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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언 Dec 02. 2020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이반 일리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필요’가 현대화될 때마다 가난에는 새로운 차별이 하나씩 더 붙는다.

부자들은 상품 속에 든 필요에 중독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가 만든 환상에 마비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세분화된 전문가 집단에게 우리는 어떤 것을 빼앗기고 있는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면 무능력한 인간 취급받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일리치는 이야기한다.

상품이 과잉 생산된 현대의 풍요 속에서 우리는 매일 소비를 강요당한다. 근래에도 우리는 매번 새로운 건강식품에 대한 이야기를 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다. 새싹보리 분말, 콤부차, 크릴새우 오일, 프로바이오틱스에서 질 유산균까지 뉴스와 각종 생활 정보 프로그램들은 이것의 효능에 대해 방송한다. 시장 경제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가진 '취향'이란 정말 자연스러운 것일까? 자각하는 '필요'란 실재하는 것일까? 나는 항상 의문을 품어왔고, 이 책은 그 의문에 불을 붙였다.

경제 활동이 수반되지 않는 노동을 하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가난한' 예술가... 예술가는 꼭 돈을 벌어야 하는가? 하지만 이미 시장 경제 밖에서 생존할 수 없는 인류로 태어나버린 예술인들은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한다. 같은 원리로 '여성의 유방 건강'을 위해 누구보다 힘써야 할 전문가 집단인 비영리 단체는 활동가들의 생계와 그들의 활동에 필요한 자본을 낙농업계로부터 공급받는다. 이는 각종 연구 결과가 유방 질환 발병 확률에 소의 젖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들에도 불구하고, 요구르트를 섭취하라고 광고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전문가의 이름을 빌려 소비자의 눈을 가린다. '유산균'이 정말 여성의 몸에 좋다면 두유 혹은 코코넛유 등 다른 배양 방법이 있지만 후원사의 것을 마실 것을 권고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일리치의 시간을 넘어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는 단절되어 혼자 사유할 시간을 가질 자유를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넷플릭스, sbs, 네이버 등에 빼앗겼다. 이는 우리의 삶을 더욱 '필요'로 점철시켜 현대화된 가난의 늪으로 끌어당긴다. 단절되어 오롯이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늘어가는 필요에 나를 맞추고 표준화시킨다. 우리가 이 새로운 변화 상태를 망각하고 안주한다면 단절의 박탈은 더 많은 자유의 박탈로 이어질 것이다.


개인이 자신의 권리에 대해 알아차리고 깨어있는 것 만이 사회를 더 이상 전문가 집단이 필요를 세분화시켜 현대 산업사회에 빠지지 않을 방법이다. 그러나 살아남는 방법을 알아버린 전문가들은 이미 재화와 영향력을 손에 쥐고 있고, 이제는 개인이 알아차려 계몽하는 속도를 모르는 새에 자유를 잃어가는/권리에 조건이 붙어 의무가 되는 속도가 추월했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영향력을 가지게 된 (비록 스스로 부여했을지라도) 전문가들은 그들의 지위를 자신들을 정당화시키는 데에 사용하지 말고 이제라도 개인들의 계몽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또한 개인은 전문가가 생존 전략으로 택한 '고객을 전문가로 만들기(5장)'에 자신이 사로잡혀 있는 상태는 아닌지 인지해야 한다. 이것을 인지함은 일리치를 읽음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서문


'현대화된 가난'은 과도한 시장 의존이 한계점을 지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가난은 산업 생산성이 가져다준 풍요의 기대어 살면서 삶의 능력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풍요 속의 절망이다. 지금까지 만족스러운 행위를 표현할 때 쓰던 말은 대부분이 동사였지만 이제는 오로지 수동적 소비를 하도록 고안된 상품을 가리키는 명사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예컨대 전에는 무언가를 '배운다'라고 말했지만 지금은 '학점 취득'이라 말한다. 6

그리하여 전문가가 관한 상품들이 문화적으로 형성된 사용 가치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7

현대의 새로운 가난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상품에 중독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최악이거나 또는 두 가지 다 일 수 있다. 인력과 기술, 건설 자재, 관련 법규와 대출 등은 주거를 인간의 활동 이라기보다 하나의 상품으로 취급하듯 조직된다. 경제 성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곳 어디서든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된다. 8

우리는 자기 안의 재능을 볼 수 있는 눈을 잃었고, 그 재능을 발휘하도록 환경조건을 조절할 힘을 빼앗겼고, 외부의 도전과 내부에 불안을 이겨낼 자신감을 상실했다. 9



1. 위기인가 선택인가


현재의 산업사회에서는 삶이 상품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26

문화란 인간이 행위를 하기 위한 규범이지 기업이 물건을 생산하기 위한 규범이 아니다. 31

상품이 어느 한계점을 지나 기하급수적으로 생산되면 사람은 무력해진다. 자기 손으로 농사를 지을 수도, 집을 지을 수도 없게 되는 무기력이다. 땀을 흘려야 기쁨을 얻는 인간의 조건이 소수 부자만 누리는 사치스러운 특권이 된다. 33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풍요에 사람들이 중독되고 그것이 문화 속으로 한번 베어 들면 ‘가난의 현대화’가 생겨난다. 34

발전이나 현대화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면 그때까지만 해도 시장 경제에서 배제되어도 생존할 수 있던 이들은 구매 시스템으로 끌려들어 가 물건을 사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게 체계적으로 강요를 당한다. ‘필요’가 현대화될 때마다 가난에는 새로운 차별이 하나씩 더 붙는다. 35

전문가들은 그 본성상 일반인들과 공유될 수 없는 그들의 전문 지식을 가지고 필요와 시장이 뗄 수 없게 결합된 이 상황을 정당화한다. 39

최근 들어 사람들 속에서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려는 이들은 세계 어디서나 부당한 차별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43



2. 전문가의 제국


평등한 교육을 약속하는 학교는 불평등한 능력주의 사회를 만들고, 평생 교사에게 의존하며 살게 한다. 54

전문가들에 갖고 있는 특별하고 소통될 수 없는 지식은 단지 무슨 물건을 어떻게 만드는지뿐만 아니라 그들의 서비스가 왜 필요한지에 관한 지식이다. 59

민주주의에서 법을 제정하고, 집행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권력은 시민들 스스로에게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중요 권력을 견제할 시민의 힘은 제약당하고 약화되다가 전문가 집단이 교회처럼 막강해지고부터는 아얘 소멸되었다. 국회가 전문가의 견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게 되면 그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부일지는 모르나, 국민에 의한 정부는 결코 아니다. 67

말이 그렇게 침탈되어 일상 언어는 고갈되고 전문용어로 변질되는 사이 사회는 좀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변질되어 급여를 받고 고용되지 않으면 그 사람의 가치가 박탈되는 특수한 형태의 환경이 만들어졌다. 70

게다가 인간의 필요가 소규모 부품으로 쪼개지고 각각에 필요를 해당 전문가가 관리하면서 소비자는 더 애를 먹게 되었다. 72

명사가 된 필요는 전문가의 형태를 가지고 태어난다. 자신에게 부여된 필요를 무시하거나 확신 하지 못 하는 인간은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반사회적 인간이 된다. 이 시대 모범시민이란 이런 필요를 부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대안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일찌감치 접은 뒤 표준화된 필요만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73



3. 산업사회의 환상

부자들은 상품 속에 든 필요에 중독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필요가 만든 환상에 마비된다. 80

사람은 기업과 전문가가 만든 상품에 어느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자기 안에 있던 잠재력이 파괴된다. 85

자율적 생산과 타율적 생산이 상승효과를 내려면 자유와 관리가 사회적으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자유는 사용 가치를 생산하도록 사람을 보호하고, 권리는 상품에 접근할 기회를 보장한다. 95

구성원 모두가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동등한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권리는 평등의 의미와 현실성을 부여하고 자유는 해방에 대한 가능성과 그림을 보여 준다.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시민의 권리를 시민의 의무로 변형시켜 자유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97



4.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아마도 지금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은 직장에 다니지 않고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일 것이다. 이런 자유는 대다수 보통 사람에게는 점점 더 불가능한 일이 되고 있다. 100

급여를 주는 직장에서 벗어나 일을 하는 사람은 무시당하거나 조롱거리가 된다. 101

선진국에서는 이제 자율적이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 실업을 선택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103



5. 적들의 반격

하지만 한편에서는 전문가가 지배하는 이 시대를 넘어서 우리를 인도할지 모를 법률 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다. 105

전문가의 두 번째 대응 전략은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 문제의 다면적 특성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다양한 전문가를 조직하고 조율하겠다는 것이다. 108

결과적으로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라'라는 표현은 새로 나타난 사기꾼들의 장사 방식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09



6. 현대의 자급

전문가가 고민해 주는 필요와 결핍, 가난의 반대는 현대의 자급 자립이다. 111

나는 정치적 행동으로 일궈낸 '함께하는 절제'로 그런 기술을 공평하고 자유롭게 사용할 때 현대화된 가난을 뒤집을 수 있다고 말했다. 112

산업사회에서 개인은 극단적인 전문화로 훈련된다. 그들은 자기 욕구를 표현하지도 못하고 만족시킬 지도 못 하는 불능 상태가 되어 버린다. 114

생산적인 자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누구에게나 현대적이고 효율적인 도구가 공평하게 보장되는 사회는 그 자유의 바탕이 되는 상품과 자원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115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8199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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