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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소신 Dec 08. 2021

지금까지 내가 했던 다이어트 방법 총 정리

돈 들여서 찌고 또 돈 들여서 빼고


나는 꾸준히 돈 들여 찌고 또다시 돈 들여 뺀다. 내가 딱히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나도 모르게 말랐었던 시절에는 다이어트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줄 놓고 행복하게 살다가 어떤 위험한 수준에 이르면 다시 뺀다. 하 유지해야지-라고는 하지만 달콤한 생활에 익숙해지는 뻔하고 뻔한 패턴.


1. 가장 저렴하고 가장 확실하게 뺀 일명 전단지 다이어트

고3 때 인생 최대 몸무게(19세 기준) 찍고 수능을 보고 아 이제 진짜 빼야겠구나 싶었다. 동네 헬스장을 끊었다. 그때 당시에는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운동을 이렇게 하는구나도 없었고 헬스장 안에 트레이너도 없었다. 그냥 러닝머신만 6.0으로 해놓고 40분 걸었다. 왜냐면 러닝머신엔 40분이 적당하다고 쓰여있었으니까..!

부모님이 딱히 용돈을 끊었던 기억은 없는데 수능이 끝나니 내 주머니 사정도 갑자기 얄팍해졌다. 그래서 동네 마트에서 붙이고 간 전단지에 있는 것만 먹었다. 예를 들면 월요일 오후 2시 두부 한모 500원이라고 적혀있으면 그날은 두부 한모만 먹고 버텼다. 두부인 날은 아주 횡재한 날이었다. 브로콜리나 가지까지도 쏘쏘. 청양고추 할인하는 날은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두 달 만에 15킬로를 넘게 뺐다. 신체가 가장 건강할 때여서 그런지 쫙쫙 무리 없이 빠졌고, 이때 뺀 것은 대학교 1학년 내내 먹고 마셔도 그럭저럭 유지를 했다.


2. 피 같은 돈이 걸린 내기 다이어트

대학교 3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친한 친구들 넷이서 갑자기 다 같이 다이어트를 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데 그냥 하면 재미도 없고 해이해질 수 있으니 돈을 걸자고 했다. 무려 인당 10만 원!! 시작하는 날 다 같이 몸무게 찍어서 인증하고 마지막 날에도 인증해서 최종적으로 본인의 최초 몸무게에서 가장 많이 뺀 사람이 우승상금으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디데이를 정하고 그 전날까지 최후의 만찬이라는 방패 아래 넷이서 무지하게 먹었다. 그리고 디데이부터 모두들 무섭게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일단 각자 도시락을 싸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이 짠하다. 나는 락앤락 간장종지에 현미밥과 검정 콩자반을 주로 싸서 다녔다. 그리고 이때 무지하게 걸었다. 하루에 3시간 이상은 걸었던 것 같다. 핫요가가 이때 유행을 해서 엄마의 지원으로 요가를 다녔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걷고, 조금 먹고, 핫요가에서 땀까지 쫙 빼는데 안 빠지는 게 이상하지. 최종적으로는 내가 우승해서 그 상금을 다 가져갔고, 마지막 날 그 돈을 탈탈 털어서 다같이 술 먹는데 썼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최종일이 며칠 안 남았는데 tv에서 단팥빵을 너무 맛있게 먹고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며 너무 서러웠다. 나는 왜 최후의 만찬 때 단팥빵을 안 먹었을까 꺼이꺼이 하면서.


3. 다이어트 셰이크 + 효모 찜질방 + 카복시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1년 다녀왔다. 처음에 호주에 도착해서 콜스(이마트 같은 곳)에서 장을 보는데 몇 바퀴를 돌아도 도저히 카트에 담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대체 뭘 먹고사나 싶어서 계산대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카트를 스캔했다. 빵, 고기... 끝? 엥.. 이 사람들 뭐지.. 이것만 먹고 산다고....? 아이고 큰일 났다 싶어서 한인마트에 가서 김치부터 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그곳의 자유로움에 완전히 고삐가 풀리게 되었다. 일단 어느 집에 살던지 같이 살던 셰어 메이트 중 하나는 초밥집에 꼭 다녔고, 퇴근할 때는 남은 초밥을 양 손에 가득 들고 왔다. 그들이 퇴근하는 시간에는 방에서 슬금슬금 나와서 거실 테이블에 젓가락과 맥주를 세팅하고 앉아있었다. 또 빵은 얼마나 맛있다고... 물이 다른 건지 밀가루가 다른 건지 하여튼 호주에서 파는 빵은 정말 눈이 돌아가도록 맛있었다. 그전에 한국에 있을 때 딱히 내 돈 주고 과자나 빵을 사 먹었던 기억은 없는데 그곳에서 입이 터진 나는 호주 빵과 한인마트에서 온갖 과자를 섭렵했다. 물론 박스 와인과 궤짝으로 사다 놓은 맥주로 촉촉이 적셔주면서. 당시에 내 룸메랑 쿵짝이 잘 맞아서 그 집에서 그녀와 6개월 사는 동안 정확히 20kg이 쪘다. 신의 한 수는 그 집 옆 건물이 한인 마트라는 것이었다. 나는 태어나서 그렇게 슈퍼와 가까운 집에 살아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늘 오늘부터 다이어트야!! 하면서 저녁을 굶다가 마감 직전인 9시에 흔들리는 눈빛을 공유하며 옆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살이 쪄가는 걸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보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별다른 의식 없이 행복한 돼지로 잘 살았다.


문제는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 한 여름에 귀국했는데 나는 엄마를 놀라게 할 요량으로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목덜미에 손바닥만 한 해골 모양 타투 스티커를 붙였다. 엄마 나 해골 문신했다 깔깔거리려고. 그런데 나를 애타게 찾던 엄마는 인천공항에서 얼음이 되어버렸다. 새빨간 머리를 하고 20kg 찐 애가 뒤뚱거리면서 나오니 그만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빠랑 나랑 낄낄거리면서 얘기하는데 엄마는 뒷자리에 앉아서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정말 너 내 딸이 맞니....?라는 문장만 머리 위에 동동 떠다니고 심란한 표정으로 뒤에 앉아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내가 낯설어서 쳐다보지 못했다고 한다. 오빠가 뭐가 제일 먹고 싶냐는 말에 "해물탕 해줘~~"하니 그제야 엄마가 겨우 뗀 한마디. "수산시장으로 가자...."

엄마는 해물탕을 끓이면서도 수백 번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지금 당장 운동장 뺑뺑이를 돌려야 하나, 그래도 1년 만에 왔는데 먹고 싶은 건 해줘야 하나...


엄마 때문이 아니라 우리 동네로 오니 내가 엄청 이질적이었다. 빨간 머리야 염색하면 하루 만에 돌아오지만 동네에 나만한 덩치가 지나가면 다들 한 번씩 쳐다봤다. 호주에선 다 같이 뚱뚱했는데 여기선 나만 뚱뚱해!

엄마 지인이 톡톡히 효과를 봤다는 다이어트 셰이크와 그 원장이 운영하는 효모 찜질방 패키지를 끊어줬다. 그리고 그때 당시에 유행하던 카복시도 맞았다. 카복시는.... 진짜 진짜 아프다. 사실 카복시가 효과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돈 주고 고통을 산 느낌. 찜질방에서 땀을 빼고 밥 안 먹고 셰이크 마시니 살을 빠질 수밖에. 그런데 1년 동안 알코올로 열심히 다져놓은 살은 처음처럼 잘 빠지지는 않았다.


4. 그 유명하다는 땡땡 한의원의 한약다이어트

친척 언니한테 갑자기 연락이 왔다. "내일 연차 가능?"

엄청나게 유명하고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어떤 한의원이 있단다. 언니 친구들이랑 세 명이서 가려고 예약을 했는데 한 명이 갑자기 회사에 일이 터져서 못 가게 되었다. 넉 달 전에 예약 잡은 거라 너무 아까우니 나도 같이 가자는 것이다. 오~~ 콜~!

그런데 예약시간이 애매하다. 오전 9시까지 병원으로 오면 된단다. 일찍 도착해야 좋다는 소리에 8시 반에 룰루랄라 도착했더니 병원 앞에 줄이 쫙- 서있다. 뭐야 예약했다며? 하니까 여기 줄 선 사람들이 다 예약한 사람들이란다. 그런데 여기 다이어트로 유명하다는 곳 아니었나. 내 예상은 20대 여성들이 줄 서 있을 것 같았는데 연령대가 아주 다양했고 70대도 많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되자 어떤 방으로 다 같이 들어오란다. 한 명 한 명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다 모아놓고 한꺼번에 설명한 후 차례대로 맥을 짚어 준단다. 진맥에 따라 약이 조금씩 다르다니 신뢰가 팍팍! 이 병원이 원래 당뇨나 합병증으로 살이 찌면 위험한 사람들을 위해서 한약을 개발했는데 이 약만 먹으면 살이 쭉쭉 빠져서 다이어트 목적으로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했다. 약을 먹는 동안 밥도 먹으면 안 되고 정말 죽을 것 같으면 딱 한 숟가락만 먹으란다. 평생 운동할 자신 없으면 약 먹는 동안 운동하지도 않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효과는 아주 끝내준다고. 까짓꺼 한번 해보지 뭐 하고 약을 타 와서 시작했다. 심지어 약값도 생각보다 안 비쌌던 것으로 기억한다. 신기하게 그 한약을 먹으니 밥 생각이 안 났다. 별로 뭐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러다가 5일이 됐을 때 머리를 감다가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이러다가 내가 죽겠구나 싶었다. 아침밥을 먹던 엄마 밥을 뺏어서 살기 위해 입에 욱여넣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고 찾아보니 아마 그 한약 안에 뭔가를 마비시키는 성분이 들어있지 않았을까 싶다.


5. 신부님 드레스 입으셔야 죠. 운동의 세계로....!!

남편과 연애할 때 일주일에 다섯 번은 술을 마셨다. 둘이 족발 대자나 세 마리 치킨도 가볍게 클리어했다. 그렇게 신나게 놀러 다녔으니 결혼하려고 할 때가 되니 이거 상황이 또 심각해졌다. 엄마 친구 아들이(이하 엄친아) PT샵을 오픈을 해서 엄마가 날 데리고 그곳으로 갔다. 결혼식 전까지 날 책임질 수 있겠냐고 하니 엄친아가 걱정 말라고 했다. 1:1이라 PT가격이 후들후들했는데 엄마가 쿨하게 결제해줬다. 대신 반드시 빼야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PT를 받을 때 이러다가 내가 죽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정말 꾸준히 다니니까 내 실력이 늘어나는 게 보였고 아 운동이 재미있는 것이구나를 느꼈다. 어느 정도 근력이 붙자 풀업 바에서 팔의 근력만으로 올라가는 운동을 시켰는데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그러니까 나의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서인지 '헬스장에서 멋진 운동복 입고 풀업 바 20번만 올라갔다 오면 헬스장 안에 있는 남자들이 다 쳐다볼걸요?' 하길래 그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남자들 휘휘 둘러보고 '의욕이 사라졌네용~~' 하고 엄친아랑 낄낄대면서 재미있게 운동을 다녔다.


점심시간에는 닭가슴살이랑 하루야채만 먹고 유흥을 즐기지 못하고 운동만 해야 하니 인생이 재미가 없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불변의 디데이가 있었기 때문에 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 그 당시 남자 친구가 가끔 '장모님한테 비밀로 하고 오늘은 먹자' 하며 날 다독여줬다. 식단과 운동으로 어느 정도 살이 빠진 것은 많았지만 내 몸은 나의 디데이와 선택해놓은 드레스를 따라가기에는 조금 버거워 보였다. 그때 엄마의 눈에 띈 어떤 지인...!!! 만삭이라고 오해할 정도로 배가 나왔는데 한두 달 만에 누군지 못 알아볼 정도로 반쪽이 됐다는 것이다. 엄마가 그분을 붙잡고 비법을 물어봤더니 어떤 다단계 회사에서 만든 셰이크와 커피를 마셨다고 했다. 단순히 살을 빼는 게 아니라 뭐더라... 미토콘트리아 세포를 건강하게 만들어준다고.... 몸 자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목적이라고... 웅앵웅..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가격대가 X,00만 원이었다. 엄마가 딜을 걸었다. 먼저 엄마가 결제할 테니 결혼식날까지 몇 킬로까지 감량을 해라. 목표를 달성한다면 그냥 넘어가고, 만약 달성을 못하면 그 돈을 엄마를 줘야 한다고.  콜~~! 

하도 시간마다 먹으라는 게 많아서 열심히 쉐킷 쉐킷 해서 물배 채웠다. 그런데 물배 때문인지 나의 미토콘드리아 세포가 건강해져서 그런지 밥은 안 먹어도 신경질이 안 나고 할 만했다. 결국 결혼식날 아침 엄마와의 약속 몸무게를 지킬 수 있었고 내 결혼식장에 온 PT선생님이었던 엄친아는 흐뭇한 표정으로 엄지 척을 날려줬다.


6. 임신과 출산. 내 몸에 차곡차곡 쌓고 빼기 

결혼을 하고 곧 임신을 했다. 얼굴에 핏줄이 다 터져 얼굴이 피멍 투성이일 때까지 토를 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신기해할 정도로 살이 꾸준히, 가파르게 쪘다. 못 먹는다는데.... 왜.. 찌죠....?

그리고 임신 당뇨 검사에서 정말 아슬아슬한 수치로 턱걸이를 넘기 못해 임신 당뇨가 확정되었다. 임신 당뇨 중 혈당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막달에 태아가 사산할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정보를 듣고 나는 당뇨관리 모드로 돌입했다. 건강하게 먹고 많이 걷기. 다 좋은데 귀찮을 때는 한 끼 정도는 건너뛰고 싶을 때도 있는데 제시간에 끼니를 먹지 않으면 다음 식사 후 혈당을 체크할 때 눈이 튀어나올만한 수치를 나타냈다. 마음대로 굶지도 못해. 게다가 중기-후기쯤 조기수축으로 인해 두 번이나 병원에 입원했다. 당뇨는 먹자마자 30분은 걸어야 하는데 조기수축은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말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임신 기간 동안 아이, 양수, 나의 지방을 합쳐서 딱 11kg이 쪘다. 출산 당시 친정은 청정구역이라고 불릴 만큼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확진자를 0을 기록하고 있어서 나는 조리원에서 바로 친정으로 가서 세 달 동안 몸조리를 했다. 출산 후 늘어난 갈비뼈 사이에 껴있는 지방세포를 빼지 않으면 영원히 굵어진 몸으로 살아야 한다는 출장마사지 원장님의 설명을 듣고 엄마는 일주일에 두 번씩 출장마사지를 불러줬다. 임신하고 100일 동안은 뼈가 벌어져있어서 격렬한 운동을 하면 안 된다네? 운동 금지. 그런데 1년 동안 내려진 금주령을 해제하니 맥주가 그리 맛이 좋아. 밤마다 아기를 재우고 엄마 몰래 맥주를 홀짝였다. 그러니 살이 쭉쭉 빠질 기미가 없었지. 후후 

 

애기 백일까지 친정집에서 보내고 이제 우리 집으로 가자! 다음 주에 출발!이라고 했는데 아기를 안고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굴렀다. 애기를 보호하고자 나는 판단할 틈도 없이 난간을 잡는 대신 아기를 끌어안아 올렸고 다리에는 두둑 소리가 났다. 119를 타고 병원으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으니 골절 진단이 나옴. 

이 스토리는 아주 장황하니 다음에 다시 풀도록 하고.. 여하튼 수술하고 깁스한 상태로 한 두 달 동안을 앉아서만 지냈다. 먹고 움직일 수가 없으니 살은 다시 착실히 찌고 있었다. 

코로나 핑계로 안일했던 것이 맞다. 맨날 만나는 가족들만 만나고 친구들은 만나지 않으니 외부 자극이 오지 않아 그냥 거울을 잘 안 보면서 살았다. 기구 필라테스를 다니긴 했지만 그다지 효과도 없는 것 같고 이대로 열심히 운동하다가는 건강한 돼지가 될 것 같았다. 마침 코로나 때문에 센터가 잠시 휴업상태이기도 해서 홀딩을 시켜놨다. 그러다 남편과 같이 노트북을 구입하기 위해 내 친구가 일하는 매장에 방문했는데, 애가 입이 벌어져서 너 왜 이렇게 살쪘냐고 심각하다고 난리를 치는 거다. 


사실 이 친구 말고도 간간히 무례한 사람들은 많이 만났다. 특히 일적으로 만난 사람이 미팅 중 나와 좀 친밀해졌다 싶으면 나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며 살 빼라고 잔소리를 하거나, 혹시 출산 전후로 몇 킬로 쪘어요?라고 대놓고 무게를 물어보는 대담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를 몰랐던 사람들이니 그냥 어영부영 넘어갔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나를 잘 알던 친구가 난리를 치니까 덜컥 겁이 났다. 그때 뉴스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했었다. 

아 곧 팬데믹이 풀리고 나 다시 진짜 내 사회로 나가야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이때가.. 아기 18개월 정도. 18개월 동안 모르는 척했던 나를 다시 거울을 통해서 봤다.


그리고 그때 마침 친정오빠가 살을 아주 쫙 뺐다. 간헐적 단식에 탄수화물을 아예 끊었다고 했다.

질 수 없지. 그때부터 저탄고지인 키토식으로 음식을 먹었다. 생각보다 괜찮았고, 생각보다 음식을 준비하는데 돈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갔다. 그래도 할만했다. 계란 흰자 한 개, 셰이크 한 개 먹고 땡치는게 아니라 그래도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갈비를 먹고도 물냉면을 시키지 않는 마지막 보루까지는 건들지 않으며 한 달 동안 힘들게 했더니 8kg가 빠졌다. 나는 탄수화물은 현미나 카뮤트 위주로 섭취했다. 그리고 두 달 차가 되었을 때는 조금씩 탄수화물 비중을 늘리고 필라테스를 다시 다니면서 그래도 나름 키토식으로 한다 생각하고 유지했더니 총 10kg를 감량했다. 딱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온 것이다.

아 역시 다이어트는 식이라는 생각에 씁쓸하기도 했다. 


그런데 키토식 음식이 적응하니 생각보다 할만했고, 일이 바빠 직접 준비할 시간이 없다면 마켓 컬리나 쿠팡에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매일 샐러드 만들기 힘들 때는 일주일치 샐러드 팩을 주문해서 간편하게 먹을 수도 있다. 그리고 삼시세끼 흰쌀밥을 안 먹는 것이 습관이 되었더니 내 몸이 적응을 해서 괴롭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다. 지금 현재는 저탄 고지를 최대한 의식하면서 먹고 있다. 


또 필라테스 학원에서 지난달부터 새벽 7시 클래스를 열었다. 늘 아침에 수업을 예약해도 돌발 상황이 생기면 아쉽게 취소하는 일이 있었고, 수업 중 업무연락이 오면 곤란한 적이 있었기에 호기롭게 새벽 수업을 신청했다. 물론 내가 일어나면 귀신같이 눈을 뜨는 껌딱지 아들 때문에 남편의 도움을 아침마다 받아야 하지만 왠지 새벽 운동을 하고 나면 내가 열심히 사는 사람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다. 

당분간은 건강한 식단과 새벽 운동을 열심히 병행할 계획이다.


돈 들여서 열심히 찌고

또다시 돈 들여서 열심히 빼고

사는 동안은 반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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