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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a yoon Nov 20. 2022

소소한 하루살이 여행

일 따라 여행 - 여행자의 시선으로

혼자만의 시간과 여행은 늘 마음에 품고 있는 로망 같은 것이다. 언젠가는 이라는 단서를 달고 가느다란 희망을 의지 삼아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일과 함께 떠난 지방 출장길에 업무와 함께 혼자만의 시간을 슬쩍 끼워 넣고 음흉한 미소를 머금는다. 완벽한 하루의 맛을 느끼리라 설렘을 장착한 채 말이다.


주 생활권인 대구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포항은 매력적인 도시이다. 역동적인 느낌의 도시랄까, 바다를 품고 있는 공기는 그 어느 도시보다 강렬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죽도시장"

포항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죽도시장은 주말이면 외지인들로 시끌벅적하지만, 평일에는 비교적 한산한 모습이다. 수산물을 파는 곳이 단연 인기이지만, 야채며 과일가게, 식육점도 눈에 들어온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이끌려 시선을 옮기니 김을 구워 파는 집도 있다. 이제 시즌을 맞이하는 과메기들도 자태를 드러내고, 각종 젓갈을 파는 가게도 발걸음을 붙잡는다.

현지인 맛집이라 할 수 있는 수제비 골목으로 들어서면, 같은 가게가 십여 군데는 되는 듯 펼쳐져있다. 어떤 곳을 가든 비슷한 맛이라는 현지인의 귀띔에 비교적 한산한 가게에 자리 잡고 수제비 한 그릇을 주문한다. 메뉴는 아주 심플하다. 모든 가게가 동일하다. 칼국수, 수제비, 칼제비(칼국수+수제비) 모두 오천 원이다.(예전에는 삼천 원인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주문과 동시에 사장님은 능숙하게 수제비 반죽을 떠서 팔팔 끓고 있는 솥에 손이 보이지 않을 속도로(거의 묘기 수준) 넣는다. 1차 익혀낸 반죽을 건지게로 떠서 2차 솥에 넣고 부추를 한소끔 넣어 끓인다. 얇디얇은 수제비의 반죽이 입안에 촥촥 감기면서, 이따금 씹히는 감자도 구수하게 넘어간다. 취향껏 다진 고추와 양념장을 더 추가할 수 있게 비치되어 있다. 처음 자리에 앉았을 때 따뜻한 것과 시원한 것 중 어떤 걸 드릴까요? 하고 물어보신 보리차가 참 맛있다. 둘러보니 가게들마다 똑같이 보리차를 제공하고 있었다. 무심한 듯 쓱 챙겨주시는 손길이 정겹다.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따뜻한 수제비 국물과 깍두기를 더 담아 주신다. 그리고 남자분들께는 수제비 양도 듬뿍 챙겨주신다. 시장 인심이 그렇게 푸근할 수가 없다.

"영일대해수욕장"

포항의 대표적인 해수욕장으로 예전에는 북부해수욕장으로 불렸다. 옛날에는 해수욕장 본연의 모습에 충실했다면 지금은 관광지의 면모가 짙어가는 세련된 모습이다. 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의 가게들이 생겨나고 있어 포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핫플로 자리매김하는 듯하다.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길과 자전거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호젓하게 걷기에도 조깅을 하기에도 탐나는 길이다. 아침 태양을 마주하며 달려보고 싶은 욕구가 꿈틀대기 시작하니 말이다. 여전히 횟집과 물회 집이 인기 있지만, 최근에는 카페들과 이색적인 음식점들도 많이 생겨났다. 영일대해수욕장에서 환호공원 방면으로 끝 지점에 다다르면, 요란한 네온사인과 시끌벅적한 소음에서 벗어나 마치 이탈리아의 작은 해안 섬에 온 착각이 들 정도로 고요함이 맞이해 준다. 저녁 석양이 질 무렵 도착한다면, 멋진 바다 풍경을 덤으로 시선에 담을 수 있다. 조용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바라본 풍경은 소란스러웠던 마음을 잠잠하게 만들어주기에 충분했다. 한참을 바라보며 이 시간을 누리고 기억에 심었다.

"스페이스 워크"

최근 포항의 핫플로 떠오른 필수코스다. 포스코의 기부로 지어진 건축물로, 벌써 수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과연 올라가 걸을 수 있을까 항상 의문이 들었다. 명성에 걸맞게 한걸음 한걸음 옮길수록 다리가 주체 없이 흔들였다. 바람이 부니까 내 다리도 흔들리고 스페이스 워크도 흔들렸다.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용기 내어 끝까지 올라가니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오는 눈앞의 풍경들이 아찔하게 들어왔다. 인생 사진 수십 장 건져내고 나서야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겨우 내려올 수 있었다.



매일 그럭저럭인 하루의 온도는 미지근하기만 하다. 느릿느릿하게 어슬렁 거리고 싶은 마음을 바쁜 호흡에 그냥 묻어두고 가기 일쑤이다. 축 늘어진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어줄, 미지근한 온도를 뜨겁게 달구어줄,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을 선물해 주는 건 나를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고요한 시간을 갖는다는 건 어쩌면 밥보다 꼭 필요한 영양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일 때문에 떠난 곳이지만 여행자의 기분으로, 시선으로 거닐다 보니 충만함이 몰려왔다. 이탈리아의 어느 섬마을로 떠난 여행처럼 잔잔한 여운이 계속 일상에 스며들었다. 그런 기운으로 또 다른 일상을 힘차게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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