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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넬로페 Jul 24. 2023

플로라

사라져 버릴까 봐

숨조차 쉬기 힘들고 눈도 잘 떠지지 않지만 서울로 출장을 갑니다. 저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웃고 이야기를 할지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가족이 아프니 제가 지역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는 것이 무슨 의미이며 이 사회가 좀 더 나은 세상이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싶습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밤새 울고 또 울다가 밤을 새우고 말았네요. 정말 맘 같아선 다 내려놓고 플로라 곁에 있고 싶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취소하지 못하고 서울 가는 기차에 앉아있는 제가 바보 같습니다.


플로라는 사일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먹기만 하면 토를 하다가 급기야는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수액으로 버텨내고 있지만 너무 힘겨워 보여요. 하지만 강아지 병간호를 이해해줄만큼 공공기관의 프로그램은 아니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유연하지 못합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것도 강아지가 아픈건 공식적으론 사적 재산의 손괴정도로 보여지니까요.


처음엔 플로라 위벽이 두꺼워진 상태여서 염증 수치가 높은 줄만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플로라의 몸에 작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매일 뽑아대는 피검사가 우리 플로라는 얼마나 두려울까요…아직 세 살밖에 안된 어린 강아지에게 이게 무슨 일인가요. 오늘은 시티 촬영에 내시경 조직검사까지 앞두고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은 국제개발을 이야기하러 가다니요.


지금 같아선 이 세상 굴러가는 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인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모든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편으론 플로라라는 멋진 강아지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만 살았지 아이의 아픔을 받아들일 준비를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픔은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찾아오는 것인데 바보처럼 준비도 못하고 이 감정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네요.


제가 이 아픔을 어떻게 견뎌내야 하는 건가요. 플로라 곁에 있고 싶습니다.


플로라야 엄마 빨리 다녀올게. 너무 미안해. 조금만 버티고 있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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