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양준일이 선하냐구?

할머니가 그렇담 그런거야

by 이작가야

할머니!


ㅡ할머니의 키워드ㅡ

#산부인과, 소아과 전문의 #담배 #입담#유머#재치#위트#장학퀴즈

#Please # 대중문화평론가 #선데이서울#라디오

#연예가중계 #절대음감 #명랑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책을 한 권 쓸 정도다.


나의 언니는 자연미를 의심할 정도로 이쁘다.

언니랑 명동 한복판을 걷다 보면 백발백중 있는 일.

지나가던 사람들이 휙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볼 정도로 이쁘다.

엄마를 닮아 키도 크고 늘씬하다.

아빠를 닮은 나는 키도 작고 날씬하지도 않다.

언니를 본 사람들은 누구나 이쁘다고 한다.

나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귀엽다고 한다.


누군가 언니에게 어김없이 이쁘다고 하는 소리를 들은 나는 그날따라 더 입을 삐쭉 내민다. 눈치가 삼백 단이신 할머니는 언니보다 나를 더 이뻐하신다. 할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증조할머니는 언니만 이뻐하셨다.


''ㅇㅇ는 너무 이뻐요. 첫눈에 홀딱 반할 얼굴이지. 너무 빨리 반하면 싫증이 날 수도 있어요.''

''할머니 나는?''

''너는? 아 동글동글 귀여우니, 봐도 봐도 싫증 안 나는 얼굴이지.''


할머니의 정리 멘트는 늘 깔끔하다.

어느새 내 입은 귀에 걸리고, 내 어깨는 천정에 있다.


''할머니 다리 아프지? 내가 주물러 주께.''






절대음감이 있으신 할머니가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음악이다.

할머니는 절친인 라디오로 음악, 뉴스를 듣는다. TV 프로그램 중 할머니의 최애 프로는 음악프로다. 연예가중계도 꼭 챙겨보신다.

할머니의 신곡 소개는 물론 연예가중계, 스포츠 중계를

나는...

말기를 알아들을 때부터 듣기 시작했다.

기본 팩트에 할머니의 화려한 MSG가 첨가되면 그 맛이 기가 막힌다. 할머니의 매력에 빠진다. 점점 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능, 스포츠까지 모르시는 게 없다. 말하긴 쉽지만, 되기는 귀한단어가 저절로 입에서 나온다.



할머니는 박학다식!




끝없이 샘솟는 할머니의 스토리텔링은 장르도 다양하고 퀄리티도 최상이다. 라디오에서 소개된 신곡 중 할머니에게 선택된 곡은 반드시 뜬다. 할머니는 아파트 상가 레코드 가게에 신곡 테이프를 주문한다. 덕분에 신곡을 알게 된 레코드 가게 사장님에게,

할머니는 당연히 VIP다.

할머니가 신청한 신곡은 한 참 후에야 시중에 선을 보인다. 라디오로 신곡이 알려지고 인기를 얻으면 TV 음악프로 신곡 코너에 나온다.

그땐 그랬다.


신곡이 TV에 나올 때쯤이면,

할머니는 가사를 다 외우시고 다음 곡을 선곡 중이시다. 할머니의 곡선별력은 전문가 수준을 넘으신다.

그리고...

늘 앞서가신다. 그런 할머니가 너무 멋졌다.


그렇게 할머니는 멋지게 내 인생의 아이돌로 자리를 굳히셨고,

어릴 때부터 학창 시절,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서까지...


할머니는 내게 최고의 인플루언서 셨다.





어느 날 할머니가 알려준 신인가수와 신곡 소개...


''패션 스타일이 아주 멋져요. 재미교포라는데 춤도 처음 보는 춤이고 아주 재미나... 가창력은 모 그냥 그런데 하여튼 특이해.''


(양준일ㅡ리베카 (1991):KBS쑈 토요특급)



리베카를 부른 양준일에 대한 할머니의 평이다.


1990년도에 데뷔한 양준일은 1991년 MBC를 시작으로 1집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나 1집 앨범이 실패라고 판단한 그는 활동한 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2집 제작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간다. 1집과는 전혀 색깔이 다른 2집으로 컴백한 1992년, 'DANCE WITH ME 아가씨'가 세상에 나온다. 1993년 활발한 2집 활동과 콘서트도 계획 중이 었지만 비자 문제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가수 활동이 중단된다.


''마이클 잭슨 뺨치게 춤도 잘 추는데...

이래저래 방송금지, 출연금지... 다시 미국 간다네.

재미교포가 그렇지... 한국말까지 다 공부를 하고 왔으면 좋았으련만 사정이 있었겠지.

좀 기다려주면 될 텐데. 마약 한 재미교포 가수도 많은데,

한국말 어눌한 게 마약 한 거 보단 낫지...ㅉㅉ

어릴 때 이민간건 그 사람 환경이지 죄도 아닌걸...

오래 못 버티겠다 싶더니 ㅉㅉ''


할머니의 예상은 적중했다. 양준일에게 가수로서 설 수 있는 무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나마 활동한 부분에 대한 수입조차 없다.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다가 마지막 지하철을 놓쳐버렸지만 차비도 없었던 양준일...

가수 활동을 하는 동안 그는 단돈 만원도 받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나쁜 놈들, 음악이 그리 하고 싶다는 데 기회는 줘야 할거 아냐. 그나마 기획사 놈들은 돈 한 푼을 안 줬다니...

착하게 착하게만 생겨가지고, 부모도 떨어져 있으니 어디다 말도 못 하고... 말이 어눌하니 우습게 보는 거야.

독특한 재능이 아까워 어째요.

한번 떠야 될 텐데 말이야, 쉽지가 않아요.

방송국에서 퇴짜를 놓으니 별수가 있나...''


시대를 앞서간 신여성 할머니는 양준일을 응원하셨다.

과한 춤, 영어 과용, 과한 의상이 방송 출연정지 사유라니...


' 양준일이 과한 게 아니고, 방송국 놈들 처분이 과하지.''


역시 깔끔한 정리다. 명언이다.




몇 년 후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너무 아까운 멋진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더 이상 할머니의 신곡 소개도 연예가중계도 없다. 할머니 덕분에 알게 된 양준일의 존재도 잊었다.


양준일이 데뷔와 짧은 활동기간에.

나는 인생의 중대사인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할머니와 나는 그가 쓴 기가 막힌 가사를 좋아했다.

신여성 의사 출신 할머니와, 영문학 전공인 나는

앞으로 영어 시대가 올 텐데 하며...

Do you speak English가사를 극찬했다.

그리고는...잊혀졌다...




(팬들의 소환으로 지난 1991년12월 귀국한 양준일모습)


30년 만에 팬들의 소환으로 양준일이 귀환했고,

양준일은 내게 할머니와의 추억을 되살려주었다.

1995년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까... 25여 년 만에 할머니의 추억을 곱씹게 된 셈이다. 늘 생각은 하며 살았지만 할머니를 추억하며 글을 쓰고 싶어 졌다


착한 사람이,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잘 돼야 된다는

나의 철학에 양준일의 귀환은 타이밍도 굿이다.


20여 년 서서 강의를 했고 앞만 보고 달렸던 내가,

이제 그만 앉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즈음...

그리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등한시했던 글쓰기를

하기로 결심한 즈음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응원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선한 사람을 응원하라는

할머니의 계시를 생각하며,

내 응원 에세이에

양준일을 추가한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양준일의 겉모습 때문이 아닌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열정과

자유로운 영혼과

선한 인성을 응원한다.


양준일이 선하다는 건...

어떻게 확신하냐고?


내 인생의 아이돌 할머니가

그의 눈이 선하다고 하셨다.

사람은 눈 값 한다고...


할머니가 그렇담 그런 거다.




하나둘씩 썼던

에세이를 차곡차곡

쌓아 본다.

오늘은 그가 자신의 생일을 맞아

19년 만에 신곡이 발표된 날이다.

다시 달려보겠다는 의지를 담아

곡 제목을 정했다고 한다.


Rocking Roll Again

(작사:양준일 작곡:Val Ga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