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앞서 저에게 목표가 된 '직업 찾기'에서 직업이란, 꿈을 이루는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한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하지만 단돈 천원도 벌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괜찮다고 자신 있게 말하던 꿈이 있었다면, 배우였어요. 연극배우가 된다면 제가 겪는 배고픔과 추위마저도 낭만적인 삶이 될 것 같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모두에게 환영받는 배우가 되는 것만이 꿈이 아니었어요. 연기가 직업인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뿐이죠. 이런 꿈을 가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없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으로 살아보기"라는 기적을 반복하며 살아갈 수 있겠다는 기대 하나였어요. 배우로서 유명해진다든지 하는 성공을 하지 않더라도 연기를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가능했을 겁니다. 이런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왔냐 하면요, 제가 직업관에 있어서 언제부터 이렇게 길을 잃은 사람이었냐라는 의문을 가져본다면 그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어릴 때 가진 꿈이기도 하지만 제가 쉽게 넘을 수 없었던 문턱은 다수가 그렇다시피 부모님의 반대였어요. 개인적으로 사랑을 많이 받으며 컸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걱정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무엇보다 우리 가족은 걱정이 든다면 그 즉시 표현하고 또 그 걱정을 감수한다기보다 조금이라도 걱정이 되게 하는 일은 하지 않기를 권유하는(?) 분위기였어요. 가족으로서 그것이 전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아쉬운 점은, 그저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나를 한 번 믿어보기를, 걱정이 되더라도 내 경험을 위해 고통받아주기를 요구해보지 않았다는 것이죠. 제가 그때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집을 피워 해당 직업에 관련된 전공을 목표로 두고 입시를 계속해서 시도했거나, 오디션을 본다거나 하는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시도를 반복했다면 그 결과는 3가지로 나뉘었을 거예요. 유명세를 떠나 한 배우로 살아가고 있거나, 직장인이 되었거나 자영업자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 "걱정스러운 반대"는 오히려 그 꿈에 대한 저의 의지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단계였을 텐데, 목표가 무엇이었든 그것에 대해 강하게 도전해보지 않았다는 것에 적잖이 아쉽습니다. 오로지 저에 대한 아쉬움이에요. 제 타고난 성격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허락'이 주는 안정감안에서만 움직이겠다는 안일함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의외로 제가, 많은 사람들이 가져본 경험 중 못해본 것들이 "어른들이 생각했을 때 위험한 일"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네요.
아무튼 제게도 결국 성인이 된 이후의 일로 미루고, 그 후에는 경제적인 독립을 한 이후의 일로, 이렇게 미루고 미루면서 잊힌 꿈이 있어요. 이제는 그 직업에 대해 원함이 없지만, 아직도 어리고 끼가 넘치는 꿈나무들이 오디션 프로나 신인 또는 아역배우로 나오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잊힌 꿈인 것에도 불구하고 못 닿아 본 것에 대한 미련은 아쉬움 그 자체로도 남게 되나 봐요.
이 이외에도 제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