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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Dec 09. 2022

<책 리뷰> 로드

끝내 이어지는 길

길은 결국 어딘가에 닿아 있으며,

어디론가 다다르기 위해서는 거쳐야 한다.

목적지가  반드시 장소일 필요도 없고,

눈에 보일 필요도 없다.

원하거나, 얻고자 할 때 길을 나선다.

가지 않은 길은 있을지라도

가지 못할 길은 없다



<로드> 는 코맥 매카시가 2006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이어 발표한 작품이다. 일흔셋의 나이에 10살 난 아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담아 쓴 소설로 2007년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유명하다.


<로드>는 미래의 어느 날, 밝혀지지 않은 대재앙으로 인해 철저히 파괴된 지구, 빛과 색이 사라진 참혹한 절망 속에서 살아남은 남자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남쪽을 향해 끝없이 걸으면서 겪는 이야기이다.


잿빛 자연은 위협이 되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서로에게 더없는 위험이 되어 죽음은 시도 때도 없이, 최소한의 거리도 없이 길 위에 나뒹군다. 질서와 순서가 무너지고, 살인과 도륙을 일삼는 모든 것이 멈춰버린 지구에는 과거 번영했던 시절의 흔적이 화석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잿빛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 묻혀버린 지난날의 흔적을 캐어 연명하며 길을 걷는다.

한 세상과 또 다른 세상이 끝내 이어지는 셈이다.



추위와 배고픔, 어둠과 정적, 지옥의 모습을 한 세상에서 살아남아 남쪽으로 가야 했던 남자의 처절한 여정은 아버지의 이름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초인적인 것이었다.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다(10p) 남자에게 재앙 속에서 태어난 아들이 삶의 모든 것이었다. 어쩌면 신과 다름없었을 터. 소년이 남자와 죽음 사이의 모든 것이라고(36p) 말하던 여자는 절망뿐인 세상을 스스로 등지고 말았다.


암담하고 험난한 여정 중에서도 밝은 선함을 잃지 않는 아들,

불을 운반한다는 사명으로 아들과 남쪽으로 향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기댈 곳이 없다.

그러나, 아들에게 온전한 보호자와 완전한 수호자로서의 임무를 다한다.

그 힘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책임감을 넘어선 절절한 사랑이었다.

한 인간이 한 인간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




남자가 그토록 염원하던 남쪽에 다다랐지만 그 길 끝에는 아들과의 이별이 기다리고 있다.

아들은 오랫동안 울었지만 신과 말하기보다 아버지와 말하기를 더 좋아했으며 아버지와 말하기를 잊지도 않았으며 멈추지도 않았다.


내 온 마음은 너한테 있어.
늘 그랬어.
너는 가장 좋은 사람이야.
늘 그랬지.
내가 여기 없어도 나한테 얘기할 수는 있어.
너는 나한테 얘기할 수도 있고 나도 너한테 이야기를 할 거야. 314p

코맥 매카시를 알게 된 이후, 노년으로 접어든 작가의 시간과 인생에 대한 통찰이 깃든 문장들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  기억하고 싶은 건 잊고 잊어버리고 싶은 건 기억하지           

*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시간, 나중은 없다. 지금이 나중이다.      

* 사람들은 늘 내일을 준비했지. 내일은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어.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도 몰랐지      

* 살아 있을 때는 늘 죽음을 뒤따라가게 되지    



코맥 매카시의 작품은 건조한 문체와 섬세한 묘사로 기억될 것이다. 결코 길지 않은 문장 속에 담긴 자연은 아름다웠고, 인물들의 투박한 대화 속에는 따뜻한 온기가 스며있다.


정영목 번역가의 작품 해설을 보면 코맥 매카시는 은둔의 작가로 오랫동안 궁핍한 생활을 하며 삶을 버텨오면서 왕성한 활동을 해 온 작가로 소개한다. 때문인지 그가 그려내는 세상은 냉정하고 참혹한 파괴된 모습이지만 그 위에 펄떡이는 심장을 가진 인간은 더욱 강인한 면모를 내보인다.


핏빛과 잿빛 세상에서 오히려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는 작가의 애정과 희망이 어려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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