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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yoon Jun 19. 2022

곱슬머리 엄마의 매직 생활

엄마의 헤어스타일

현재의 '매직'펌 신기술이 나오기 이전,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시작한 것이 곱슬머리를 펴는 '스트레이트'펌이었다. 그때 당시만 하더라도 플라스틱으로 된 보라색 판을 머리에 대고 그위로 굽슬거리던 머리카락을 쫙쫙 펴주는 미용기술은 나에게 신세계였다. 미용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내 머리카락을 펴주는 기계들도 그렇게 단계별 업그레이드되었다.




어린 시절 속수무책이었던 곱슬머리는 그냥 숙명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떤 개선의 여지도 없다고 믿었다. 여기에 더해진 운명은 딸 셋의 머리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엄마가 늘 단발 아래로의 길이를 허용하지 않았던 사실이다. 곱슬머리 단발머리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한 번의 쓰라린 경험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커트머리의 중성적 이미지를 뿜어대던 선배의 모습에 매료되어 난생처음 커트머리에 도전하였다. 하지만 그건 곱슬머리한테는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수습 안 되던 헤어스타일 때문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사춘기 소녀 시절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굽슬거리는 머리카락이 하늘로 두둥실 떠올랐다. 그 강력한 한 번의 경험이 지금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커트머리를 해 본 적이 없게 만들었다.


나의 이런 머리카락에 대한 결핍은 살면서 늘 핸디캡이자 애정의 대상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머리카락에 대한 애착은 더 유별나다. 다른 곳은 몰라도 머리카락에 대한 투자와 관리는 늘 우선 대상이다. 미용실에 한번 가면 머리카락을 찰랑거리게 펴는 매직 파마를 하는데, 적어도 3시간 이상은 걸린다. 거기에 늘어난 흰머리를 커버하는 염색까지 더해지면 반나절을 미용실에서 꼼짝 마라 앉아 있어야 한다. 좋은 샴푸와 트리트먼트 제품, 영양제, 에센스까지 머리카락에 드는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 이런 나의 애착으로 지금은 과거의 부슬거리던 곱슬머리 아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20년이 넘게 머리를 펴면서 부작용이 생겼다. 슬프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이 부작용 때문에 곱슬머리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모든 일은 맞물림의 원칙이 적용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어야 한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게 된 진리다. 신기술로 곱슬머리를 탈출할 수 있었지만, 머리카락이 가늘어졌다. 머리카락이 가늘어졌다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뜻이고, 따라서 아픈 머리카락으로는 웨이브가 들어간 파마를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무릅쓰고도 난 3개월에 한 번씩 미용실 의자에 앉아 매직 기술을 내 머리카락에 적용한다.


나이가 들면서 애착 1호인 머리카락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갑지 않은 흰머리의 출현은 당혹스럽다. 처음 한가닥 발견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직장 상사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의 부작용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알게 모르게 내 머리카락은 잠식당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일주일을 못 넘기고 흰머리가 솟아난다. (아마 40대에 들어서 흰머리가 본격적으로 나기 시작한 것 같다) 흰색을 좋아하지만 머리카락의 색으로는 용납하기 힘들다. 잦은 염색으로 머리카락은 더 아파했고, 지금은 염색약을 사서 조금씩 자라난 흰머리에 발라가며 셀프 염색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마스카라처럼 생긴 새치커버 용액을 발라주면서 최대한 염색 주기를 늦춰주고 있다. 한때는 천연 염색제인 헤나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이렇게 안간힘을 쓰며 내 머리카락을 지키고자 노력하지만, 가는 세월을 막을 길은 없다. 언젠가는 나도 항복하겠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흰머리가 많아지면 말이다.



곱슬머리 타이틀로 힘들어했던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아이들만큼은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으로 태어나 주길 소망했다. 다행스럽게도 은은한 갈색머리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소유자였던 남편의 유전자가 승리하여 두 딸의 머리카락은 너무 만족스럽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곱슬머리 남자는 만나지도 결혼하지도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 역시 머리카락에 애착을 보이기 시작했다. 첫째는 대학생이 되자마자 머리카락을 노랗게 탈색시켰고, 이제 중학생인 둘째 역시 몰래 염색약을 사다가 혼자 머리에 물을 들였다. 이 무슨 무서운 유전법칙인지 아이들은 머리카락에 집착하고 있다. 분홍색, 회색, 파란색으로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던 첫째의 머리카락은 대학 졸업반이 되면서 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난 아이들의 건강한 머리카락이 부럽기만 한데, 그걸 모르고 자꾸 머리카락을 못살게 구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건강한 모습 그대로가 아름다워 보인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되니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다.


"나이를 먹으면 어쩔 수 없이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긴다. 우선 머리숱이 줄어드는데, 모낭의 30% 정도가 감소된다. 머릿결도 바뀌고 호르몬 변화도 심해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온갖 화학물질과 자외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모발 자체가 약해진다. 하지만 재주 많은 과학자와 화장품 업체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애쓰고 있다. 과학과 상업이 뭉쳤으니 가까운 미래에 더 우수한 헤어트리트먼트 제품이 짠 하고 등장할 것이다. 머릿결을 보면 그 사람의 기질과 기분 상태를 알 수 있다. 피부만 가꾸지 말고 모발도 평소에 소중히 가꾸고 관리해야 한다. 영양을 충분히 섭취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면 모발 문제의 80%는 저절로 없어질 것이다. 나머지 20%는 정성껏 관리해야 해결할 수 있다."

-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 中/ 미레유 길리아노 지음-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책에서는 헤어 관리의 중요성을 디테일하게 풀어놓았다. 그중에서도 머릿결을 정성껏 관리하기 위해 모발에도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발은 물론 건강에도 좋은 신선한 과일과 푸른 잎채소, 당근의 섭취를 위해 애쓴다. 이 외에도 연어, 고등어, 정어리, 견과류가 좋으며 굴은 건강한 모발을 가꾸는데 최고의 음식이라고 한다.

건강하게 나이 들고 싶다는 나의 소망은, 건강한 머리카락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곱슬머리로 돌아가기 싫은 마음이 슬기로운 매직 생활을 이어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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