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백수다.
4년이 가까워 온다. 그 전에 1년 일했고, 또 그 전 5년을 백수로 지냈다.
첫 5년은 지하철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치고, 직후 연인이 떠나가는 바람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엄청나게 심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낙향했다.
이후 마음을 추스리고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했지만, 잘 적응하지 못했다. 1년 만에 실패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고 모색하던 중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더니 치매를 얻으셨다. 모실 사람이 나밖에 없었다.
3년 가까이 어머니를 돌보다 한 달여 전에 요양원에 모시게 됐다. 매일 식사, 목욕, 배변 처리를 하는 눈코 뜰 새 없던 돌봄 생활에 익숙해 있었던 몸과 마음은 지금도 어머니가 그립고, 걱정되고, 특히 외로워서 견디기 힘들다.
이럴 때일 수록 건강을 잃으면 더 망가질 게 뻔해서, 식사를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치매안심센터에서 자원봉사를 매일 4시간씩 하고 있다. 점심은 거기서 얻어 먹는다.
그럴 게 아니라 일자리를 빨리 구해야 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맞다. 구해야 한다. 그러나 10년 가까운 백수 생활의 여파는 크다.
이력서를 내려고 해도 쓸 말이 없다. 10년 전까지 거의 15년간 나는 국내 최고의 유통 대기업들에서 일했다. C홈쇼핑, L백화점, E마트. 팀장까지 빠르게 승진하고, 나름 잘나가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모두 10년 이상 지난 일이다. 이런 것들을 이력서에 쓴다면, 정신이 나갔거나 세상이 어떤지 모르는 바보라고 비난 받기 좋을 것 같다. 현실 감각 없이 나이만 먹은 중년의 백수를 누가 써주겠는가?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늘 검색한다. 하지만 두려움과 자괴감만 한아름 얻고 포기한다. 나이가 들었다고 써주지 않을까, 일 못한다고 비난받지 않을까, 혹시 사기꾼한테 걸려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일하고 있는 동안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요양원에서 급보가 오지는 않을까.
실제로 어머니는 요양원에 입소하시자마자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져, 한달 만에 두번 병원을 갔고, 그 중 한번은 응급실 뺑뺑이를 거쳐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응급실에서 밤새 보호한 것도 나였고, 그후 외래에 가서 약을 타오는 것도 나였고, 며칠 후면 어머니를 모시고 또다른 대학병원에 가야하는 것도 나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면서 달라진 점은 매일 밥 차려드리는 것, 목욕시켜드리는 것, 기저귀 갈아 드리는 것을 직접 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 뿐이고, 마음 쓰이고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은 그 전보다 더하다.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알바 시작한지 이틀 만에 어머니가 갑자기 아프셔서 병원 모시고 가야해서 오늘은 못나가겠다, 라고 말하는 상황이 생길 확률이 높다. 오늘도 당근알바, 알바몬을 검색하다 한숨만 쉬고 포기했다.
브런치에서 작가님들이 쓴 글을 검색해서 보고, 위로받는 게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나도 이미 작가가 되었고 글을 발행할 수 있는데, 오래동안 망설였다. 자신감이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그래도 한번 발행해보자는 생각에 끝내 용기를 냈다. 오래동안 망설이기만 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해보는 걸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기록해야 한다. 도전! 도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