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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텔라 Aug 14. 2023

멸망, 누구 좋으라고

너희가 사는 세상은 도대체 왜 이러니

총 칠천원대에 입안 가득 크게 베어 무는 샌드위치와 커피음료를 즐길 수 있는 동네 카페. 에어컨 바람이 추워서 매번 사장님의 가디건을 빌려 입고서 구석 자리에 앉아 생각하고 멍때리고 먹고 마시곤 한다. 월경에 움츠러들 땐 말없이 초콜릿을 건네주고 옥수수라떼를 시키면 내 취향을 기억해 추가 샷을 나란히 내어주는. 조용하고 사려깊고 너그러운 동네카페.


가게에 우리 말고 아무도 없을 땐 가끔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저는 지구가 멸망했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모든 게 깨끗하게 다시 시작되면 좋겠다고요.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멸망을 떠올리기까지 삼켰을 낮은 탄식을 조금 상상했을 뿐이다.


멸망하고 다시 시작해도 지금의 추악과 슬픔이 움트게 되지 않을까요. 멸망의 세대만 죽음으로 희생되고. 그렇게 새 땅을 밟은 세대는 이전의 죽음을 딛고 좋은 날들을 누리다, 다시금 추악과 슬픔의 씨앗을 뿌리고 다음 세대에게 해결해보라고 할 것 같아요. 너희가 사는 세상은 도대체 왜 이러니? 우리 때 땅과 공기는 지금보다 단단하고 달콤했는데. 왜 이런 지랄과 추악이 풍년이래니? 그러면 벌써 지치고 불안한 세대가 조용히 중얼거리지 않을까. 한순간 모든 게 다 멸망되어서 다시 시작되면 좋겠네,하고.


고작 20대 초반의 교사가 죽음을 택하기까지 쌓인 것들은 정작 20대가 빚어놓지 않았다. 그 사람의 죽음에 괴롭고 미안했다. 나의 어린 상처들, 우리의 선생들은 개인적인 의도와 방향대로 화내고 체벌하고 협박했고 희롱했다. 내 뺨을 때렸던 중학교 교사는 “선생님 말에는 ‘네’라고 해야지!”라며 씩씩거렸다. 앞머리를 자르는 게 어떻겠느냐기에 곧 짧은 커트를 칠 거라 그대로 두겠다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두발자유화를 며칠 앞둔 시점이었다. 이렇다 할 규칙과 정도의 제한 없이 과하게 벌하고 과하게 모욕을 주던 선생들이 지금 월 오백은 족히 넘는 월급을 받으며 혹은 교감 이상의 자리를 꿰차고 혹은 안정적인 연금을 따박따박 받으며 안전한 삶을 누릴 텐데. 지금 부모가 된 우리 세대들은 그들 아래서 받은 폭력과 불평등, 부당한 공포가 자녀에게 한 방울이라도 튈까 경계하며 젊은 교사를 겁박하고 더한 권위를 주장하겠다고 혈안인 듯해 보였다. 그들의 위압에 고개 숙였던 어린 날들에게 보란 듯이. 하지만 어른이 된 학부모들이 사회적 입지와 재력과 권력을 과시하며 모욕을 돌려주려는 대상은 그 시절의 촌지 받고 욕하고 때리던, 성희롱하던 교사들이 아니다. 권위를 남용해 악랄했던 이들은 거기 없다. 그들은 더 멀리 더 높이 더 안락하고 안정적으로 살아간다. 우러름과 존경을 강요하던 그때와 비교해보며 옛날같지 않다는 아쉬운 소릴 입에 달고 살겠지만.


나는, 멸망은 우리가 우리만, 고작 살아본 지 몇 년 되지 않은 아이들만이, 맡아 삼킬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원체 말 수가 적은 사장님은 그러게요, 하고는 턱을 괬다. 멸망, 그 짧은 단어를 두고 내 식대로 부풀린 맥락이 민망해지는 데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그날부터인가 카페 사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너무나 오랫만에 그런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는 느낌. 가게 밖 만남을 의도하고 싶진 않다. 절망을 이따금 꺼내어보는, 이대로 충분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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