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5도의 위선
치킨 픽업 길이었다. 사각사각 소리가 거칠어 뒤를 돌아보니 길고양이가 스티로폼을 긁고 있었다. 그렇지, 가만히 있기엔 너무 추운 날이지. 영하 5도의 밤이었다. 제 몸보다 큰 스티로폼 박스는 테입에 둘둘 감겨 있고 고양이는 테입을 노리는 모양이었다. 곁에 사람이 서 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열심히 긁고 또 긁었다.
치킨집을 향해 몸을 돌리며 생각했다. 테입을 찢고 상자 안으로 들어가려는 걸까. 아스팔트의 언 기운을 맨몸으로 감당하긴 힘들 테니까. 상자 안은 좀 따듯하겠지. 그 안에 몸을 웅크리고 누으면 꽤 포근할 텐데. 걸음을 재촉하느라 거친 숨이 오가는 마스크 안에 습기가 찼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을 세며 좀 더 빨리 걸었다. 뚱뚱한 파카는 팔과 옆구리가 맞닿아 쉬익쉬익 바람 소리를 냈다. 지금쯤이면 뜨겁게 튀겨진 치킨이 나왔겠지. 이 동네 옛날통닭집은 아찔하게 바삭한 식감을 자랑한다.
뚜껑을 열어젖힌 박스에는 바싹 튀긴 순살 치킨이 넉넉하게 쌓여 있었다. 치킨상자가 든 비닐봉지를 건네받자 열기가 손가락을 적셨다. 온기를 잃고 싶지 않아서 봉지 입구를 묶으려 했더니 튀김이 눅눅해진다며 직원이 말렸다. 나중에야 생각난 라지사이즈 콜라와 무를 추가로 끼워넣고 봉지에 손가락 두개만 가볍게 걸어 가게를 나섰다. 아직도 거기서 스티로폼을 긁고 있으면 어떡하지.
체감한 것보다 걸음이 빨랐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가는 길에 길고양이가 스티로폼 박스를 긁는 걸 봤어. 들어가고 싶었겠지? 영하 5도니까? 고양이들은 원래 긁으면서 놀잖아, 밤에는 더 활동적이고. 남편은 달래듯이 답했다. 열기는 가셨지만 치킨 튀김옷에서는 과장된 효과음 같은 소리가 났다. 신선하게 부서지는 바사삭 소리가 부엌에 파동을 지었다. 세상 부러울 게 없는 식감이었다. 밖과는 달리 부엌의 기온은 너무 포근해서 조금 부담스러웠다. 아스팔트에 머리를 대고 자면 이렇게 바사삭 소리를 내며 죽지 않을까. 실은 치킨을 베고 울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