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소문난 아이 상희’라는 만화를 보았는데 그 만화를 보고 검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읍내에는 검도장은커녕 태권도장도 단 한 곳만 있던 시절이었다. 초등학생쯤 되는 상희라는 아이가 할아버지한테 검도를 배웠다는 것만 기억날 뿐 그 외에는 특별한 기억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검도’라는 두 글자가 새겨졌었나 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살게 되었을 때부터 검도장을 찾아다녔으니까.
요즘과 달리 그 당시만 해도 전국에 검도장이 거의 없을 때였고 홍보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찾기가 쉽지않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묻고 다닌 지 3년만에 검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검도장 ㅇㅇ관에서 나의 검도 수련이 시작되었다. '심신단련'이 검도수련의 목표였기 때문에 일부러 새벽에 도장을 다녔다.
워낙에 아침잠이 많아서 아버지의 걱정을 샀던 나는 검도 수련을 통하여 그것을 극복하고 싶었다.
아침 7시에 시작하는 수련시간을 맞추려면 6시에는 일어나야 하는데 젊을때는 일찍 일어나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
나로서는 새벽 6시에 일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대단한 일이었다. 나이가 든 지금은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지는데 말이다.
그리고 3년이 조금 지난 후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사범님께 서울로 간다고 말씀을 드리니 ㅇㅇ검도장을 소개해 주셨다. 서울 지리를 전혀 모를 때라서 114에 전화를 걸어 그 도장의 전화를 안내받고 위치를 물었다.
그리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도장을 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살던 곳 가까이에도 검도장이 있었다. 하지만 사범님의 한 마디에 다른 곳은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검도를 하기 전에는 승단이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다. 사범님이 승급 심사를 보라고 해서 봤고, 승단 심사를 보라고 해서 봤을 뿐이다. 검도 시합이라는 것도 아무 생각 없이 나가라고 해서 나갔을 뿐이다.
하라는 대로 그냥 꾸준히 하다보니 어느새 3단이 되었고 4단이 되었다. 시합도 나가다 보니 금. 은. 동메달도 따고, 서울시 여자 대표선수도 하게 되었다. 4단 승단 후에도 시합을 계속 나가서 어쩌다 보니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3차)까지 올라갔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 아쉽다는이 들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국가대표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검도장을 할 생각이 눈곱만큼이라도 있었다면 아마 욕심을 가지고 좀 더 열심히 했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검도장을 차린건 아니다. 우연히 스포츠 센터의 검도 사범 자리를 제의받았는데 다니던 직장의 4분의 1도 되지 않는 월급이었다.
하지만 하루에 두 타임만 가르치면 나머지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선뜻 그 자리를 맡았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이제, 내 도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냥 알아나 보자는 마음으로 스포츠 센터 근처 동네에 있는 부동산을 들러보았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검도장을 하기에 기막힌 장소를 소개해 주는 것이 아닌가.
검도는 죽도를 휘둘러야 하기 때문에 천장이 높아야만 하는데 우리나라 건축물로는 보기 드물게 천장이 높았다. 그 공간을 보고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마침 건물도 비어있었기 때문에 바로 계약을 했고 한 달 만에 검도장을 오픈하게 되었다.
처음 검도를 알게 된 날이나, 검도를 시작하게 된 날에도 검도사범이 되고 관장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우연히 스포츠 센터에서 검도를 가르치게 되었고 지도하다 보니 책임감 때문에 더 열심히 검도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젊었을 때보다 운동량도 더 많고 검도 관련 서적도 많이 읽고 있다.
만약에 처음부터 검도 사범이나 검도 관장이라는 목표를 세웠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지레 지쳐서 진작에 검도를 그만두지 않았을까싶다. 그냥 한 치 앞만 보고 한 발 한 발 걷다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