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4권
맹약의 위반으로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 양군을 지켜보는 신들이 있었다. 그리스 군을 응원하고 트로이아 군을 응징하려는 헤라의 분노는 제우스조차 쉽게 꺽을 수가 없었다.
제우스가 역정을 내면서 말한다.
“정말 이상하구료! 대체 프리아모스와 그의 자식들이 그대에게 무슨 못된 짓을 했다고, 그대는 이렇게 기를 쓰고 잘 지은 일리오스의 도시를 파괴하려 한단 말이오?”
헤라가 답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세 도시는 아르고스와 스파르테와 길이 넓은 뮈케네예요. 이 도시들이 미워지거든 언제든 파괴해버리세요. 그러니 우리 서로 양보하도록 해요. 아테나에게 명하여 혼전 속으로 들어가서 트로이아인들이 먼저 맹약을 어기고 승리를 기뻐하고 있는 아카이오이족을 해치게 하세요.”
그리스 군의 전투력을 상승시키기 위해 트로이아인들이 먼저 공격하도록 아테나를 인간세상으로 내려 보내도록 헤라가 제우스를 설득했다.
전쟁의 신 아테나는 트로이아의 명궁 판다로스를 찾아서 이렇게 말한다.
“뤼카온의 현명한 아들이여! 내 말대로 하시오. 용기를 내어 메넬라오스에게 날랜 화살을 쏘아 보낸다면 그대는 모든 트로이아인들에게서 그중에서도 특히 알렉산드로스 왕에게 사례와 영광을 받을 것이오. 메넬라오스에게 화살을 쏘아 보내시오.”
판다로스는 신의 음성을 알아듣고 메넬라오스를 공격하지만 부상만 입혔다. 피를 흘리고 있는 동생을 본 그리스 군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스스로 진영사이를 걸어 다니면서 동맹군들에게 전투준비를 시켰다.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엄하게 열병하는 아가멤논의 모습은 동생의 부상을 마음 아파하며 복수해주고자하는 형제간의 애틋함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진영의 전사들은 동맹국으로 참전한 사람들이다. 서로 다른 부족국가였던 그들은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다. 그래서 총사령관의 지시가 아닌 그들이 모시는 왕의 명령을 따랐다. 각 나라의 왕들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전투준비를 했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아이스, 묵묵히 명령을 따르는 디오메데스, 자신의 주장은 꼭 하고야마는 오뒷세우스, 조목조목 꼼꼼히 지시하는 네스토르등 많은 왕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가운데 신들도 저마다 응원하는 진영이 달랐다. 잔치상에 황금사과를 던져 세 여신들에게 불화를 일으킨 에리스의 행동은 더욱 가관이다.
에리스는 남자를 죽이는 아레스의 누이이자 전우인데, 처음 고개를 들 때는 작지만 나중에는 머리를 하늘 높이 쳐들고 지상을 걸어 다닌다. 그녀는 이때도 전사들의 탄식을 더 늘리려고 무리들 사이로 돌아다니며 그들 한가운데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반목을 뿌렸다.
우리는 가끔 인생이 생각하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에 의아함을 가질때가 많다.
분명 이성적으로 맞다고 생각했는데 결과가 다를 경우 힘이 빠지고 우울해진다. 인간의 생각으로 이해되지 않는 많은 것들을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간섭이나 정해진 운명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들이 많았었나보다.
판다로스도 당연히 메넬라오스를 공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행동했을 뿐인데 그 결과 그리스군의 분노만 더 크게 만들었다. 더 치열한 싸움의 화근이 되어버린 것이다. 에리스는 인간사이의 불화와 반목을 끊임없이 부추긴다.
불화와 반목의 끝은 어디일까. 둘중 하나는 파멸을 해야만 끝이 날까.
인간의 삶속에서 필연적으로 동행하고 있는 반목, 불화 그리고 분노.
호메로스가 이야기하는 일리아스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은 그것들을 다스리는 방법을 찾게 될 수 있을까. 그 끝이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불화의 여신 에리스에게 이용당하지 않고
끓어오르지 않고
고요히 마음을 다스리고 살고 싶은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