안된 것 같애...


3년간의 준비, 그리고 3번째 시험... 고사장을 빠져나와 바로 채점해본 결과 이번에도 불합격이었다. 소식을 묻는 엄마의 전화에 천근만근 무거운 목소리로 불합격 소식을 전했다. 엄마는 괜찮다고 고향에 내려와서 맛있는 거나 먹고 좀 쉬다 올라가라고 몇 번이나 얘기하셨지만, 그렇게 한 달을 나는 집과 편의점만 왔다 갔다 하면서 칩거했다. 그 누구와도 만나고 싶지 않았고,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공인회계사 시험은 명절에 만난 사촌 오빠의 권유로 시작되었다.
"그 시험, 내 친구는 6개월 만에 붙었데. 일도 편하고 돈도 많이 번다더라. 너도 이제 졸업반이니 한 번 준비해봐."
졸업반이라 주변에는 고시나 공시를 준비하러 고시촌에 입성하는 친구들도 생겼고, 대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친구들은 서둘러 스터디를 만들어 토익시험부터 보기 시작했다. 난 뭘 해야 할까 깊이 고민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친구들이 분주히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덜컥 겁이 나고 불안감이 비구름처럼 몰려왔다. 마침 그때 듣게 된 사촌 오빠의 말은 나 스스로를 합리화하기에 아주 그럴듯했다. 6개월만 하면 된다는 것과 '회계사'라는 일명 '사'자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은 그 일이 나와 맞는 일인지, 내가 내 인생의 '업'으로 삼아도 될 일인지 고민하기도 전에  진로를 결정하게 만들었다.
'회계사로 일할지 말지는 붙고 나서 생각하지 뭐. 다들 지금 뭔가 하는데, 나도 6개월만 해서 자격증 따는 것도 나쁘지 않지.'
나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를 이렇게 합리화하고 시작한 시험이 6개월을 훌쩍 넘어 3년을 공부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시험에서 떨어지고 한 달 동안 멍하니 5평 남짓의 좁은 원룸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점에 행정고시를 준비한다며 신림 고시촌으로 들어간 친한 친구의 전화가 걸려왔다.


"나 합격했어!! 우리 학교에서 내가 최연소 합격자래! 꺄아~"
"아, 정말?! 우와 너무 축하해. 아, 잠시만... 나 뭐 하던 중이어서 좀 있다 다시 전화할게."


급히 전화를 끊었다. 왜냐면 이미 내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목소리까지 변하게 만들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의 합격 소식에 너무나 행복한 눈물이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내 자신이 너무너무 초라해서, 너무 보잘것없이 느껴져서... 전화를 끊고 그 자리에서 한 시간을 넘게 엉엉 울었다.

내 시간은 죽은 사람의 시간처럼 아무 일도 없이 흘러갔다. 침대에 누워 그냥 내가 이 침대 속으로 아래로 아래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상하게도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강하게 들면 들수록 마음 깊은 곳에 제발 좀 살고 싶다는 외침도 조금씩 커졌다. 제발 이 늪에서 누군가 날 꺼내 줬으면 좋겠다고... 그때였다. 언제였는지 모르게 서점에서 사놓고 읽지도 않고 처박아 두었던 박웅현 씨의 '책은 도끼다'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많은 자기 계발서들의 제목처럼 위로하는 말투가 아닌 이 책을 왜 그때 짚어 들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마치 누군가의 손을 꼭 쥐어 잡듯이 그 책을 읽어나갔다.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책은 도끼다>에 소개된 <이방인>의 한 구절)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도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나에게 물었다. 그까짓 시험이 뭐라고 시한부 환자처럼 침대에 누워 우울하게 울고 있는 거지? 헛웃음이 나왔다.

그 길로 모든 회계사 책을 정리했다. 커튼을 치고 창문을 열고 그렇게 묵은 기운을 털어냈다. 3년을 준비했던 시험인데 정리하기로 마음먹는 데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와 맞지 않는 옷이라는 걸 3년간 느끼고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과 미련, 두려움으로 모른 채 하고 있었단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세상이 하라는 것이 아닌, '내 마음에 귀 기울이기'의 첫 연습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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