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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Oct 25. 2022

<책리뷰> 휴먼 스테인

누가 돌을 던지랴

< 휴먼 스테인 1, 2 > 는 2000년 필립 로스가 67세에 발표한 작품이다. 네이선 주커먼(작가)이 화자로 등장하는 미국의 3부작 ( 미국의 목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 중 하나이다. 클린턴의 지퍼게이트 사건으로 들끓던 1998년 여름, 미 북동부 뉴잉글랜드 지역을 무대로 그려지는 소설이다.


필립 로스의 작품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스토리의 확장성과 디테일에 있다. 주인공의 인생을 통해 가볍고 사소로운 사건을 계기로 인종 차별, 전쟁, 위선, 욕망, 편견, 본성 등 결코 가볍지 않은 묵직한 주제가 지뢰처럼 도처에 널려있다. 또한 그 주제를 풀어내기 위해 동원된 소설 속 인물들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바로 주인공으로 등극할 만큼 서사가 살아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의 독자를 무자비하게 몰아친다. 작품 속으로, 질문 속으로,

나로 살지 못하는 개인의 삶,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진실,

정체성에 대한 한계?

오점 하나로 인생 전체를 평가할 수 있는가?

우리에겐 오점이 없는가?



고전학 교수이자 학장인 콜먼은 자신이 흑인임을 숨기고 백인 행세를 하며 자신의 욕망을 좇아 살아간다. 대학 내 개혁의 실질적인 권력을 가진 콜먼은 모든 것을 다 누린 성공한 삶이었지만, 유령( spook )라는 단 한마디 말 때문에 인생의 뒤안길로 나앉게 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대필해달라고 찾아간 네이선 주커먼과 친구가 되고,

밑바닥 인생을 사는 28살 차이 포니아 팔리와 연인이 되면서 끝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생의 마지막 인연이었던 포니아에게 유일하게 자신의 패싱을 고백했고, 주커먼은 그가 죽고 나서 그 비밀을 알게 된다.


클린턴의 지퍼게이트 사건을 시작으로 당시 미국 사회 민낯을 콜먼의 인생을 통해 그려 냈다.

타인 인생의 오점, 약점을 안주 삼아 물고 뜯는 인간의 본성을 꼬집는다. 완벽한 인생의 얼룩이 오히려 반가운 사람들 그 심리를 비꼰다.

알 수 없는 것, 판단하기 어려운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흑 아니면 백 혹은 옳고 그르다로 편을 갈라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의 이기심을 지적하고 있다.


콜먼은 흑인으로서의 받는 차별과 편견을 피하기 위해 가족과 절연을 감내하고 백인으로 살았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고 살아온 한 평생, 그는 위태롭고 외로웠을 것이다. 본인의 정체성을 들킬 세라 더욱 냉철하게 일에 매진했을 것이고, 그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살아냈을 것이다. 공허한 대지 위에 쌓은 그래서 성공한 인생이었지만, 인간으로서 그는 실패였다. 스스로 만든 덫에 걸려 영혼을 팔아버린 가여운 인간이었다.


콜먼이 쌓아온 인생을 모두 반납하고 만난 포니아 팔리는 34살 미모의 백인 여성이다. 콜먼이 영혼을 팔아서라도 갖고 싶었던 백인이었지만, 불우한 가정환경 탓에 이른 나이에 가출하고, 험한 삶을 살아냈다. 월남 파병 후 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사고로 잃은 두 아이들, 더 이상 바닥이 없을 것만 같은 그녀의 인생이었지만, 그녀는 적어도 영혼을 잃어버리진 않았다.


이 두 남녀의 만남이 통념상 예사롭지 않다. 비난과 지탄과 비웃음을 살만한 조합이기도 하다. 소설에서는 남녀의 육체적 관계가 노골적으로 그려지지만 그 이면으로는 두 영혼의 위로처럼 느껴졌다. 정상적인 관계에서는 두 사람이 만날 인연은 제로에 가깝다. 백인 행세로 누린 성공과 행복만큼 옥죄이며 살아온 자신의 인생과 백인이었지만 상처와 고통을 맨몸으로 맞닥뜨려 살아온 포니아의 인생을 바라보았을 때 느꼈을 감정이 그 둘을 연결해 주지 않았을까?


포니아의 남편은 월남전 파병 병사로 지독한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산다. 미국이 순국 용사 및 참전 용사들에 대한 예우가 각별하다고 한들 그들의 트라우마까지 없애줄 수는 없다. 필립 로스는 작품마다 전쟁의 피해와 상처로 고통받는 인물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그 누구의 승리도 없는 전쟁의 무용함에 대해 상기시킨다. 래스 포니아가 외상후스테레스장애로 일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모습이 자세히 그려져있었다. 가까이에서 전쟁을 겪은 분들의 얘기를 직접 듣지 못했지만, 조금만 시야를 돌려보면 주변에 6.25 전쟁, 월남전에 참전했던 분들이 없지 않았다. 글로 읽은 전쟁, 말로 가벼이 뱉은 전쟁의 참혹함을 방관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점을 다시 한번 반성했다.


인류가 만든 최악의 오점은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전쟁, 폭력은 편견이 빚어낸 괴물이다.

편견으로 인해 오해가 생기고, 그 오해는 상처를 남긴다.

편견으로 인해 차별이 생기고, 그 차별은 비밀을 만든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개인의 고유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규정된 범위를 벗어날 때는 다분히 개인적이기만 하지는 않다.

내가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었다.

나 역시 나를 벗어버리고 도망가고 싶은 날이 때때로 있었다.


평생 비밀을 안고 살았던 콜린 실크의 인생, 그 살얼음판 같은 인생이 안타까웠다.

그 비밀은 본인이 자처하기도 했지만 오롯이 본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엔 우리 사회의 차별은 뿌리가 깊다.


문득,

내가 누군가에게 오점이 되거나, 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물음이 엄습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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