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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ndy Dec 18. 2024

마음의 준비

요양원 입소 석 달째

요양원에선 어머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한 듯 하다. 맡겨진 어르신들의 삶과 죽음을 곁에서 겪은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 적어도 나 같은 보호자보다는 잘 알 테니 그런 판단에 강력한 이견을 달지는 못하겠다. 달아서 유익할 일도 없을 것이고.


그런데 이 요양원 참 이상하다. 어르신의 건강에 적신호가 있다고 판단했다면 보호자에게 성심껏 전달하고 그렇게 보는 이유를 말해주어야 할 것인데, 그러지 않고 어머니 얼마나 더 사실 것 같으냐고 나에게 묻는다. 그러고는 보호자님같이 하시려면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실 게 아니라 병원에 모셔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도 담당 팀장이 아닌 다른 층 팀장을 보내서. 병원이란 요양병원을 말하는 듯하다. 요양원에서 나가란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럴 수가 있는가?


나같이 한다는 게 뭘까? 한참을 생각했다. 그들에게 문의를 한 건 있어도 뭐 하나라도 요구를 한 적 없고, 아쉬운 걸 시정해 달라고 말한 적도 없다. 딱 한 가지, 일주일에 한 번 면회를 가서 30분 꼬박 어머니를 어루만지며 대화하는 것 뿐인데, 짐작키로 어머니는 그 때만 각성을 유지하신다. 평소엔 늘 눈을 감고, 와상 상태로 있으신 듯하다. 그래서 케어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그들이 말한 적 있다. 그런데 내가 면회를 갈 때만 정신력을 발휘해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를 위해 면회를 절대 건너뛸 수 없는 나. 이게 비난 받을 일인가?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인가?


나같이 한다는 게 뭘까? 그게 뭐기에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가? 1주일에 1회 면회가 가능하다는 건 그들이 만든 규칙이고, 내가 어머니를 만나고 있는 면회장에 온 원장은 나를 보고 정말 효자다, 상 줘야 한다고 몇 번을 말했다. 지난 주 면회 때도 원장은 그 말을 했고, 그 뒤 같은 장소에서 직원은 나에게 어머니를 요양원이 아닌 병원에 모시라 했다. 사람을 놀리나?


혹시, 내가 그들의 판단과는 달리 어머니가 아직 많이 건강하시다고 믿고 있고, 어머니께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그들에게 원망을 퍼붓거나 무리한 주장을 할 거라고 예상해서 그러는 걸까? 머리 아프니까 내보내자고 판단해서

일찌감치 요양병원 얘기를 꺼낸 걸까? 모시고 나가라는 말일까?내가 그렇게 비칠 만한 행동을 했나? 그런 생각으로 일주일 내내 머리가 아팠다.


오늘도 면회를 다녀왔다. 담당 팀장은 계속 보이지 않고, 다른 층 팀장이 어머니를 모셔 나왔다. 어머니 두 눈에는 웬만한 코딱지 보다 큰 눈곱이 끼어 있었다. 속이 터졌다. 면회하러 나가시는 어르신 눈의 눈곱도 떼어 주지 않는 요양원이 평소에 어머니를 어떻게 케어하고 있을지, 보호자가 걱정하지 않겠는가? 그런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건 도대체 무슨 속셈인가? 더러우면 니가 알아서 나가라? 허 참. 너무 상식 밖이다. 도대체 왜 그러는가? 내가 뭐 잘못하는 게 있거나 어머니를 케어하는데 특별한 어려움이 있다면 당연히 내게 이야기를 해야 맞는 거 아닌가? 면회가 끝날 무렵 다른 어르신을 모시고 나온 담당 팀장을 마주쳤다.


어머니 식사는 잘 하시나요?

식사는 잘 하시는데 가끔 설사를...

눈곱은 좀 떼주시지

...

다음주 병원 갈 때 옷 좀 따뜻하게 입혀주세요.

뭐, 있는 옷...


물어 볼 말이 더 있었으나, 팀장은 휠체어를 끌고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어머니와 제대로 된 작별인사를 못했다. 이게 정상적인 요양원 면회 맞는가? 더러우면 모시고 나가라인가 정말? 매너도 없고, 상식적이지도 않고, 떳떳해 보이지도 않는다. 깊이 걱정될 수밖에 없는데, 어디 말할 데도 없다. 가슴이 터진다. 건강이 악화된 어르신을 내보내는 요양원인가? 한달 전 보호자 전원 간담회 때는, 서울 시내에서 유일하게 임종하게 해주는 요양원이라고 원장이 크게 선전하지 않았던가.


원장의 말, 팀장의 반응, 전체의 분위기를 종합해보면, 그들은 어머니의 남은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듯하고, 또한 그들의 판단에는 내가 그런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그렇게 보는 근거는 아무래도 내가 매주 꼬박꼬박 면회를 와서 어머니와 (눈에 띄게?) 애틋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외에는 없다. 너무 서운하고 무섭다. 집에 돌아오며 원장에게 면담을 신청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결론은 한번만 더 참자. 차분하게 조용조용 헤쳐 나가자. 어찌됐든, 거처를 옮기는 게 어머니께 좋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결론은 그랬다.


내 눈에도 어머니의 건강이 좋아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입소 석달 만에 어머니 건강을 망쳐놓았다고 그들을 비판할 마음은 없다.(석 달 만에 크게 악화된 건 사실이지만, 비판해서 좋을 게 없다고 여긴다.) 다만, 통상적인 케어를 성실하게 계속해주기만을 원한다. 그들도 업무상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보호자에게 모종의 신호를 줄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해 주기로 했다. 다만, 좀 깨끗하고 투명하면 좋겠다. 보호자를 불안하게 해서 좋을 게 뭐가 있는가? 서로 믿고, 힘을 합해서 어머니를 케어하는 게 도덕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두루 맞는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머니 걱정은 결국 내 몫으로 남는다. 나는 지금 그 요양원에 들어간 걸 운명이라고 여긴다. 지금 와서 거처를 바꾸는 것은 어머니 상태를 감안했을 때 어머니께 좋을 게 없다고 여긴다. 필요하다면 이 말도 그들에게 할 것이다. 쓸 데 없는 마음싸움은 싫고, 의미도 없다. 이런 일들이 생기는 이유가, 요양원의 방침인지, 개별 직원들의 자질부족인지, 일탈인지 모르겠지만, 내 진심을 밝혀서 어머니의 마지막을 덜 고단하시게 돌볼 수 있다면 나는 꺼리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만이 내게 중요하다.


내심, 어머니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된 것이 입방정이 아닐까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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