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영국, 초등학교 유치원 동시 운영 중
한 달째, 우리 홈스쿨에서는 아홉 살 반, 두 살 반 동시 수업 중이다. 말 그대로 동시 수업, 큰 애와 수학 문제를 풀면서 둘째는 옆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둘째가 블록을 꺼내주고 집중하는 틈을 타서 큰 아이의 피아노를 봐준다.
우리집 두 살 짜리는 이 상황이 너무나 행복하다. 하루 일과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들과 딱 붙어 지낼 수 있으니까. 이 관계의 축복속에서, 매서운 아기의 눈으로 하나하나 관찰하며,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김치를 자기도 먹겠다고 두 발로 서서 항의한다. 형이 자기를 귀찮아하는 눈치면 한숨을 쉬면서 쓸쓸히 방을 떠난다. 관계는 어떤 교재나 동영상보다도 좋은 자극을 제공하는 듯 하다.
문제는 아홉 살짜리. 그동안 인강, 온라인 교육이 강조되지 않았던 영국에서 장기간 학교 문을 닫는 상황이 예측되자, 어떻게든 학습 자료를 제공하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계속되었다. 담임 선생님들은 집집마다 찾아와서 교재를 우편함에 넣고 가고, 매일 이메일로 급조한듯한 짧은 숙제를 전송하기도 했다. 이제는 MS팀, 줌 Zoom 등의 플랫폼을 이용해서, 숙제를 그날그날 제출하먄 피드백을 주기도 하고, 만들기 숙제를 올리기도 하고, 댓글을 달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온라인 조회를 하는 등 차츰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모든 움직임은 공부보다는 아이들이 아직 '학교'와 '학기중'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음을 계속 확인시키는데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숙제의 양은 하루의 학습량으로는 여전히 작고, 엄마들은 아직도 너무 늘어지지않고 어떻게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특히 우리나라 중,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세컨더리 스쿨 입시를 앞둔 부모들은 '학습'을 고민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두세 번 테니스 레슨을 받았었는데, 이제는 전혀 못하니까. 바이올린 선생님은 레슨을 온라인으로 하자고 하는데,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어." "창조적 글쓰기 온라인 강좌가 있길래 등록해봤는데, 이것만 해도 되는지 모르겠어요." 엄마 아빠도 처음이다보니 '홈스쿨', 모르는것 투성이다.
시계를 볼 필요없는 시간표
학교에서도, 방송에서도 매일같이 자료를 보내오지만, 가정마다 아이마다 이것도 다르게 적용해야 하다보니, 모든 재량권은 현재 부모에게 달려있는 셈이다. 우리 집 홈스쿨은 처음에는 어느 기준에 맞출지 몰라 '정상 수준' 또는 학교 수업의 형식을 따라가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모두 부질없었다. 처음에는 자못 엄중한 얼굴로 "앉아봐" 하며 90년대에 방학숙제로 그리던 동그란 생활계획표를 그리고, 시간표를 짰지만, 2살 반 9살 반 동시운영이라는 현실때문에 홈스쿨 스케줄은 시계보다는 상황에 의지하게 되었다. "엄마, 수학 숙제는 언제 해?" "응, 오늘 수학은 도준이 낮잠 잘 때야" "테니스 공치기는 언제 해?" "응, 오늘 PE시간(체육시간)은 아빠 원격회의 끝나는 시간이야" 빨리 숙제를 하고 놀고 싶은 아이가 "얼른 하자"하고 조르면 "좀만 있다가 하자" 역세가 역전되기도 한다.
이렇게 소소하기 짝이없는 홈스쿨, 작은 특징이 있다면 창조적인 과목들이 커리큘럼에 적극 반영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한 번이나 쿠킹 클래스가 있지만, 홈스쿨에서는 '너의 점심은 스스로 만들라 FYOS fix your own sandwich '는 매일 이루어지는 주요 과목이다. 그 외에도 '쨈 만들기'(쨈이 떨어진날), 수업 중간중간 '정리하기' 타임도 자주 있을 뿐 아니라 홈스쿨에서 매우 강조되는 과목이다. 홈스쿨 한 달 차, 작은 아이도 하이 체어 위에 올라가서 빵에 버터 바르는 것, 요구르트 그릇에 담는 과제 정도는 A+을 받는다.
그러면서, 어설픈 '홈스쿨' 교사인 나는 학교와 다르다는 것이 단점이 아니라 장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숙제를 하려는 아이를 굳이 불러서, "잠깐, 테디베어 타임"하고 꼭 껴안는 타임이 중간에 속속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아이에게 더 좋은 건지, 내가 더 좋은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집중관리'라는 온라인 튜터의 광고를 보고 이래도 되는 건가, 조바심이 나던 어느 날, "집중관리가 별건가? 관심을 많이 주면 되는거잖아." 차라리 나는 아이와 북클럽을 조직해서, 매 주 책 한 권을 같이 읽고 이야기하기로 했다. 첫번째 책은 아이가 좋아하는 '해리포터', 신이나서 아이의 생각은 나비처럼 날아다녔다. 한가지 질문에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다른 말을 꺼내고, 그 질문마저 너무 빨라서 나도 모르게 "응, 응, 진짜? 정말?"하면서 잠깐 다른 생각에 빠져있었는데, 아이는 "엄마가 나 이그노어 ignore 했는데." 하고 너무나 섭섭한 표정을 지었다. 무려 9년간을 연기력으로 커버해왔는데, 한 가지 관심사를 두고 대화를 나눌 때는 통하지 않았다는 놀라운 사실. 그러고보니, 나는 웅얼웅얼 말을 배우는 둘째 아이도 계속 '이그노어' 해온것 같다. 아니, 나는 생활의 대부분을 연기로 때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정말 관심을 가지고 마음으로 듣는것이, 소위 바쁜 일상에 퇴화되어있었다는 것이다. 나야말로, 집중관리가 필요했다.
언젠가 다시 자가격리해야 할지도 모르잖아
컴퓨터 시간, 나무 종류를 검색하더니, 마법 지팡이를 검색하더니, 어디까지 생각이 미쳤는지 아이는 갑자기 "엄마, 런던 근처에 해리포터 파크가 있대. 우리 갈 수 있어?" 둥근 얼굴에 미소를 띠고 수줍게 물어본다. "그럼, 나중에.. 록다운 끝나면". 잘 따라온다 싶었던 아이는 화가 났다. "록다운, 너무 재미없어. 숙제도 해야하구. 아침에 바람도 쐬야하고. 왜 매일 계속해야 돼?" 뿔이 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어려움도 배워야되니까. 너희들도 언젠가 자가격리를 또 해나가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아이 세대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어떤 일들이 생겨날 지 다 알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 판데믹의 충격, 나를 포함한 부모들의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해달라는걸 해주고 싶다는 마음보다, 아이들이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인내하는 능력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 것이 아닐까? 정말 그럴때에 우리 아이들이 커피숍, 브런치 가게에 못간다고 답답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식사도 만들고, 스스로 보호하고, 보다 즐겁게 가족들을 이끄는 '힘'을 기르게 되면 좋겠다.
한국과 영국 뉴스 두 가지를 매일 접하며, 남편은 "종합해보자면 아직 영국에 피크에 오르지 못했고, 한국에는 가을 겨울에 2차가 올 수 있다고 하면, 우리는 내년까지 집에 계속 있는 거야?" "무서운 말 하지 마."그러나 '백투노멀'이 아니라 '뉴 노멀'을 이야기하는 정말, 홈스쿨은 생각보다 오래동안 학생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코로나가 떠나가고 아이들이 학교에 복귀하더라도, 우리는 밖에서 모든 걸 배우고 맡겼던 시대를 끝내고, 홈러닝, 즉 집에서 배우는 것을 하나의 축으로 삼게 될지도 모른다.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는 데는 어설프기 짝이 없어도, 단절되어있는 상황에서도 자생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서운 '두 반 동시 운영'도, 어쩌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