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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식 Feb 12. 2024

정열적인 춤이 있는 나라 멕시코

멕시코 베라크루스 (Veracruz)의 라구나버디 원자력발전소를 다녀와서

지난 원고는 전부 국제기구의 응모, 서류 준비, 면접등 메마른 이야기만을 주로 하였다. 앞으로 몇 편의 원고는 필자가 국제원자력기구에 근무하면서 약 40개국의 국가를 방문하였는데, 방문 시 기록한 노트에서 몇 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방문한 국가는 대부분 원자력발전소를 가동 중이거나 향후 신규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국가의 기술자문, 교육 등을 위해 방문하였다. 먼저 남미로 가보자. 


멕시코는 세계에서 13번째로 국토가 큰 나라이다. 북쪽으로는 미국과 경계를 하고 남쪽으로는 과테말라와 경계를 하는 나라로, 인구는 1억 8백만으로 중남미에 위치하여 풍부한 지하자원과 값싼 노동력으로 선진국의 진입으로 목전에 두고 있다. 비엔나에서 멕시코의 베라크루스(Veracruz)로 가는 방법은 먼저 프랑크 푸르터에서 멕시코 시티의 직행 비행기를 탄다. 프랑크 푸르트에서 멕시코 시티까지는 약 11시간 비행거리로 8000 Km 정도이다. 멕시코 시티에서 라구나 버디(Laguna Verde) 원전이 있는 Veracruz까지는 약 500 Km로 한 시간 비행거리이다. 거의 24시간 의 비행거리는 먼 곳이다. 멕시코가 석유를 생산, 수출하는 나라로써 성장 잠재력이 있는 나라이므로 프랑크 프루트에서 멕시코로 가는 비행기는 항상 만석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비행기, 특히 비즈니스 혹은 일등석이 만석이면, 그 나라는 경제 사정이 점차 나아진다는 표시이므로 물건을 팔고, 사고자 하는 상사원으로 비행기가 만석이 된다. 


멕시코는 현재 2기의 비등형 경수로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1990년에 운전을 시작하여 약 25년 운전하였다. 라구나버디(Lagunaverde) 발전소의 성능향상과 안전성 제고를 위하여, 원전의 수명관리 프로그램 개발과 원자로 감시시편의 검사장비 구매지원을 위하여 필자가 여러 번 멕시코를 방문하였다.


한국과의 관계는 구한말 1904년 말 우리나라 노동자가 일본 지주와 계약으로 멕시코의 사탕수수밭으로 이민을 떠난 지 100년이 되어 10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고 보도된 바와 같이 우리나라와는 오랜 관계가 있는 나라이다. 멕시코라고 하면 무엇이 생각날까? 멕시코라면 프란시스코 판초 비야라는 큰 챙의 모자를 쓰고 있는 혁명군 장군과 테킬라는 술, 그리고 정열적으로 춤을 추는 무희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테킬라는 선인장의 종류인 용설란을 발효시켜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의 소주처럼 일반 민중들이 즐겨 마시는 25- 30도 정도의 멕시코 민속주이다. 16세기 초 스페인에 정복되기 전 멕시코 고원에는 아즈텍 문명의 원주민들이 수천 년 동안 용설란의 즙으로 양조한 풀케(Pulque)를 마셔 왔다. 유서 깊은 술 풀케는 1530년경 스페인으로부터 유입된 기술로 증류됐다. 이 술은 마을 이름을 따서 테킬라 (Tequila)라고 부르게 됐다. 

테킬라 칵테일

테킬라를 마시는 방법은 테킬라 한잔 털어 넣은 뒤, 손 등의 엄지와 검지 사이에 묻혀 놓은 소금을 핥고 레몬 조각을 씹는다. 이런 음주법은 옛날 테킬라의 독특한 역한 맛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테킬라는 섬유가 썩은 듯한 퀴퀴한 냄새와 거친 맛이 강했다. 술꾼들은 지독한 냄새를 가시기 위해 짜디짠 소금과 신 레몬을 안주삼아 곁들였다. 이런 테킬라 음주 방법은 오늘날에는 경쾌한 테킬라 노래 연주와 함께 야성미 넘치는 멋진 의식으로서 자리 잡게 됐다. 


멕시코 사람들이 테킬라의 첫 잔을 마실 때는 살루드(salud, 건강을 위하여), 두 번째 잔은 디네로(dinero, 재복을 빌며), 세 번째 잔은 아모르(amor, 사랑을 위하여), 네 번째 잔은 티엠포(tiempo, 이제는 즐길 시간)를 외치며, 건배하는 멕시코 사람들은 한잔의 테킬라와 춤으로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잊어버리고 삶을 영위한다.  테킬라 중에는 벌레를 넣은 제품이 있다. 병 밑바닥에 가라앉은 벌레를 담은 마지막 잔을 마시는 것은 용감한 남자의 몫으로 여겨진다. 이 벌레는 용설란에서 잘 자라는 구사노(gusano)라는 나비의 애벌레로, 고대로부터 아즈텍 신관들은 테킬라에 이 벌레를 넣어 마셨다고 한다. 애벌레가 변신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것처럼 하늘로 날기를 원하는 이즈텍문명의 풍속일 것이다. 


멕시코 시티에서 약 60 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7세기 경 테오티우아칸 문화의 꽃이며 신을 접하는 장소인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가 있다. 죽음의 거리(Death street)라고 알려진 이곳에는 7세기 경 인구 8만 명과 신관이 살았던 곳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견줄 수 있을 만큼 거대한 태양과 달의 피라미드가 있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높이 약 70m 정도로 정상에서 태양신을 숭배하며, 특정한 의식이 있는 날에는 15-16세의 어린 예쁜 소녀의 살아있는 가슴에서 심장을 꺼내어 태양신에게 바치는 의식이 행하여졌고, 달의 피라미드에서는 역시 15-16세의 어린 미소년의 살아있는 심장을 달에게 바치는 의식이 행하여졌던 곳이다. 정확하게 정방형의 도시로 건설되었으며, 그 당시 8만 명이 살 정도 큰 도시가 거리, 피라미드, 신전, 모이는 광장등, 놀란만 하게 도시계획이 잘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테오티우아칸 문화가 7세기 중엽에 붕괴하였다. 


테오티우아칸 신전 -1


테오티우아칸 신전-2


이어서 톨텍· 아스테크 두 문명이 잇따라 테스코코 호반에 자리 잡았다. 아스테크족이 건설한 테노치티틀란은 ‘신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으로 인구 20만∼30만 명에 이르는 거대한 도시였다. 그 당시의 꽃미남은 얼굴이 정확하게 삼각형 형태로 앞 뒤가 완전한 납작한 형태의 머리가 미남의 필수 조건이었다. 짱구가 되면 미남이 아니므로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머리 앞뒤에 나무판으로 감싸고, 눌러서 머리가 납작하고 얼굴의 삼각형의 형태가 되도록 만들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그 당시 이러한 형태의 얼굴이 잘 생긴 기준이 되었다. 멕시코 시티에 있는 인류 박물관에 가서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의 얼굴들을 흙, 돌로써 조각한 것을 볼 수가 있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 그 당사 사람들의 얼굴 형상을 알 수가 있다.


머리가 납작한 아스테크족 어린이 조각상
주술적인 방법으로 악신을 쫓는다는 행사


평화로운 멕시코 원주민들은 1521년 스페인의 장군 코르테스가 원주민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베라크루스(Veracruz) 항구도시에 처음으로 상륙했을 때, 그 당시 원주민들은 베라크루스 항구에 도착한 코르테스 장군의 흰 수염과 흰 얼굴을 보고 그들의 신으로 알고, 정복자를 신으로 추앙하고, 한 번의 전쟁도 없이 나라를 정복자인 스페인들에게 내어 주었다. Veracruz의 의미는 Vera는 처음으로 Cruz는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으로 스페인 군대가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파하기 위하여 입항한 항구를 의미한다. 

Veracruz의 근교에 있는 멕시코 피라미드 신전

이후 1810년까지 스페인의 지배에 있었던 멕시코는 아즈텍 문명이나 마야 문명에 의한 도시의 건설이 아닌, 유럽풍인 광장을 중심으로 도로가 동서남북으로 정연하게 구획되고 광장과 공원이 배치된 근대적인 시가였는데, 이곳은 Neuva Espaniol (새로운 스페인)로서 스페인에 의해 통치되었다. 

베라크루스 항구에 건축된 스페인풍의 건물, 건물, 현재는 해군본부로 사용

1810년 멕시코 독립의 선구자 이달고(Miguel Hidalgo y Costilla) 카토릭 사제의 독립 선언 이후, 1876년부터 1911년까지는 프로피리오 디아스 (Profirio Diaz)가 정권을 잡아, 8번에 걸쳐 대통령에 재선 되면서 30년 동안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디아스의 시대에 멕시코는 대외적으로는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철도가 놓이고, 광산이 새롭게 개발되고, 항구가 만들어졌으며, 전신·전화의 통신망이 펼쳐졌다. 또한 일련의 은행이 설립, 상업이 조직적으로 정비되고 수출이 늘어났으며 공업이나 농업·목축업도 확대되었다. 이에 정부의 재정은 흑자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외국 자본의 유치에 의한 경제 발전이었다. 개발 그 자체는 성공을 거둔 것이었지만, 국민이 정신을 차린 1910년에 외국의 자본가들은 이미 멕시코 토지의 약 1/5을 소유한 상태였다. 또한 대부분의 상업이나 공업도 외국의 소유가 되어 버렸다. 국토의 많은 부분과 주요한 기간산업이 외국의 자본에 의해 소유, 운영되어 많은 부분의 멕시코 경제가 외국인에 의해서 지배되었다.  1910년 11월 20일 반 정부지도자인 마데로는 디아스 체제를 반대하는 멕시코인들에게 당일 18시를 기해 일제히 봉기할 것을 호소함으로써 멕시코 혁명의 불을 댕기고, 혁명군과 정부군과의 충돌 후 장기집권 말기의 무력한 정부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되었다. 그 후 멕시코는 지금까지도 멕시코에서는 대통령의 6년 단임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게 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제는 아무도 대통령의 단임 원칙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으며, 이는 멕시코 정치의 철칙이자 불문율이 되었다.  


이러한 혁명정부의 전통은 멕시코가 중남미 국가 가운데 미국에 가장 비협조적이고 비판적인 국가라는 데서 드러난다. 게다가 국민들 사이에 반미 감정 역시 높아 어떤 정치 지도자도 미국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멕시코 경제의 75% 이상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지만, 외형적으로는 미국에 대해 도도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정치 지도자가 미국에 휘둘린다는 인상을 줄 경우 그의 정치생명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정치 지도자들은 경제적 손실은 둘째 문제이고, 우선은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감정에 거슬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베라크루스의 항만에 설치된 조각품, 철도를 놓고 있는 노동자의 모습

Veracruz는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로 도심의 중앙부의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였다. 인구 90만 정도의 작은 도시로 2월 첫 주에는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 같은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도시 중간중간에 있는 커피점이 있다. 커피도 우리처럼 작은 컵에 마시는 것이 아니고, 주스 컵에 중간 정도 압축으로 축출된 진한 커피원액을 붓고 그 위에 뜨거운 우유를 부어 마시는 형태이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Veracruz의 커피의 질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스페인 식민지 하에 있었던 나라들과 같이, 저녁을 9시부터 시작하여 새벽 1-2시까지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생각한다. 음악과 춤을 즐기고 밤을 즐기는 민족이다. 또한 주말의 저녁 시내의 중심광장의 무대에서는 멕시코의 전통 춤, 탭 댄스, 음악 등을 연주하고 무대의 밑에서 많은 일반 민중들이 춤을 즐기고 있다. 춤을 출 때는 여자는 반드시 작은 부채를 들고 상대방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탱고와 같은 춤을 즐기고 있었다. Veracruz에서는 젊은이들의 살사와 같은 정열적이고 엄청난 에너지가 분출하는 춤은 볼 수가 없었다.   


Veracruz는 항구를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로 선박 수리 및 해변에는 많은 아름다운 요트가 있는 것을 보면 개인의 삶의 격차가 엄청나게 큰 것 같다. 요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빈부의 격차가 심하나 일반적인 생활비가 그렇게 비싼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해산물을 중심으로 하는 요리가 발달하여 토마토를 이용한 수프에 해산물을 넣어 끓인 음식등이 유명하다. 또한 한국에서는 귀하고 비싼 자연산 대하를 쉽게 맛볼 수가 있다.


베라크루스 항만에 접안하고 있는 요트

이제 다시 주제인 원자력발전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멕시코의 원전은 발전소의 건설 기간이 18년 걸렸고, 전체 멕시코의 전력의 5% 정도를 공급하고 있다. 800 MWe 비등경수로 원전의 2기가 가동 중이며, 전적으로 모든 기술은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2기에 근무하는 발전소 직원은 1400명 정도이며, 한국의 원전에서 근무하는 단위 호기당 근무하는 직원의 수 보다 50% 정도는 많은 것 같다. 인력의 분포를 보면 많은 인력이 업무를 서로 공유, 중첩되거나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직무분석이 분명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체적으로 라구나 버디 원전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태도는 그들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무엇을 하여야 되는지 분명치 않은 것 같다. 발전소 내부의 너무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한잔의 테킬라와 마시고 멕시코시티에서 프랑크 푸르크로 떠나는 시간을 저녁 9시, 멕시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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