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좋아하는 일에 대한 93년생 로빈의 생각
좋아하는 일에 대한
90년 생들의 생각
[요즘 주니어들]
세 번째 인터뷰이는 콘텐츠 기획자이자, 현재 4,500여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웹툰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로빈'입니다. 저에게 로빈은 자신의 길을 견고히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예요. 읽는 여러분도 재밌게 보시면 좋겠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 <로빈 앤 더 시티>를 연재하고 있는 작가 겸 웹툰 작가, 로빈
먼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줘.
회사에서 콘텐츠를 연재하는 기획자로 근무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는 웹툰 작가 일을 하면서, 일러스트 외주도 하고, 일상을 기록하는 블로거일도 하고 있어.
로빈은 ‘좋아하는 걸 좋아해’라는 스타벅스 슬로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나는 놀랍게도 이 문구를 본 기억이 없어. 인지를 하지 못했을뿐더러, 이 카피를 보면서 피로도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몰랐어.
그러면 나를 통해 알게 됐구나(웃음).
그렇지. 내가 왜 이렇게까지 무지했는지 생각해 봤는데, 의사소통에는 전달하는 방식이 있고 인지하는 방식이 있잖아. 나는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라, 무언가를 들을 때 타인의 의도가 나쁘지 않다는 걸 전제하에 듣는 필터가 있어서 '좋아하는 걸 좋아하라는 말인가 보다' 이러고 말았나 봐.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쾌하고 마냥 좋지는 않더라, 내가 지각을 안 하고 있었던 게 맞는 거 같아.
어떤 면에서 마냥 좋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
너무 억텐이다.
아! (웃음). 그렇지 그런 느낌 있지.
왜냐면 '좋아하는 걸 좋아해'라는 말만큼 뭉뚱그리는 말이 없어. 영어만 해도 like, adore, cherish, prefer라는 단어가 있는데 말이지. 그리고 좋아하는 행위를 그대로 좋아하라는 말은 막연한 긍정성을 부여하는 거 같기도 해. 큰 브랜드가 진행하는 문구 치고는 너무 무책임한 거 같아.
사실 기획자는 like, cherish, adore, pefer를 다 아우르는 의미로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우리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나 싶네(웃음). 어쩌면 우리가 이런 것들에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세대여서 일까?
그것도 맞는 거 같아. 우리는 ‘좋아함’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잖아. 인스타그램만 봐도 ❤️(좋아요) 천지이고. 우리의 선호도가 우리 자신이 되고, 그게 또 알고리즘이 되는 세상이라, 무언가를 좋게 본다는 행위 자체가 피로하게 느껴져. 차라리 '이건 좋아하지 마.' 이런 식이면 신선한데. 무엇보다도 우리 또래들은 취향이 자신을 대변하는 느낌이라, 개개인이 선호하는 플레이리스트, 좋아하는 메이커, 스타일이 있어야만 할 것 같잖아. 그래야 대화도 되고, MBTI도 잘 맞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런 것들이 엄청 필요하고 편리할 수도 있는데, 실제보다는 껍데기들이 많은 거지.
나도 ‘자신만의 취향’을 가지는 거에 200% 찬성하는 사람이지만, 그게 점점 과해지는 분위기인 것 같아 요즘은.
응. 그리고 실제 나의 모습과 타인이 나를 보는 상이 있잖아. 그 영역은 침범 불가하기도 하고. 그런데 타인이 나를 보는 모습이 공론화되는 경향이 많지. 특정 인물에 한정이 아니라, 만인에 대해서도.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좋아하는 걸 좋아해'라는 말이, 나에게는 지금 좋아하는 것이 나중에는 달라질 수 있는데, 그 여지를 안주는 느낌이야. 일단은 자유도가 없어, ‘-해’ 명령어야. 청유문이었으면 달라졌을까? (웃음)
로빈은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은 같이하는 게 좋다고 봐? 어떻게 생각해?
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봐. 하루의 8시간 이상을 좋아하지 않는 일에 쏟는 게 이해가 안 돼. 일주일에 5일을 그렇게 견뎌야 하는 게 납득이 안돼. 물론 지금 하는 일이 대행사니까 클라이언트 눈치도 보이고, 돈이 잘 벌리는 직업은 아니야.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괜찮아. 매번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기획한 콘텐츠의 영향력을 확인하면서, 계속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좋더라고.
사실상 좋아하는 일을 ‘일’로써하고 있네.
그렇지. 내가 여러 알바를 많이 해봤는데, 지금 일은 업무만 봤을 때는 퍼즐처럼 나한테 딱 맞는 느낌.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인 거 같아.
나한테 핏(fit)한 업무를 찾는 게 요즘 내 화두인데! 이미 하고 있다니 잘하고 있네.
업무적으로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라고는 했지만, 그렇다고 최종 목적지로는 아닌 느낌이야. 널뛰기를 하려고 간을 보는데, 구름에 가려서 안 보이는 느낌? 그런 일은 다른 곳에 있겠지. 지금은 회사에서 어렴풋이 그 감각을 쌓는 거라고 생각해. 예를 들면, 내가 디자인 툴을 배우면 앞으로 내 거를 하는데 더 활용할 수 있겠다. 이런 거?
최종 목적지는 어떤 거야?
내 최종 목적지는 티비에 나오는 거야.
티비라구?! 흔한 대답은 아닌데, 로빈답다.
아무래도 만화를 그리다 보니, 만화가 출신으로 엔터테이너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돼. 침착맨 주호민 같은 분들 있잖아. 그분들이 말도 재밌게 잘하고, 방송으로 자신의 삶을 공유하는데, 그 내용이 진짜 무해해.
나도 처음에는 만화에 나 자신을 전시하는 게 괜찮을까 싶었는데, 사람들이 재밌어하고, 좋다는 디엠을 보면 보람을 느껴. 그래서 침착맨 주호민처럼 영향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거지. 요즘 인플루언서는 너무 상업적인데 그런 건 말고.
선한 영향력을 주는 인플루언서네. 새롭다. 로빈에게서 처음 듣는 이야기야.
응, 인플루언서 그 이상이 되고 싶어. 타미플루언서? 같은 존재?
감기약?
응 치유를 해주는 인플루언서 랄까.(웃음) 있던 병도 낫게 해 주는 그런 인플루언서 (폭소)
지금 사이드 잡으로써 하고 있는 웹툰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줄 수 있어?
웹툰 작가가 내 사이드 잡이 될지도 몰랐지. 사실 처음에는 주변 친구들이 일상을 만화로 그리는 걸 추천했어. 나는 ‘이게 뭐가 웃겨’ 했는데, 막상 그려보니 웃긴 거야.(웃음) 그래서 기왕이면 같이 웃으면 좋겠다 싶어서 만화로 그려서 올렸고, 그렇게 내 웹툰은 ‘웃긴 걸 그리자'라는 의도로 시작하게 된 거지.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에서야 내가 웹툰 작가라는 걸 자각했어. 얼마 전에 친구들이랑 바자회를 한다는 걸 만화로 올렸는데, 내 웹툰을 보는 팬들이 바자회에 찾아와 줬거든!
내가 그 바자회 자리에 있었잖아. 나도 진짜 신기했어. 그리고 로빈이 셀럽되는 건 시간문제겠다 생각했어(웃음). 연재하고 있는 만화 이름이 <로빈 앤 더 시티>인 이유는 뭐야?
미드 <섹스 엔 더 시티>에서 따온 거야. 그 드라마의 주인공은 캐리지만, 캐리의 주변 친구들이 뉴욕 도시에서 살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도 같이 담은 거잖아. 웹툰도 마찬가지로, 내 이야기도 좋지만, 서울에서 같이 살아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도 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주인공에는 ‘로빈’도 있고 ‘더 시티’도 있는 거지. 그래서 내 만화는 도시에서 만난 사람들도 주인공이 될 수 있어. 도시 안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니까, 그런 사람들의 단편적 에피소드를 만화로 박제함으로써, 그 사람들도 추억이 생긴 것 같아 좋아하고, 또 재미도 있고.
로빈이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담긴 만화 이름이네. 다정해.
어릴 때부터 주인공보다 주변의 캐릭터를 좋아했어. 주인공인 피카츄보다 라이츄를 좋아하다 보니, '왜 조연은 안 다뤄줘?' 하는 이런 억눌린 감정이 있었던 거 같아. 그게 웹툰까지 이어진 듯 해.
웹툰을 연재하는 원동력은 뭐야?
사람들의 반응이랄까, 나는 웃기다는 말이 좋아. 웃으면 기분이 좋잖아.(웃음) 내 웹툰을 보고 실컷 웃었다는 댓글을 보면 뿌듯해. 그리고 내 웹툰의 팔로워들이 실제 사람인 게 놀라워. 매일매일이 놀라워.
로빈은 기질부터가 인플루언서야.
나는 좋아. 바라던 바야. 그게 그렇게 좋아.
나는 선택적인 e 거든(웃음). 난 내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을 때만 나와.
근데 그게 좋지 않아? 나는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 심지어 요즘은 매일매일 만보 걷기 한다니까?
만보 걷기 하는 이유는 뭐야?
만보를 걷고 나서 흐물흐물해진 근육을 스트레칭한 후에 하루를 마무리하면 건강한 느낌이 들어. 걷는 동안 음악 들으면서 망상하고, 그러다가 웹툰 소재 생각하고. 새로 찾은 루틴인 거 같아.
요즘 저녁이 딱 걷기 좋은 날씨라 다행이네.
그 외에도 로빈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혹은 미래의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한 루틴이 있어?
만화 업로드 주기를 주 2회 → 3회로 늘렸는데, 그거에 스트레스받지 않기 위해서 만화 그리는 시간을 정했어. 화 목 토에 만화가 업로드되는데, 화요일에 올라갈 만화는 일요일에 카페에서 재밌게 그리고, 월수금은 댄스학원 다녀와서 나머지 요일에 올라갈 만화를 그려. 이렇게 월화수목금토를 보내고, 일요일은 블로그를 쓰는 거지. 왜냐면 상업적인 글을 계속 쓰면 내가 잘 쓰는 글, 내면적 감정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어들잖아. 안 하다 보면 글 쓰는 법을 까먹게 되더라고. 그래서 계속 쓰려고 노력해. 그런 루틴이 7일간 반복돼.
나는 진짜 꾸준한 게 어렵더라. 루틴을 만드는 건 의지의 차이일 수도..?
근데 보면은 내가 좋아하는 걸로만 했어. 운동은 하기 싫어도 하긴 해야 하니까, 내가 좋아하는 댄스나 걷기 이런 걸로 그 시간을 채우는 거지.
운이 좋다면 좋다고 할까, 로빈은 좋아하는 걸 일찍 찾은 것 같네.
맞아. 극단적이었어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것만 했어 수학은 애초에 포기하고 영어랑 국어만 하고. (실소)
로빈이 좋아하는 것을 또 잘하기도 하니까 지금처럼 잘 풀린 거 같아.
오히려 반대야. 잘하니까 좋아하는 거야. 내가 어떤 일을 잘하고 있다는 그 감각을 느끼는 게 좋은 거지, 내가 이 판을 갖고 놀고 있다는 느낌. 그게 좋은 거지. 내가 좋아하는 건 대체로 내가 잘한다는 느낌이 있는 것들이었어. 그림도 마찬가지고. 잘한다는 느낌이 좋으니까 계속하는 거고, 그러니까 더 잘하게 되는 거고. 그게 동기부여 같아.
이제 로빈은 서른이잖아, 5년 뒤인 35살에는 어떤 모습일 거 같아?
5년 뒤면 무섭다.. 팔로워가 몇일까. (로빈은 진심이었다.) 반년 사이에 내 만화의 팔로워가 몇천 명이 될 거라 생각도 못했는데, 5년 뒤면 만 명은 넘을 거 아니야. 아무튼 35살에는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내 이름을 건 프로젝트를 하고 있을 거 같아. 유튜브가 되려나? 지금 생각할 수 없는 엉뚱하고 새로운 걸 하고 있을 거 같아.
마지막으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주니어 친구들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
저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해'를 반격하겠습니다. 고민하는 걸 고민하지 마세요!
세상에 정말 로빈다운 대답이다.
고민이라는 게 항상성이 있는 거 같아, 그래서 뜨거운 감자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거보다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보이는 것들 중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을 해보다가, 힌트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오기를 기다려보자는 거지.
좋아하는 일에 대한
90년 생들의 생각
[요즘 주니어들]
*인터뷰 프로젝트의 시작이 궁금하다면? 아래의 글을 읽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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