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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fa Nov 29. 2022

돌고 돌아 찾은 오래된 버튼

집단 미술 심리치료 후기

직전 글의 거짓말쟁이 피노키오와 함께 친하게 지냈던 지인들과 진행한 집단 미술 심리치료 후기입니다. 누군가에게 속았다는 절망감과 화 등을 치유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피노키오의 극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집단 미술 심리치료를 받았다. 심 작가님의 통 큰 결정 덕분에 하마터면 곪아 터질 뻔한 것을 피할 수 있었다.


각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이야기할 때 서로에 대한 시선이 어떤지도 들을 수 있었다. 홀로 굳건해야 할 어른들 사이에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안전하게 자기가 본 세상과 그 안에서 각자가 바라본 피노키오와 서로의 모습을 공유했다.


이 사건과 무관한 다른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을 당할 때 ‘너의 첫 한 마디에 진실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휘둘릴 때가 있었다. 평등하고 진정한 소통에 사용되는 기법이 아니라 상대방을 압박하는 데 사용되는 기법. 그 기법을 꽤 오랜 시간 겪다 보니 최대한 꾸밈없이 직관적으로 생각과 사건을 표현하는 화법을 최선의 것으로 삼았다.


다시 심리상담 시간으로 돌아오면, 사건에 대해 서술하는 나의 첫 문장들은 내 감정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려고 했다. 아주 화가 많이 나 있었기 때문에 뾰족하게 날 선 화는 감출 수 없었지만 화는 증상일 뿐. 상담사님과 함께 상담을 받은 사람들과 그렇게 사건에서 나에게, 표면에서 안으로 차근차근 걸어가기 시작했다. 표면적인 증상이 아닌 각자의 고유한 버튼을 찾으러.


편안하게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에게 자연스럽게 응원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의 오래된 버튼은 공허함이다. 내가 사건 이전부터 가장 걱정하는 건 무조건적인 정성과 마음을 쏟은 관계가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기다림을 어려워하는 이유도 공허함이 찾아올까 두려운 것이었다. 가장 소극적인 모습인 기다림으로 마음을 표현해도 내가 기대하는 결과가 아닌 좌절과 공허함이 거기 있을까 괴롭다. 마음을 표현하고 주고받는 게 당연한데, 이 버튼이 눌러질까 그 근처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있다. 오랜만에 마음을 양껏 표현하고 정성을 쏟았더니 버튼이 다시 눌러졌다.


그런데 사건 이후의 시간을 기록한 지난 글을 보니 생각보다 공허함이 나와 나의 세상을 뒤흔들진 않았다. 상담사님은 힘을 빼는 연습을 하라고, 잘하지 않아도 되는 취미를 가지라고 하셨다. 잘하지 않아도 되는 취미… 당장은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창작자가 아닌 관람자가 된다면, 예술을 감상하는 덴 답도 우열도 없으니 그만한 취미도 없겠단 결론에 닿았다. 마침 사건 직후 마음을 풀기 위해 극에 참여했던 작가님들과 전시를 보고 왔다. 상담이 끝났을 때에도 작가님들은 그런 취미를 함께 하자고 다정히 손을 내밀어주셨다.


상담을 받지 않았더라면 버튼을 더 꽁꽁 숨겨두고 더욱 마음을 닫았을 것이다. 짜증을 버럭 내며 드러나지 않은 증상을 모른 채 트라우마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생각의 틀을 짰을 것이다. 부드럽게, 자연스럽게 길을 거닐며 내 마음의 모양을 바라본 시간이었다.


https://www.instagram.com/p/Cj5Mp9EBGvl/?utm_source=ig_web_copy_link 

상담해주신 이매화 대표님의 간단한 프로필을 볼 수 있는 링크 남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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