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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 Mar 09. 2023

여성과 소수자, 학생사회 담론의 중심이 되다(1)

강남역 살인사건과 대학가 백래시

1. 학생사회의 오늘 

  - 총여학생회 폐지와 학생자치의 와해

     

  대학을 과연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거울까지는 아니어도 대학이 우리 사회의 작은 축소판 정도로 보는 시각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대학의 성평등은 오늘날 어떤 모습일까요? 성평등이 세대를 설명하는 키워드이고, 과장을 조금 보태어 시대정신이 되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향해 돌을 던지는 이들 역시 여전히 많습니다.      


  대학은 두 진영이 첨예하게 맞붙은 전선처럼 보입니다. 가장 급진적이고 빠르게 변화를 수용하고 생산해 낸 공간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안티페미니즘이 20대 남성들의 세대적 정체성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2010년대 대학에서 여성운동은, 페미니즘은, 20대 남성은 어떻게 지금의 정체성을 갖추게 되었을까요. 2020년대를 맞이한 학생사회의 현실은 어떤 모습일까요.     



1) 여성과 소수자, 학생사회의 뜨거운 감자가 되다.     


(1) 강남역 살인사건경종을 울리다.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강남의 노래방에서 한 여성이 이유도 없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가해자는 화장실에서 흉기를 들고 대기하다가 들어오는 남성들은 그냥 지나쳐 보내고, 여성이었던 피해자가 화장실로 들어오자 살해합니다. 이후 조사에서는 살해 동기를 묻는 질문에 "여성들에게 무시당해서 여성을 죽였다."는 대답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활동해 온 사람들은 이전에도 정말 많았습니다.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유구하고, 성소수자 운동사 역시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변화를 꿈꾼 선구자들은 자신이 발 딛고 선 공간과 현장에서 치열하게 목소리를 내어 왔습니다. 대학에서, 직장에서, 시민사회단체에서 싸워온 이들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남역 살인사건은 우리 곁에 늘 존재했지만, 지워지고 외면되어 온 '혐오'의 문제를 사회 전면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강남역에는 "여자라서 죽었다.", "살려(女) 주세요. 살아남(男)았다."와 같은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붙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추모집회를 열고 여성혐오 범죄와, 이를 가능케 했던 폭력적이고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를 규탄했습니다.     


  여성 혐오가 논란이 되자, ‘여성 혐오 현상’ 자체에 관한 논란도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이 범죄를 "여성 혐오 범죄"로 볼 수 있는 게 맞냐는 식의 반론이 제기되었습니다. 혐오라는 단어의 뜻이 무어냐는 물음부터, 모르던 사람이 더 많던 '미소지니'라는 단어까지. 대학과 학생회는 당대의 진보적인 이슈를 가장 먼저 체감하는 공간이었고, 그런 대학 안에 있던 저 역시 여성과 젠더의 문제가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었음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단과대 학생회실에 매주 배송되던 <한겨레21>의 표지기사는 강남역이었습니다. 아직도 당시 학생회 동료였던 친구와 학생회실에서 벌인 "이게 정말 여성 혐오 범죄냐"는 갑론을박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하나의 단발적인 형사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학내 반성폭력 모임, 성소수자 인권모임처럼 성평등을 고민하는 모임들의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훨씬 이전부터 꾸준히 활동해 왔던 이 모임들은 각성한 학우들과 함께 폭발적으로 그 존재감과 활동을 확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였습니다. 어쩌면 그 이전 세대, 대학에서 여성운동을 했던 학생활동가들은 달라진 대학의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백래시였지만 말입니다.     


  강남역의 비극이 대학을 포함해 사회 전반의 젠더이슈를 우리 눈앞에 끌어냈습니다. 이 사건이 각성과 자각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당연하고 익숙하게 살아온 주변의 세상이 마침내는 여성을 살해하기까지 하는 사회였다는 사실. 이 현실을 마주한 여성들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변화에 가장 민감하고, 가장 진보적이며 빠르게 변화하는 대학가는 더 빨랐습니다. 그전까지는 운동권이나 쓰던 단어인 줄 알았고, 사회학 교과서에나 나오는 줄 알았던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일상의 언어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페미니즘 소모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선배 여성활동가들이 남겨 준, 그러나 차차 존재감이 흐려져 가던 조직에 이들의 눈길이 닿았습니다. 총여학생회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2) 변화와 시작된 논란 – 백래시의 등장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대학에 젠더감수성을 다시 심는 일은 매우 시급하고 중요했습니다. 학생사회 안에서 학생 간 성폭력은 사실 매우 빈번했지만, 동시에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기독교 대학의 채플강의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경쟁적으로 쏟아냈고, 강의실에서는 학문의 자유나 교권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혐오발언이 쏟아졌습니다. 학내 성폭력 사건의 처리절차와 피해자 보호시스템은 부실했고, 학생 간, 학생-교강사 간 위계가 개입된 성폭력 사건은 너무나 많아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사회적 흐름에 힘을 받은 총여학생회 혹은 학내의 학생자치기구들, 그리고 반성폭력 학생 모임들은 이 같은 일들을 공론화하고 대응하는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실천적이고 강화된 대응을 이어나갔습니다. 학생자치기구들도 변화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변화를 선도했습니다. 학과나 단과대 학생회들은 행사 진행에서의 성평등 실천과 혐오표현 주의 및 예방, 성소수자 권리 보호 등을 위한 활동들을 강화해갔습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반감은 상당했습니다. 저항하는 이들은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의 이론적 타당성이나, 심지어는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저항했습니다. 이른바 백래시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들의 저항에 불을 지른 건 주로 인터넷 커뮤니티였습니다. 모든 저항에는 그 언어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인터넷 공간에서 차별받던 여성들이 택한 저항의 언어는 바로 "미러링"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남성들, 특히 20대 남성들에게 "여성 인권" 운운하는 사회는 불합리 그 자체였습니다. 여성이 약자라는 것은 공감하기 어렵지만, 내 처지는 ‘약자적 입장’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공정하고 합당한 경쟁에서 이기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미러링이라니! 전제도 틀리고 해결책도 틀린 방법처럼 보였고, 설령 여성이 약자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피장파장의 오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백래시의 본질이 미러링에 대한 반감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좋은 공격의 소재를 찾은 안티페미니즘 세력은 "논리가 없고 지나치게 감정적이다", "이기적이고 비합리적이다.". "미러링으로 혐오를 일삼는 사람들이 여성 인권을 운운한다."식의 공격들을 강력하게 제기했습니다.     


  이런 대학 내 백래시는 처음 등장했을 당시 하더라도 대단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사실 여성 혐오나 소수자 혐오는 우리 주변에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혐오에 대항하는 행동’ 자체를 혐오하는 백래시의 등장은 “혐오세력”이라는 말을 실체화하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싸움의 전선을 구체화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백래시로 저항하는 20대 남성 현상 앞에서 학내의 활동가들은 같은 학생들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이나 학내 성평등을 위한 활동에서 같은 학생들과 대립하는 일은 학생운동의 역사상 제법 있었던 일이었겠지만, 아예 특정 학우들이 싸워 이겨야 할 대상으로 특정되는 일은 드문 일이었습니다. 학생들의 적은 때로는 정치권력이었고, 때로는 학교 본부나 재단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학내의 여성운동과 소수자운동은 같은 학생을 적으로 상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학생운동의 새로운 분기점을 만드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여튼간에 이런 상황은 혐오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대학사회에 혐오를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혐오에 맞서 혐오를 비춰 보이는 미러링. 그리고 이 미러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혐오. 20대 남성집단의 인식론에, 미러링에 대한 반감이 더해져 대학의 백래시는 ‘대단한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대의 세대적 특성과 결합한 익명 커뮤니티는 그 중심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 중심에 페이스북의 ‘대나무숲’과, 애플리케이션 ‘에브리타임’이 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에게 가장 이용빈도가 높은 대학 내 익명 커뮤니티입니다. 대나무숲은 페이스북 페이지 형태로 학생들이 직접 개설해 운영합니다(한양대학교 대나무숲, 경희대학교 대나무숲과 같은 이름으로 형태로 말이죠). 나름의 인증 절차를 거쳐, 재학생으로 확인된 사람들의 익명 사연을 접수하여 게시해주고 있습니다. 대학가에서는 하나의 공론장이고, 학내 혹은 학생회나 동아리 등의 부조리한 일들을 고발하는 창구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학생회 활동을 하다 보면 굳이 SNS에 취미가 없는 사람도 여러 가지 이유에서 이 대나무숲을 살필 수밖에 없지요. 학생들의 여론과 학내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창구이기 때문입니다. 대나무숲에 간혹 게시되는 혐오성 주장과 글들은 처음에나 놀랍지, 이제는 그냥 일상적인 일입니다.     


  대나무숲이 아메리카노라면, 에브리타임은 에스프레소 정도라고 할까요. 에브리타임은 대학생들의 강의시간표 관리 애플리케이션입니다. 이용자가 자신이 다니는 대학을 인증하면, 해당 대학의 당해 학기 시간표를 지원하기 때문에 편리하게 등록하여 시간표를 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브리타임은 시간표 본연의 목적보다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됩니다. 가입과정에서 대학 인증을 받는 점을 이용, 해당 학교 재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는 익명 게시판을 개설하고 커뮤니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수준은 대나무숲의 그것을 뛰어넘습니다. 그나마 대나무숲은 게시자가 필터링을 거치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여기는 게시자의 필터링도 없고 하다 보니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표현들이 가득합니다.             

  '에브리타임(이하 에타)'의 등장은 대학생들에겐 혁명이었다. 앱 하나로 시간표 관리, 강의 후기 검색, 중고거래 등이 가능해 학교 생활이 편해졌다. 특히 익명을 전제로 한 게시판 기능이 백미였다. 대학생들은 에타 게시판에서 정보를 주고받거나 의견을 나눴다. 시험기간에 올라오는 각종 농담은 활력소가 됐다.

  하지만 '혐오'가 이내 고개를 들었다. 다른 익명 게시판들처럼 에타에도 특정 성별·국적·종교·성적 지향 등을 향한 혐오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같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혐오는 여론의 옷을 입었다. 모두의 편리한 학교생활을 보장해 준 에타는 점점 시름하기 시작했다.

  ◇"XX충" "소수자 거른다" "죽어라"…만연한 '혐오 게시글'

  취재를 위해 한 대학의 에타에 가입해 살펴봤다. 일상적인 글들 사이로 대상을 가리지 않는 혐오표현들이 버젓이 활개치고 있었다. '멀리해야 하는 유형'이라는 제목을 단 한 글은 "무지개색 프사(성소수자를 응원하는 의미를 담은 프로필 사진), 노란리본 프사, 노동·소수자·연대·여성 등 단체 소속 등"을 무조건 피하라고 말했다. 해당 글은 추천을 많이 받아 'HOT게시판'에 올랐다.

  몇 가지 키워드로 검색해 보니 더 심각했다. "인권위, 성소수자, 조선족 등을 탄압하는 정부가 필요" "페미니스트들 시위에 테러 터졌으면" "중국에서 폭발사고로 중국인 '50마리'가 죽었는데 너무 좋다" "무슬림 다 죽었으면 좋겠다" "XX충들(성소수자 비하 단어) 성병 옮기지 말고 너희들끼리만 성관계 해라" 등의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동성애자 싫으면 '좋아요'" 온라인 혐오에 물든 대학가 (머니투데이)  




(3) 백래시익명 커뮤니티를 넘어 세상 밖으로 나오다

  대학 내의 여성운동과 인권활동이 활발해지면 활발해질수록 온라인을 중심으로 한 저항은 거셌습니다. 익명 커뮤니티에서는 소위 '메갈'(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안 유저)이니, '꼴페미'(꼴-페미니스트, 페미니스트를 조롱하는 표현)니 하며 학생활동가들에 대한 낙인을 찍고, 동시에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혐오표현들이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혐오와 혐오세력에 맞선 활동이, 혐오세력에게는 혐오를 다시 생산하고 강화하는 기제로서 작용하는 지옥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같은 백래시가 단연 인터넷 공간에서만의 일로 그치지 않고 캠퍼스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성소수자 동아리의 입학생 환영 현수막이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훼손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연세대학교에서는 총여학생회가 성칼럼니스트 은하선 씨의 강연을 진행하려 하자 반대하는 학생들이 직접 나와 피케팅을 벌였습니다. 제가 다니던 한양대학교에서는 2017년, 4년 만에 총여학생회 선거에 선본이 입후보하자 온라인상에서 "행동하냥"이라는 단체가 결성되어 조직적으로 낙선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결성과 조직은 온라인을 통했지만, 직접 오프라인에서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현실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백래시는 사회적 진보나 변화에 대한 저항과 반발입니다. 학생회 활동도 일종의 백래시를 심심치 않게 경험하고, 학생회를 하는 활동가들에게는 제법 익숙한 일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입학하던 2014년만 해도 대학가의 그릇된 음주문화 같은 것들이 주요한 문제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많은 학생회들의 고민은 "새내기 새로배움터(신입생 OT)나 대학 축제 같은 행사의 술문화를 어떻게 혁신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실제로 어느 대학 학생회에서는 뱅글(팔찌)의 색깔로 음주 희망 여부를 표시할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우리 학교 역시도 제 새내기 시절 축제 때, "과음하지 말기"와 같은 내용이 쓰인 배지를 배포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에는 이런 학생회의 흐름에 반발을 가진 학우들도 제법 많이 있었습니다. 학생회의 ‘선비질’식이라는 비아냥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지요. 그러나 몇 해를 넘기고 문화가 자리 잡자 이제는 "술을 강권하는 사람 = 무개념"식의 인식까지 대학가에 자리 잡게 되었지요.     


  이처럼 옳고 그름을 떠나 현상에 익숙해진 대다수 사람에게 변화는 처음에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변화를 선도하는 세력이 사람들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고, 공감을 얻어내지 못하면 저항의 크기와 수준도 당연히 더 커지겠지요. 4년을 주기로 구성원의 교체가 진행되기에 변화의 주기가 비교적 빠른 대학사회입니다. 기존 세대와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공유하는 이들이 매년 기존 구성원의 자리를 대신합니다. 당연히 이런 공간에서 활동하는 학생회 간부들은 그(겨우 1, 2년밖에 안 되지만 차이가 혁혁한) 세대 사이의 문화적 괴리를 더 크게 느낍니다. 그래서 늘 이점을 경계하고 스스로 점검합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내어놓고 설득할 때, 학우들의 고민과 판단에 충실히 와닿게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말이죠. 그런데 이 여성 인권과 성평등 문제에서의 반발과 저항은 그 이전에 경험한 것과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습니다.     


  저항이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를 넘어 공개공간으로 공식화되고,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심지어 자생적으로 조직화되어 조직적인 움직임으로까지 이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학내의 여성운동에 반감을 품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하여 활동하거나, 조직된 유권자로서 실력을 행사해 실제로 많은 변화를 끌어냈습니다. 2016년을 기점으로 서울 내의 수많은 대학의 총학생회(혹은 총대의원회)가 총여학생회의 폐지를 논의했습니다. 혹은 성평등위원회 등 질적으로 다른 기구로의 전환을 논의하기도 했죠. 그리고는 마침내 대다수가 이를 실제로 결의해 집행했습니다. 여성인권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목소리가 강력해지니, 오히려 대학 내 여성 대의기구가 폐지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대학 내 백래시는 이토록이나 강력하고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몰아치는 백래시의 폭풍 속에서도 이전보다 대학에서 인권과 소수자 보호의 가치는 이전보다 중요해졌고, 유의미한 수준의 진전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강력한 백래시와 저항은 현실화되었고, 조직화되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마치 외부에서 볼 때, 대학은 20대 남성들과 그 외의 사람들이 각축전을 벌이는 공간처럼 보일 정도로 말입니다.  (계속)


커버이미지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8060401750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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