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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yoon Jul 03. 2022

여름의 식탁, 그리고 여름 맛

더위를 이기는 힘

불 앞에 서는 용기가 필요한 온도의 나날들이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뭔가 요리를 한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게 힘든 계절 여름이다. 흘리는 땀만큼 식욕도 왕성해지지만, 정작 내가 뭔가 만들어 먹을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인스턴트, 배달 음식으로 때우기에는 이 여름의 온도가 너무 잔혹해서 기운을 앗아가기 일쑤다. 든든하게 잘 챙겨 먹어야 더위와 맞서 이겨낼 힘도 채워진다. 더위를 피해 주방에서 밥 짓는 시간을 새벽으로 선택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전날 씻어 놓은 쌀을 밥솥에 넣고 취사 버튼을 누른다. 그리고, 식탁에 올릴 음식들을 준비한다. 밥은 넉넉하게 지어 전용 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한다. 밥을 그때그때 하는 게 제일 맛있지만 더운 여름날의 핑계를 대며 꼼수를 부린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냉동밥은 전자레인지에 3분 돌리면 금방 지은듯한 밥처럼 얼추 그럴싸하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가스불을 최소로 사용하는 음식들을 식탁에 올린다. 


여름 밥상의 기본은 심플함이다. 그리고 더위에 지친 입맛을 잡아줄 강력한 한방도 장착해주면 좋다. 예를 들어 매콤한 청양고추가 들어간 자박하게 끓인 된장찌개에 호박잎을 싸 먹거나, 열무김치에 고추장과 참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쓱쓱 비벼먹으면 내리쬐는 태양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그래도, 입안이 까칠해져서 입맛이 없을 때는 콩국수나 시원한 육수의 잔치국수를 해 먹으면 여름의 기운을 즐겁게 마주 할 수 있다. 요즘은 마트에서도 콩국수용 콩물이나 콩가루가 너무 잘 나온다. 보관기간이 비교적 여유 있는 콩가루와 콩국수용 면만 사다 놓으면 언제든지 집에서도 전문점 못지않은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콩가루에 시원한 생수를 넣어 개어주고, 얼음도 동동 띄워 준비해둔다. 오이채, 토마토, 삶은 계란 등 뭐든 상관없다. 좋아하는 토핑 재료를 손질하고, 면을 삶는다. 유명한 콩국수 맛집에서는 볶은 호박채와 김가루, 다짐육을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곁들여 먹기 좋은 겉절이 김치, 양파, 고추, 마늘을 식탁에 미리 세팅한다. 잔치국수는 은근 손이 많이 가는 것 같지만, 육수를 미리 끓여 냉동실에 보관해 두면 일이 절반으로 수월해진다. 토핑 재료로 당근, 양파, 호박을 볶아 두고, 여유가 된다면 계란지단도 예쁘게 준비해 둔다. 김치말이 국수는 더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시판용 냉면 육수를 냉동실에 보관하다가 먹기 전에 살얼음이 낄 정도로 해동해 주고, 푹 익은 김치를 송송 썰고 오이, 삶은 계란을 토핑 해주면 끝이다.


더운 날이 짜증스럽고, 불쾌할 수 있지만 이 더위를 즐길 수 있는 여름 맛이 위안이 된다. 풍성한 과일들과 시원한 음료들은 더위에 더 빛을 발한다. 여름의 식탁에서 이 계절이 주는 맛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가을의 문턱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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