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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뀨언 Dec 02. 2020

오늘날의 종차별주의와 인간 해방

피터 싱어, <동물 해방>

해방운동이란 인종이나 성과 같은 자의적인 특징에 기초한 편견과 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한 요구를 일컫는다.

우리는 우리의 태도로 인해, 그러한 태도에 따르는 관행으로 인해
고통받는 존재들의 입장에서 우리의 태도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순간에도 도처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으며,
부유한 국가는 식용 동물 사육에 역점을 둠으로써 음식을 낭비하고 있다.
제대로 분배되기만 하면 이 세상의 기아와 영양실조를 사라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 해방은 인간 해방이기도 한 것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로 인해 양자가 갖는 권리에는 차등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평등이라는 기본 원리를 한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확장시켜야 한다고 해서 그것이 양 집단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함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이며, 양 집단이 동일한 권리를 가져야 함을 뜻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29


평등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가령 인간과 닭을 비교해 본다면, 모든 닭은 평등하게 깔짚 위에서 뒹굴고 횃대에 올라가 동이 틀 때까지 울 권리를 갖는다. 닭에게 인간처럼 지적 사유를 하는 동물로서 의무교육을 수료할 권리는 필요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인간만이 종의 특성을 고려받아 누릴 권리가 있다. 물론 닭의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모두 이해할 것이다.


동물 권리 운동에서 가끔 반대론자들이 펼치는 모든 논리의 오류는 여기서 범해진다. 각 종에게 모두 똑같은 권리를 주자는 것이 동물 해방운동이 지향하는 바는 아니다. 각 종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종에 따라 평등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타 종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작가는 공리주의자로서 동물의 쾌감, 고통 감지 능력을 근거로 책을 전개한다.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이익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보는 공리주의 입장이다. 그렇기에 동물은 이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과의 '이득 비교'가 가능하다. 아무리 동물을 인간의 이득을 위한 존재로 사용하더라도 인간이 얻는 이득보다는 동물이 얻는 손실이 월등히 높다는 공리주의적 계산이 깔려있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들이 동물을 인간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보고 사용하는 일체의 행동을 금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완독 한 지금에도 저자의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동물의 권리를 이야기 함은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 그의 원리에 따를 경우 가장 큰 허점은 이득이 손실보다 월등히 높을 때는 착취가 가능해진다는 일말의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책 내내 절대 인간의 이득은 동물의 착취로부터 오는 손해보다 높아질 수 없다는 주장을 고수한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 사실이다.


평등은 도덕적 이념이지 사실에 관한 단언이 아니다. Equality is a moral idea, not assertion of fact. 인간 평등의 원리는 인간이 실질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에 대한 기술이 아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처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이다. 33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에 대한 논의의 핵심은 종차별 주의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함이 분명하다. 설령 인간이 좀 더 나은 지적인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그로 인해 인간에게 인간 아닌 존재를 착취할 권한이 부여되지는 않는 것이다. 36



연구를 위한 도구


치료용 의약품 실험이 선의 최대화보다는 이익의 최대화에 대한 욕구의 추동을 받는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121 어떤 경우라도 동물 실험이 우리에게 혜택을 주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방법을 통해 동물 실험의 정당성에 관한 윤리적 질문을 해결할 수는 없다. 이 세상의 주요 건강 문제들은 우리가 어떻게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유지하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방식에 따라 실천하는 데 충분한 비용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적절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167


2장에서는 실험용 동물 사용 실태에 관해 다룬다. 아쉬운 점은 책의 초판인 1970년대 미국의 상황이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장을 읽으면서 한국의 동물권 실황을 다룬 최근 서적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듦과 동시에 굉장히 읽기 어려웠다. 책 속의 실험 내용들은 합리적이지도, 실용적이지도 않았으며 잔인하고 무자비했다.


연구실에서 행해지는 실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학문을 위한 연구, 두 번째는 안정성 시험을 위한 연구이다. 전자의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격 없는 헛 석사 박사들의 연구실 사용허가와 연구비 취득 목적으로 동물이 희생당하는 경우이다. 대체 어미 원숭이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줌으로써 새끼 원숭이를 만났을 때 두개골을 짓밟는다는 사실을 대학에서 연구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이 모든 우스꽝스럽고 쪽팔린 연구실 실험들은 '어미 원숭이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트라우마가 생긴다. 오랑우탄에게도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등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린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이따위 연구는 하등 쓸모가 없다. 인간의 심리에 적용할 필요도 없을뿐더러 만일 있더라도 동물을 희생시키지 않고 연구자가 연구할 분야의 인간을 관찰하면 된다.


두 번째의 경우 안정성 시험이다. 책이 쓰인 당시에는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과 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동물실험을 당연시 여겼다. 그러나 문제는 동물실험 결과가 임상 실험 결과와 매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물에게 무해한 물질이 인간에게 치명적인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 저자는 그 예시를 상세하게 들어가며 의학에서의 동물 실험도 반대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는 2013년, 우리나라는 2018년 화장품 제조 시 동물 실험을 금지하는(완제품과 원료 모두 해당) 법률이 시행되면서 대부분의 제조사는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생산 중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모든 화장품은 동물실험을 거쳐야만 판매가 가능하다. 즉, 우리나라에서 제조되는 제품 중 중국으로 수출되는 제품들은 아직도 동물실험이 자행되고 있다. (중국 수출을 위한 위생허가 등록 여부를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화장품 제조 시 동물실험 금지법의 위반 과태료는 100만 원 미만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지금 공장식 농장에서는


동물실험은 명목상 법이라도 존재하나 가축, 가금은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사육당한다. 또한, 대부분 매체에서 육식을 논할 때 불행한 사육 환경에서 자란 동물의 사체를 먹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마케팅한다. 물론 대한민국 포함이다. 따라서 조금 불편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닭, 소, 돼지의 경우를 모두 풀어 쓰려한다. 우리는 불편함을 느낄 뿐이지만, 이 문제들은 동물들을 죽게 만든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닭의 경우


흐릿한 조명을 비추는 이유는 과밀 사육으로 인해 야기되는 공격성을 감소시키기 위한 것이다. 정상적인 조명이 주어질 경우 과밀로 인한 스트레스와 에너지 자연 배출구 부재로 인해 싸움이 일어나며, 이때 닭들은 다른 닭의 깃털을 쪼아대며, 간혹 죽여서 먹어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로 인해 닭들은 삶의 마지막 주를 거의 칠흑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180


육계는 A4 한 면 정도의 면적에서 7주간 사육된다. 그들은 도축 직전 약 2kg 정도의 무게가 나가는데, 그들에게 허용되는 면적은 터무니없이 좁다. 이런 열악한 사육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닭은 자해를 하거나 다른 닭을 쪼는 (육계 생산자의 말을 빌리자면) '나쁜 버릇'을 갖는다. 이를 저지하는 것은 간단하다. 부리를 자르는 것이다. 부리는 마치 인간 손톱 밑살처럼 연하며 신경이 밀집되어있다. 고통은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병아리는 암수로 선별이 이루어진다. 수평아리는 아무런 상업적 가치가 없기 때문에 버려진다. 대게 살아있는 병아리들은 플라스틱 부대에 버려지고 무게로 인해 질식사한다. 193 오늘날 새장이 이용되는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한 축사에 수용하여 따듯함을 유지시켜 주고, 모이와 물을 제공할 수 있는 닭의 숫자가 늘어나게 되고, 인건비를 절감하는 자동화 장비를 더욱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194


국내 달걀 생산량의 대부분은 위 사진과 같은 '산란 효율을 극대화시킨 배터리 케이지'에서 생산된다. 산란용 병아리 암컷은 앞서 말한 부리 제거를 생후 10일 이내 한 번, 케이지로 옮겨지는 16주쯤 한 번 총 두 번 당한다. 항상 논란이 되는 항생제 덩어리 계란, 조류독감은 모두 이런 과밀한 사육환경에서 자라는 불행한 닭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인간의 욕심으로 효율 극대화의 농장 방식이 닭에게는 큰 불행을 안겨주는 것이다.


요즘은 생산번호 표시제 도입으로 닭알에 표기된 생산 끝번호로 사육환경을 유추해볼 수 있다. 4는 기존 배터리 케이지(철장으로 된 바닥에 겨우 발을 딛고 선 앎탉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서로 쪼아 죽이지 못하도록 부리가 잘리고 생식기는 짓무르고 더 이상 알을 낳을 힘이 없어 '효율적'이지 못하면 죽음을 맞이한다.) 3은 면적이 아주 조금 넓어진 배터리 케이지, 2는 지붕이 있고 깔짚이 있는 평지에서 산란하는 닭이 낳은 알, 1은 방사 닭이 낳은 알을 의미한다. 하지만 1, 2번 알을 구매하더라도 산란을 하지 않는 수평아리는 태어나자마자 분쇄기에 갈려 죽는다는 사실과 암탉은 유전자 변형 전에는 1년에 12-15개의 알을 낳지만 유전자 변형으로 매일 알을 낳도록 계량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인간으로 치면 1년 365일 생리 이틀 차로 살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동물 복지'라는 말로 판매되는 동물성 상품이 사실은 기만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돼지의 경우


오늘날의 공장식 농장의 돼지들은 지푸라기나 깔짚 재료도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제공할 경우 청소가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 214 무미건조하고 과밀한 환경에 수용될 경우 돼지는 닭과 마찬가지로 '나쁜 습관'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은 서로의 꼬리를 뜯는다. 축산업자는 이에 꼬리를 절단해 버린다. 215


돼지는 앞뒤로만 움직일 수 있고 뒤조차 돌 수 없을 만큼 빽빽한 농장에서 사육된다. 이젠 상식으로 알려져 있듯 돼지는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 돼지가 높은 지능을 가졌기 때문에 사육 환경을 더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높은 지능을 가졌기 때문에 과밀한 사육 환경에서 느끼는 고통은 다른 동물에 비해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작년 우리나라를 휩쓴 아프리카 돼지 열병 역시 열악한 사육 환경이 초래한 재앙이다. 인간의 이득을 위해 길러지는 돼지는 전염병 확산을 위해 산채로 땅에 파묻히는데, 인간은 왜 전염병을 겪으면서도 일회용 의료기기와 마스크를 쓰고 그럼에도 살아가려 하는 걸까? 그럴 권리는 대체 누가 쥐어준단 말인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소의 경우


네덜란드의 송아지 고기 생산업자는 고기가 질겨지지 않는 송아지를 오래 살려두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 비결은 송아지를 매우 부자연스러운 환경에 두는 것이었다. 231 정상적인 송아지는 조질 사료에서 철분을 얻지만, 송아지 고기용 송아지는 이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빈혈에 걸린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보면 송아지가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한다고 득이 될 것은 별로 없다. 송아지는 시장으로 팔려나갈 때까지만 살아있으면 되는 것이다. 240
젖소는 첫 번째 새끼를 빼앗긴 후 생산 주기가 시작된다. 출산 후 세 달이 지나면 또다시 임신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이 맹렬하게 이어지는 임신과 수유 주기는 5년 동안 지속될 따름이다. 그러고 나서 소모된 젖소는 도축장으로 끌려가 햄버거나 개 사료용 재료가 된다. 244
축우들은 일반 농장에서 풀을 먹으며 성장하는 경우에 비해 대규모 가축 사육장에서 곡식을 먹고 자라는 경우에 훨씬 빨리 비대해진다. 그렇다고 소가 필요로 하는 조질의 사료를 곡식과 혼합할 수는 없다. 그로 인해 소의 체중 증가 속도가 저하된 것이기 때문이다. 249


양계, 양돈업에 비해 (젖소와 송아지는 제외한다) 축우는 비교적 나은 대우를 받고 있지만, 그들이 본능적으로 필요로 하는 식이섬유가 가득한 먹이를 공급받지 못한다. 이것은 곧 이야기할 세계의 기아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인간이 선호하는 부위의 고기 1kg을 찌우기 위해 곡물 사료가 120-140kg 요구된다.


보통 소젖을 마시는 것에 소의 고기를 먹는 것보다 죄책감을 덜 느껴 락토 베지테리언에서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육우는 그냥 운동량이 적게 길러져서 자유가 없는 채 죽음을 맞이하지만, 젖소는 새끼를 배도록 강제로 임신을 당하고(강간이다), 낳자마자 새끼를 빼앗기며, 고기로 도살될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소의 자연 수명은 20~25년이지만 젖소는 5년이 되면 도살당한다. 젖소로써 젖을 짜내는 데에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치면 30대가 되기도 전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빼앗긴 송아지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암송아지는 어미와 같이 평생 착유를 강요당하는 운명을 맞게 되고, 수송아지는 송아지 고기가 되거나 가축, 반려동물의 사료가 된다.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과격하고 화가 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외면한다고 상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


채식주의자가 된다는 것은 인간 아닌 동물 살해와 고통 야기의 종식을 향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매우 실천적이며 효과적인 행보라 할 수 있다.  280
고기를 더 이상 구입하지 않을 때까지, 그리고 축산 농장의 다른 생산물에 대한 불매운동을 펼치기 전까지 우리 모두는 사실상 공장식 축산의 존속과 번영, 그리고 성장에 이바지하고 있는 셈이며, 음식용으로 사용되는 동물들에게 자행되는 다른 모든 잔혹행위들에 대해서도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282
우리는 이미 고기를 먹지 않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채식에 동참하여 공장식 농장에서 사육되어 음식용으로 도축되는 동물의 숫자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사육되어 도축되는 동물들의 숫자는 그 과정이 얼마만큼 수익성을 주는가에 따라 달라지며, 수익은 제품에 대한 수요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285


고기 생산의 비효율성과 환경 파괴

인간이 먹는 1파운드(450g)의 단백질을 생산하기 위해 성아지가 먹는 단백질은 무려 21파운드(9.5kg)이다. 즉 우리가 투입한 것의 5퍼센트 미만을 되돌려 맡는 것이다. 287
미국 영토의 3분의 1 이상은 목초지로 이루어져 있고, 목초지의 절반 이상에는 사료 작물이 심어져 있으며, 미국에서 소비되는 물의 절반 이상이 가축에게 사용된다. 어떤 측면에서 따져봐도 식물성 식량은 육류에 비해 우리의 자원과 환경에 주는 부담이 매우 적다. 290


미국의 경우를 예시로 들었지만, 한우 생산에서도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며, 우리는 미국산 소고기를 일상에서 쉽게 접한다는 점을 들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 예시이다.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브라질, 말레이시아, 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소 목초지로 사용하기 위해 열대우림을 개척하고 있다. 하지만 소에서 얻게 되는 고기가 그 나라의 빈곤층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아니다. 대신, 고기는 대도시의 부유층에게 판매되거나 수출된다. 292


육식, 특히 축산업은 환경파괴가 심하며, 비효율적이다. 아주 소수의 부자의 식탁을 꾸미기 위해 생산되는 소고기는 지구촌 어느 곳의 굶고 있는 사람들의 곡물을 먹는다. 하지만 그들의 식량을 뺏어먹는 것이 소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아주 소수의 이득을 위해 착취의 고리가 형성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를 끊지는 못하더라도 이왕이면 줄이는 방향으로 개선해 나갈 수 있다.




인간의 지배


성경은 우리들에게 창조주가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즉 인간은 모든 존재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신과 유사한 존재라는 특권을 부여받은 것이다. 320


뿌리 깊은 서구의 종차 별을 기독교적 입장에서 서술한 것이 매우 인상 깊은 문장이었다. 기독교인이 많은 미국에서 이 책이 초판 되었을 1970년대에는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켰을까 감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동물 사용을 정당화하는 논변의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극명하게 볼 수 있다. 반박에 저항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전형적인 특성이다. 이데올로기의 기포가 그 근저로부터 논파될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토대를 발견하거나 논리적 측면에서의 중력의 법칙을 거부하면서 원래의 입장을 고수하려 할 것이다. 359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몇십 년 전부터 시작되었지만 대다수가 동의하지 않거나 외면하는 이유는 이것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특히 식용과 의학 연구용에 있어 동물 사용 제품을 소비하는 것만으로도 동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돼지, 소, 닭이 살아있을 때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비춰주지 않는다. 다만 죽고 난 후 얼마나 영양가가 많은지 육질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가족 모임에서 얼마나 근사한 요리로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만 할 뿐이다. 이것은 개인의 잘못은 아니다. 개인은 어릴 때부터 육식이 당연한 것이며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받기 위한 최선의 수단이라고 교육받는다. 주의 깊게 보지 않는 이상 문제를 인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인식했다면, 작은 실천이라도 해야 한다. 실천하지 않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도덕적 선악을 판단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능한 것이다.




오늘날의 종차 별 주의


분명 동물들은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사료를 고기로 전환시키는 기계도 아니며, 연구를 위한 도구도 아니다. 387 우리가 도덕적인 선택을 할 능력이 없는 존재들의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  379


앞서 말했듯이, 요즘은 책이 쓰인 당시보다는 훨씬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법과 제도는 동물을 인간이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사물로 간주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반려동물 또한 아직 사물인데 인간의 사고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종차별주의적 사고로 인해 사랑받지 못하는 가축, 가금들의 처우는 언제쯤 개선될지 기약할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의도적으로 아주 불쾌감을 느끼도록 썼다. 일단 책의 저자도 독자로 하여금 동정과 사랑보다는 역겨움과 분노가 느껴지도록 썼다. 아마 강한 감정적 자극을 줌으로써 독자들을 계몽시키려 한 것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당장 우리가 사는 환경은 비건은커녕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힘들다. 요즘 유행하는 마라탕은 너나 할 것 없이 소고기 육수로 끓여 깊은 맛을 자랑한다고 하며, 코로나 19 백신 개발을 위해 실험용 비글들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만약 이 감상문을 읽고 조금이라도 불쾌함이나 문제의식을 느꼈다면, 나는 아래 행동들을 실천해 볼 것을 권한다.   


대체 우유 라떼 마셔보기 스타벅스 라테 주문 시 우유 대신 두유로 주문해 보는 것이다.

일주일 한 끼 비건식(혹은 비건 간식) 세상엔 생각보다 맛있는 비건식이 정말 많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것은 곤약 초밥, 과 비건 파스타류, 그리고 특히 비건 빵들은 일반 빵 못지않게 맛있다. 특히 비건 브라우니,,,

동물성 식품 섭취 줄여나가기

이왕이면 비건 인증 화장품, 옷 등 사물 구매하기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나서의 불쾌감 잊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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