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a 미아 May 17. 2021

내가 자기를 까먹었지 뭐야

#산청에살어리랏다 #퇴사요양일기

산청 생활 5일 차, 펜션에서의 주말을 보냈다. 펜션의 주말은 평일의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다. 금요일부터 일요일에 이르기까지 계속 손님들로 북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반려견들도 오는 경우가 있어, 설기를 조심히 데리고 다녀야 한다. 원래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풍사님께 물어보니, 주말에는 늘 사람이 많다고 한다. 원래도 적지 않았던 손님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국내 여행이 더 많아져 예약이 더 많아졌단다.

지난 토요일에는 무려 세 팀이 왔다. 내가 묵는 겨울방을 제외하고 봄, 여름, 가을 방이 풀방(full-booked)이었다. 그중 봄 방과 여름 방에는 풍사님의 친구들이 묵었다. 그가 자신의 여사친에게 아는 오빠를 소개해주었는데, 인연이 잘 되어 커플이 된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함께 펜션에 놀러 온 것이다. 풍사님은 친구들이 오기 하루 전부터 나에게 몇 번이고 이렇게 말했다.


미향씨는 저녁을 많이 먹지마~
내 친구들이 고기를 많이 사 오니까 내가 동생도 챙겨줄게~

풍사님의 지인들의 식사자리에 눈치 없이 낄 생각은 없었으나, 계속된 달콤한 고기 먹자는 이야기에 괜스레 귀는 쫑긋 대곤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기 먹고 가라고~ 밥 많이 먹지 말라고~ 하면 누구라도 솔깃하지 않을까..  아무튼 디데이가 밝았고, 지인들은 활기차게 도착했다. 그때 마침 나는 벤치에서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카레를 먹던 중이었다. 한 켠에는 먹던 카레, 그리고 다른 한 켠에는 낯선 사람을 보면 으르렁대는 설기를 두고, 차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에게 정신없이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리고선 다시 내 할 일을 한다. 카레 먹기. 냠.

식사를 마치고선 비와 사람을 피해 겨울방으로 돌아왔다. 시골에 있으면서도 일을 벌이는 나는 산청에 머무는 동안의 일상을 영상으로도 찍어두어, 소스를 모아서 편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나니 저녁 시간은 훌쩍 지나 있었다(근데 인트로밖에 못 만들었다). 밖에서는 어른들의 노랫소리, 그리고 애들의 까르르 웃어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하게도 산에 있으면 주변이 조용하든 시끄럽든 잠이 잘 온다. 그래서 그날도 적당한 소음을 지나가는 배경음악으로 깔고선 일찍 잠에 들었다.


일요일이 되었다. 봄 여름 가을이 비워지고 남은 겨울 손님인 나는 풍사님과 아침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아이고~ 미향씨~ 내가 어제 자기랑 설기를 깜빡 까먹었지 뭐야~! 내가 친구들와서 너무 정신이 없었어~"


"아~ 괜찮아요! 즐거우신 것 같았어요."


그렇게 짧은 인사가 오가고, 오전과 오후는 각자의 할 일들로 보내며 다시 저녁을 맞았다. 여전히 겨울방에 처박혀 영상을 만지작 거리고 있던 나에게 풍사님이 전화를 걸었다. 어제 자신이 나를 까먹은 것이 영 미안했는지 밥을 먹자고 했다. 설기도 데려와도 된다고, 나랑 풍사님 그리고 풍사님의 애인만 함께 하는 자리라고. 사실 저녁은 이미 먹었지만 풍사님의 마음이 느껴져 군말 없이 마당으로 나갔다. 고기였다. 삼겹살과 la 갈비를 숯불에 굽고 계셨다.

셋 아니, 설기까지 넷이 모여 고기를 먹는 동안, 벤치 위로는 사장님들이 지난 주말 동안 얼마나 바빴는지, 나는 그동안 어떤 영상을 만지작 거렸는지, 설기는 바람이 들어 자꾸만 나가려고 하는 게 조금은 걱정이 된다는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식사를 다 마치고선 산청에서 유명하다는 딸기를 가져가라고 챙겨주셨다. 나를 까먹은 것이 그렇게도 마음이 쓰이셨던 걸까. 오히려 챙겨주시려는 그 마음이 나는 더 고마운데.

이 에피소드를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로 조잘조잘 전했더니, 그는 나에게 '미향이는 어딜 가도 사랑받네'라고 답했다. 나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도 보이는 것들이라면, 그럼 나는 정말 어딜 가도 사랑받는 편이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생각해왔음에도, 떨어지는 사랑을 받는 것만큼 달콤한 일은 없다. 양가감정이 든다. 이럴 땐 우선 눈을 감는다. 복잡한 현생으로부터 벗어나 산청으로 왔으니 여기서 만큼은 단순하고 쉽게 보내기로 했으니까. 눈을 감고 오늘 먹었던 la갈비의 맛을 다시 느끼는 것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그러다보면 잠이 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저는 겨울방에 묵는 손님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