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년 차 조무래기가 이런 웅장한 제목을 가지고 글을 쓴다면 nn연차 선배가 볼 땐 햇병아리가 삐약대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지금 나의 생각과 몇 년 뒤 나의 의견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쓰려는 이유는 뚜껑을 안 딴 이들이 궁금할 수 있는, 갓 뚜껑 딴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나의 tmi를 풀어보려고 한다.
나의 결혼 과정은 매우 순탄했다
소개팅으로 가을에 만나서 다음 해 초여름에 식장을 예약하고 상견례를 했다
남편의 자취방, 직장, 나의 집, 나의 직장 이 네 군데는 20분 거리 안에 있어서 만나는 것은 정말 쉬웠고 주말마다 부모님이 세컨드 하우스로 가실 때마다 남편 자취방에 가서 놀았다
몇 개월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집 밖에서 놀 때와 집 안에서 노는 모습을 보며 음 이 정도면 같이 살만하겠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직장에 다니고 있던 내가 플래너 없이 모든 결혼 과정을 준비했고, 친정엄마가 사둔 집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으며 양가 부모님의 도움으로 결혼식까지 잘 치렀다
네이트 판으로 단단히 중무장했던 나의 시월드 선입견은 정말 쓸모없는 걱정이었다 싶었을 정도로 나는 지금도 시어머니와 아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변 미혼인 여자 지인들은 나를 아주 부러워했다
모든 것이 다 순조롭고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며 무엇하나 걸림돌이 없는 결혼이라고 했다
우쭐할 새는 없었지만 그래도 흔히 결혼 과정에서 생기는 잡음 하나 없었고 나름 각도기로 잴 거 다 재고했다고 생각한 결혼이었다
하지만 뚜껑은 열어봐야 아는 것이었다
나는 그전에 연예인 이혼기사를 볼 때마다 '성격차이로 이혼'이라는 문장이 제일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맞선보고 3일 만에 결혼하는 시대도 아닌데 연애하는 동안 서로의 성격을 몰랐던 것이 아닌데 왜 결혼을 하고 나서 성격차이가 난다는 거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앞길을 걸어 나간 선배들은 다 아셨던 그 길을 지나게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연애할 때 하루 이틀 같이 지내는 것과 결혼을 해서 한집에서 같이 사는 것은 완전 어나더 레벨이었다
집안일에 대한 서로의 견해를 좁히는 것이 그렇게 힘든 과정인 줄 나는 꿈에도 몰랐다
남편은 오랜 자취 경력으로 깔끔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고, 나는 오늘 입고 온 외투를 그냥 의자 위에 걸쳐놓았다가 다음 날 아침에 나갈 때 의자에 있는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가는 사람이었다
결론적으로는 정리정돈이 된 상태로 집안을 유지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었기 때문에 맞추려고 애를 썼지만
나는 그의 생활방식이 피곤했고,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단편적인 예를 들자면 남편은 주기적으로 냉장고 정리를 한다. 정리할 때마다 상한 음식이 나오지 않도록 안에 있는 내용물이 잘 보이도록 넣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팩의 공기를 다 빼서 넣어야 공간이 여유롭단다. 그러나 나는 프라이팬 위에 음식이 타고 있는데 언제 봉지의 공기를 빼서 가지런히 정리를 하냐, 일단 넣어 넣고 나중에 정리를 하겠다 입장이었다. 물론 고백하자면 나중은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에 남편은 화가 났던 것이다. 냉장고 정리를 하던지! 아니면 정리하기 편하게 봉지를 최소한의 부피로 넣어놓던지!
우리 집 생필품의 쇼핑을 담당하고 있는 나는 물티슈를 세 가지 용도로 구비해놓고 있다.
막 쓰는 거 / 아기용 / 세균 박멸 주방용
청소를 주로 하는 남편은 물티슈를 쓰고 물티슈 뚜껑을 항상 열어놓는다
용도에 따라서 돈 더 주고 성분 좋은 비싼 거 사다 놓는데 뚜껑을 열어서 물티슈가 말라버리면 어쩌라는 거지?
'마르면 물 부어'라는 말을 하는 남편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내 머리의 뚜껑이 수백 번은 열렸다 닫혔다
엄청난 tmi 같고 뭐야 뭐 이런 사소한 것 가지고,,,?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사소한 것들이 켜켜이 쌓여서 서로의 큰 불만의 산을 만들어 냈다. 각자에게는 중요하지만 상대방에게는 덜 중요한 이런 일들.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우리가 성격이 각자 이상한 거고, 우리는 맞출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살만한데?라는 생각은 오만했고 순탄한 결혼이라고 했던 사람들의 입을 촐싹 때려주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나에게 생활방식으로 싸운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예상 범위에 넘어선 갈등 때문에 집에 있는 것들을 건드리는 게 스트레스였다
단지 집안일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이 공유가 되어야 했다
나 혼자 벌어서 나 혼자 먹고살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소비에 대한 것도 공유의 재산이 되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큰 금액의 사치품(필수품의 반대 개념이라고 생각)을 사려면 비용과 그것을 놓을 공간 때문에 상대방과 논의를 해야 한다. 상대방이 반대 의사를 표시하면 열심히 어필하거나 포기해야 한다.
인간관계에 대한 내 포지션도 공유해야 했다. 특히 친정이나 시가 식구들 사이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나 혼자의 의견을 표출하기보다는 남편과 상의해서 우리 둘의 의견을 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자 회의합시다 하고 모이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것들이 상의되어야 하는 그 과정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오 이렇게 쓰고 보니까 완전 가스 라이팅 당한 사람 같군. 그렇지만 나만 억울한 것은 아니다. 위의 과정은 남편도 똑같이 했으니까 둘 다 의견을 맞추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살았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니 신혼 때 둘이 지지고 볶은 것과는 또 다른 단계의 갈등이 도사리고 있었다
신혼 때의 의견 조율이나 갈등 과정을 step 1이라고 치면 신생아~첫 돌까지의 기간을 step 2라고 구분하고 싶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그래도 자기 몫을 다 하는 어른 1과 어른 2가 만나 총 2의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면,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어른 1 어른 2 그리고 아이-10 이만나 어른 두 명이 20개 정도의 과제를 해결해야 했다.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상대방과 아이에게 아낌없이 베풀어야 제로가 될까 말까인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 동안 지내다 보면 체력과 여유로움이 모두 방전된다
step 2 단계를 지날 때는 그 전과는 다른 정말 뿌리 깊은 고민 속에 살았다
내가 이 사람과 정말 한평생 같이 지낼 수 있을까? 우리 이렇게 안 맞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다. 아, 그렇다고 남편이 육아나 살림에 소홀한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남편은 살림에 더욱 두각을 나타내고 거기다가 요리라는 스킬까지 취득하여 프로 살림꾼이 되었다. 육아도 잘하는 편이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피곤하고 여유가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상대방을 양껏 배려하기가 어려운 상황일 뿐이었다.
어찌어찌 step 2를 지나 아이가 어느 정도 의사를 표현할 나이가 되고 뽀로로와 함께라면 10분 동안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 훨씬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또한 지난 단계를 지나면서 서로가 싫어하는 행동들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정신과 예약을 잡을까 말까 고민했던 그 수많은 날들이 무색하도록 지금은 마음이 아프지도 않고 아주 잘 지내고 있다.
나는 결혼생활은 통조림 같다고 생각한다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절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뚜껑을 열자마자 기름이 둥둥 떠있는 것을 보고 이번 생은 망했다며 실망할 필요도 없다
휘휘 저어 보면 기름덩어리가 아니라 토마토소스 있을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