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디어 스타벅스
"스타벅스에서 너 상 줘야 돼." 나의 일상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고, "집에서 내려마시면 되잖아?" 하고 묻기도 했다. 시도를 안 해봤던 건 아니지만 번번이 실패했던 것은, 커피 맛보다는 그 공간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소소히 글 쓰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나의 오피스, 시험기간에 도서관에 자리를 맡지 못한 낙오자끼리 수다도 떨면서 공부하는 곳. 동기인 남편과 처음 '밖에서' 만난 곳. 지금도 주말에 이불을 동굴모양으로 두고 나가 맨 얼굴로 가족과 파니니와 머핀으로 간단한 아침을 먹고, 어느새 동네 바리스타와 친해져서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하는, 소중한 나의 커피숍이라는 공간.
이제 그리운 일상이 되었다. 3월 27일을 기해, 영국의 모든 스타벅스 및 카페들이 문을 닫은 것이다. 이제 꼼짝없이, 나는 '진정한 자가격리'를 경험하게 되었다. 근처에 사는 친구의 남편마저도 이 상황에 내가 제일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렇지, 어린아이가 있으니까." 친구가 동조하자, "아니, 현수 씨 이제 커피숍을 못 가게 됐잖아."
쓸쓸히 캡슐 기계를 청소했다. 드리퍼를 꺼내 슬픈 얼굴로 커피도 내려보았다. 하다 보니 빠져들어, 우유 얼음을 얼려서 아이스 라테를 만들고, 이렇게 저렇게 간을 보며 '퍼펙트 아이스 모카'도 만들었다. 홈카페에 입맛도 길들여진다. 남편은 원두를 좀 굵게 갈아서 프렌치 프레스로 내리면 되고, 나는 얼음을 두 개 넣은 아이스커피다.
이렇게 '입'은 해결이 되었지만, '집 사람'이 되고 보니,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공간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사람이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는 줄 몰랐어." 자택 근무 3주 차가 된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 말을 했다. 카페나 오피스에서는 커피 한잔 마신다고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집에서는 본인이 마신 프렌치 프레스와 잔을 씻고, 캡슐 기계를 씻어두는 등 일이 복잡하다. 한 잔의 커피 뒤에는 커피 찌꺼기와 캡슐도 나온다. "그냥 내 건 만들지 마.. 씻기 귀찮아.." 식사 한 번만 해도 금방 씻어둔 그릇이 하나 둘 다시 쌓이고, 소포 하나만 받아도, 그냥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먼지와 쓰레기가 쌓이는 공간. '집' 공간에 대해 탄식과 감탄을 함께 내뱉게 된다.
집을 세 부분으로 나눈다면: 키친, 키친, 그리고 키친.
그럼에도, 모두에게 먹고사는 일은 더욱 중요해졌다. 그동안 학교와 유치원에서 점심과 간식을 먹던 것을 비롯, 우리 가족은 한 끼 식사에 대해 심혈을 기울이기보다 이지고잉에 가까웠다. 주말이면 간단한 테이크 어웨이나 외식도 하곤 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레스토랑과 프랜차이즈 음식점, 배달 등이 문을 닫은 지금, 예전 수준으로 장을 보고 요리하면 기별도 가지 않는다. 식료품 쇼핑을 다녀오면, 어느새 둘째부터 남편까지 모여서 쇼핑백을 열어보고 있다. 메인 셰프인 엄마의 '캐퍼'가 부족하다는 것이 서서히 느껴지자, 가족들은 뭔가 먹겠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오렌지 주스를 얼리고, 계란 프라이를 하고, 유부초밥 포장지의 설명서를 읽어보는 등, 각자만의 방법으로 배를 채운다. 두 살짜리 둘째마저도 적극적으로 하이체어를 끌고 다니며 올라가서 냉장고를 열어 본다. 처음에는 주방에 배고픈 네 명이 함께 있는 것이 영 불편했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집은 레스토랑이 아니잖아?"는 나의 유행어가 되었다. 키친은 엄마 혼자 마술을 부려서 CF 같은 식사를 차려내는 곳이 아니라, 같이 뭐 먹을까 고민하고, 같이 만들고, 함께 맛보는 공간이라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하루 종일 넷이 지내며, 좀 흩어져 있으면 좋을 텐데, 침실 공간은 낮 동 안 텅 비어있다. 영국 문화에서 침실은 말 그래로 '베드룸'을 의미한다. 한국의 집에서 방에 책상, 책장, 서랍 옷장 등, 기본적인 생활공간이기에 아이들이 혼자 숙제도 하고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영국에서는 책상이 없는 아이들 방도 많다. 콤팩트하게 싱글 침대와 작은 서랍 하나 들어가는 방도 '제대로 된 방 decent size room'으로 친다. 상대적으로, 그리 넓지 않은 평범한 집에도 거실 reception room공간을 굳이 작게 나눠, 두 개, 세 개의 거실이 있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 가운을 입고 방을 나온 후 낮 동안에 내내 거실에 있는 책장에서 책을 꺼내 보고, 식탁에서 공부하고, 이어서 저녁 먹고, TV도 보고 하품을 하면서 방으로 간다. 즉, 잠자는 외의 나머지 활동은 모두 공동 공간에 모여있다는, 자가격리의 현실에서 조금 무서운 이야기이다.
우리 모두는 숨을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 언제 이래 보겠어, 함께 지내는 시간이 소중하다지만, 하루 종일 지내다 보면 조용한 편인 줄 알았던 큰 아이가 생각보다 엄청난 수다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 아이가 보던 TV 프로그램을 함께 보며 나도 좋아하는 '척' 했던 것이 화근이 되어, 잠시 쉬고 싶은 TV타임에 아이는 "엄마, 이것 봐" 계속 업데이트를 해주고, 그러면 나는 어느 순간 화가 나기도 한다. 작은 아이는 조숙하게도 벌써 슈퍼영웅 놀이에 깊이 빠져, '으악~으악'하며 실감 나게 연기하기를 요구한다. 잠깐 떨어지기 위해, 아침 먹고 한 시간, 저녁 먹고 30분 정도, 나는 갓 내린 커피를 들고 피난을 가는 것으로 정했다. 그냥 식탁 한편에 앉아보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남편이 웃고 다투는 소리에 귀가 움직이는 느낌. 버티다 보면 머리 피부까지 움직이는 기분이다..
결국 나는 계단이 숭숭 뚫려있어, 무서워서 올라가지 못했던 조그만 다락방에 부들부들 떨면서 오르게 되었다. 거미줄을 쳐내고 앉아서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뽀로로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그 잠깐의 시간은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 안정감과 나 자신에 대한 집중. 나 자신보다 더 큰 것에 대한 갈증. 독립된 공간이 주는 기쁨은 전에 느끼던 것보다 몇 배나 컸다.
태블릿을 꺼내서 하다가 혼이 난 첫째 아이가, 화가 나서 벽장에 담요를 들고 들어가 있길래, 그 위에 천을 덮어주고, 위에 두꺼운 책들을 올려놔서 아예 고정시켜주었다. 둘째에게도 베란다 conservatory에 빨랫대 위에 커튼을 덮어주었다. 마음에 들었는지, 아이들은 종종 좁은 공간에 들어가 쉼을 맛보았다. 그렇게 숨어있다가 나오면, 실상 우리 모두 온유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다.
프라푸치노보다 달콤한 집, Home Sweet Home
달팽이처럼 짐을 어깨에 지고 다니는 유학생 시절, 집을 꾸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많고, 불편한 매트리스에서 자도 견딜만했던 더 젊은 시절. 일 년 내내 긴장하고 살다가 한국 친정집에 가면, 친정아빠는 "어서 씻고 쉬어라" 하셨다. 목욕하고, 보송한 이불 위에서 한 참을 자고 나면 몸이 풀어지고 너무나 개운했다. 비로소 일 년 만에 '집'에 온 기분이었다.
잊고 있었지만, 집은 그런 곳이다. 진짜 잠을 잘 수 있고, 내 필요에 따라 공간 안에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곳, 원하는 색깔로 베개 커버도 바꾸고, 아무 때나 계란 프라이도 해먹고, 무서운 바이러스로부터 숨을 수 있는 곳.
모든 것이 좀 더 간편하던 때, 나는 집의 일 부분을 떼서 스타벅스에 '외주'주었던 것 같다. 편안함,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 조용함. 다시 집으로 돌아온 지금 알게 된 것, 생각보다 집 공간의 능력은 더 크다는 것, 그 안에서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