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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텔라 Oct 25. 2021

병역의무보다 잔혹한 7년

 40년 동안 매월 겪는다. 월경 일수만 세어도 7년이다.

-요즘 행복하니.

K의 조심스런 ‘행복하니’는 ‘할 만하니’로 들렸다. 2년 3개월 만에 구한 직장과 또 머지않아 이동한 다른 직장에서 처우는 이제 좀 나아졌는지 육아는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하루의 매듭은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 총체적으로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럭저럭 행복하다고 말하려다 새로운 정보를 주기로 했다. 


- 뭐랄까, 요즘 부쩍 사회적 비용을 체감하는 중이야.


그랬다. 하필 이직하자마자 억울한 일의 연속이었다. 언젠가 만나게 될 일들이었겠지만, 잔인하게도 입사 직후 당장에 몰아닥쳤다. OT를 중점으로 가볍게 마무리지을 줄 알았던 첫날에 중요한 전체회의가 있다고 했다. 저녁에 열리고 꼭 참석해야 했고 퇴근은 예상보다 한시간 늦어질 것이었다. 입사 첫날이 그렇게 될 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육아하는 상황부터 다급하게 공유해야 했다. 이런식으로 공유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머리카락으로 겨우 가린 코끝의 흉터가 어색하게 드러난 기분이었다. 어차피 얼굴의 중심인 코끝이었으니 조금만 움직여도 드러날 약점이었다. 자녀는 절대 약점이 아니라고 가슴을 다독이고 위로해보았지만 때가 닥치면 손발이 저렸다. 내 취미와 관심사와 역량이 온전히 드러나기 전에, 나를 가장 쉽게 드러낼 그 자리에 내 인생의 기적이자 사랑인, 내 아이가 중심에 있었다. 사랑해서 약점이었다.


아기가 가장 우선입니다. 당연한 말은 이기적이고 진부하고 무책임한 것으로 여겨질뿐이었다. 회사는 집에서 한시간 넘는 거리에 위치하는데 아기는 저 멀리서 영문을 몰랐다. 정시 퇴근을 해도 7시 15분에 겨우 픽업이었다. 어린이집에서는 7시반까지만 돌볼 수 있다고 했다. 내 첫날이 아기의 첫날이기도 했다. 또래 친구들이 부모 손을 잡고 줄줄이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 아빠는 어디있지 의아할 것이었다. 나는 울었다. 사실 출근하는 열차에서 이미 울고 있었다. 불안감이 머리를 짓눌렀다. 공포를 태운 검은 연기가 새카맣게 피어올라 심장이 말라가는데 미안해, 세 음절만 흘러나왔다. 너무 멀어. 언제든지 너를 데리러 갈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늦어. 검은 밤에 너를 찾아가서 미안해. 입사하는 첫날은 온통 죄책감과 눈물이었다.


결국 남편이 상사에게 사정을 말하고 부랴부랴 어린이집으로 출발했다. 외근으로 새벽부터 남양주에 갔던 남편은 함께하는 육아인데 미안할 것 없다고 했다.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거듭 말했지만 사실 남편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이렇게 해야만 굴러가는 내 인생에게 소리 내어 푸념하고 싶었다. 누군가는 미안해해야만 해서 내가 미안하다고 했다. 워라밸이 지켜지는 곳이라는 리뷰들을 확인하고 신나게 지원했는데 막상 내가 속한 부서는 잔업이 많았다. 면접 때 야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말이 찜찜하긴 했었다. 잔업이 있으면 집에서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나는 잘만 했었다. 이전에는 그래왔다.


깜깜한 밤에 아이를 데려오는 일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입사 일주일만에 월경이 시작됐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내 손발을 묶었드랬지. 월경은 평생 불규칙하게 찾아왔다. 43일 만에 맞은 이날은 어느때보다 복통이 심했다. 온 신경이 발톱을 세워 오장육부를 조았다. 월경통은 늘 그렇듯 음침했다. 회사와 집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발을 떼는 걸음걸음은 절망이었다. 열차에 올라서는 폐쇄감이 주는 압박에 흉부가 갑갑했다. 알몸으로 울고 싶었다. 마스크를 찢고 싶었다. 한시간 통근 여정은 기나길어 잔인했고 지금의 고통이 가까운 미래에는 칼 든 강도처럼 나를 헤집어놓을 수 있다는 예감이 미치게 싫었다.


-얼굴이 왜 이렇게 안 좋아요?

그날 아침 나는 의무적으로 의식적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눈꺼풀을 낮게했다. 표정을 만드는 일은 중요했다. 공포와 괴로움은 노출할수록 살아남을 자리를 확보받을 수 있었다. 티를 내야 겨우 숨 쉴 공간이 생겨났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더이상 무리할 수 없음을 기회가 있을 때 확실히 해두어야 했다. 월경 때마다 교양 없이 왜 이래야만 하는지 알면서도 억울했다. 여유 있을 때나 교양이지. 내 불찰도 잘못도 아닌데 수십년을 감내해야만 하는 숙명의 고통, 신이 만들어놓은 현상 앞에 강도처럼 찾아온 고통을 쉬쉬하며 동시에 어거지로 인상쓰고 좀 봐달라는 애원을 하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만 하지? 나머지 생에 도움 안 될 질문을 했다.


-제가 월경 첫날이어서요.

안색을 살피던 여자는 당황한 얼굴로 옆자리 남자 팀원에게 시선을 던졌다. 용훈씨 괜찮죠? 아픈 건 나인데 용훈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녀의 묘한 배려로 내 고통은 쉬쉬해야 할 일이 됐다. 숨길 일도 더러운 일도 아니잖아요, 인류의 반이 당하는 불편인데. 나는 그렇게 불쾌함을 표현하지 못했다. 아픈 동시에 수치스럽고 추접해지는 기분은 이미 충분히 겪어왔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결국 오후의 업무는 집에서 하기로 하고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나섰다. 한시간이 넘는 거리는 다시 고됐고, 조금 전까지 애매했던 공기와 방향이 잘못된 용훈에의 배려와 쉬쉬거림을 삼킨 몸은 자괴감으로 움츠러들었다. 극한 고통은 이틀이면 잦아들겠지만 그래봤자 5일동안 내 몸은 자유롭지 못했다. 이 짓을 사십일 뒤에 또 해야하고 그렇게 적어도 앞으로 십오년은 반복될 것이다.


월경을 배려받아야 하는가. 결함, 손해, 결핍으로 보는 눈을, 그러므로 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존재적 문제로 겪는 필연적 고통을 죄값처럼 숨겨야하는가. 이 정도면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 아닌가. 군대에 의무적으로 가는 군인들이 군 복역 외 아무런 기능을 못하는 시절을 보낸다고 사회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는 건 아닌 것처럼. 언젠가 일어날 수도 있으나 영영 없을지도 모를 전쟁을 위해 혹독한 대비를 하는 군인이 호국에 대한 감사를 받듯. 생명을 잉태하든 안 하든 매달 치열한 준비와 고통을 지나는 여자가 충분히 사회적 고려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고독하게 수십년 겪어내야 하는 고통과 절망을 함께 나누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이 미안해하고 고마워야 하는 것 아닌가. 사회적 비용. 이직한 회사에서 열흘 내내 그 생각 뿐이었다. 육아와 월경.


아랫 세대는 전에 없는 길을 닦고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거나 보수하고 더 나은 복지를 만들고 상품을 기획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윗세대 노년층이 살아낼 세상을 디자인하고 운영한다. 사람이 늙고 병들었을 때 의료원 직원은, 돌봄 서비스 인력은, 거리의 청소부는, 건강 체크용 디바이스 기술자들은, 약사들은, 이동수단을 만들고 운영하는 자들은, 다 늙은 자의 아래세대다. 그들이 있어 삶을 지키고 연명해나갈 수 있다. 그 미래 세대를, 여자들이 낳는다. 낳는 기능을 가졌다는 숙명으로 평생을 고통을 강제당한다.


- 나도 더 잘할 수 있는데.


월경 없는 삶. 거저 누리는 혜택을 너무 쉽게 잊는 나머지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육아와 월경. 사회적 비용은 당신들도 기꺼이 분담하고 감당해야 한다. 개인을 위한 배려가 아니라 바로 당신의 인생과 노후를 위한 숭고한 참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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