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걸 싫다고는 못 해도, 좋은 건 좋다고 말하며 살고 싶습니다
겨울 여행으로 시옷과 함께 묵호에 다녀왔다. 나는 좋은 기억은 오히려 다시 꺼내어 보기가 두렵다. 굳이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기억을 정리하지 않고, 머리 속에 어떤 좋은 하나의 덩어리로 남겨 두고, 그 덩어리가 나를 부유하도록 내버려두고 싶다. 정돈하려는 순간 그 기억의 덩어리는 어쩔 수 없이 다듬어진다. 좋았던 순간들을 단 하나도 왜곡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그 기억들을 애써 정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 좋았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뜯어 꼭꼭 씹어 삼키고 싶다. 왜 좋았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나노 단위로 잘라서. 기록해두고, 남겨두고 싶다.
지금 나에게 묵호는, '묵호'라는 이름이 붙은 거대한 내 머리 속 솜사탕 덩어리 같다. 어떤 솜사탕 한 덩이가 내 머리 속을 둥둥 부유하고 있다. 무엇이 좋았냐고 나에게 묻는다면, 그 순간 하나하나를 나열할 수 있다기 보다는, 어떠한 총체적 덩어리로 존재한다. 굳이 비유해야 한다면 어렸을 때 먹던 구슬 아이스크림 같다. 다들 마음 속에 그런 건 하나씩 있잖아요.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고, 즐거운 단어들. 나에게는 그것이 구슬 아이스크림이나, 어릴 적 우방랜드에 가서 마주했던 위니비니 젤리 가게 같은 것.
묵호 여행이 좋았다고 말하자마자 이런 이야기를 하긴 그렇지만, 나는 사실 '좋음' 에 대한 감각에 무딘 사람이다. 나는 때때로 어떤 사람들을 보며, “아니, 저렇게 리액션이 좋을 수 있다니!” 감탄을 한다. 언제부터였던건지, 어쩌면 태생부터였는지 나는 모든 것에 무던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당연히 살면서 화가 나는 일이 있고, 웃긴 일도 있고, 좋은 일도 있지만, 나에게 100의 자극이 다가온다면 3-40 정도만 느끼고, 10-20만큼을 표출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먹는걸 좋아하는 사람치고는 살면서 '무진장' 맛있는 음식을 먹은 기억도 없고, 눈물나게 절절히 슬펐던 기억도 잘 없으며, 참을 수 없을 만큼 짜릿하게 즐거웠던 날들도 없다.
그래서 리액션이 좋은 사람들을 보며 언제는 “정말 그렇게 좋은 건가? 사실은 그냥저냥인데 그렇게 표현을 하는 거 아니야?”라고 마음 삐뚤어진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진짜 그렇게 좋았던 것이든, 그 10~20의 좋음을 100으로 뻥튀기 한 것이든, 그 무엇이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나도 더불어 괜히 같이 근사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날 시옷과의 여행도 그랬다. 그는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일에 거침이 없었다. "좋다! 눈물나게 좋다!". 그는 끊임없이 좋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좋다고 계속 말하는 사람 옆에서 나혼자 침묵하고 있을 순 없으니, 그를 따라 나도 좋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보았다. 그리고 웃기게도, '좋다.'는 말을 하니, 진짜 좋았다. 좋다는 말을 뱉기 이전보다, 뱉기 이후가 훨 좋았다.
좋다는 말을 해서 손해볼 게 없는데 왜 자꾸 참고 눌러내며 살았는지 모르겠다. 싫은 걸 싫다고 말 못 하는 삶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좋은 건 좋다고 말하고 살아야지 않을까. 좋다는 말은 많이 꺼낼수록 더 좋음은 분명하다. 시옷과 함께한 묵호 여행이 그 어느 때보다도 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