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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S 오픈 플레이스 Nov 04. 2021

반려 가구 들이기

 -애프터 레노베이션

작년, 영국이 한참 코로나로 몸살을 앓을 때,

우리는 홈 레노베이션이라는 더 큰 몸살을 앓고 있었다.

겁도 없이, 첫 집으로 옥스퍼드의 스무 평짜리

빨간 단층집을 샀고, 거미와 파리가 살던 다락을 고쳐서 세 개의 방을 올리는 아주 영국적인 공사,

로프트 컨버전 loft conversion을 하게 된 것.  


공사의 하이라이트는 슈퍼마켓을 빼고 영국의 가게들이 모두 문을 닫은 록다운 4주간이었다.


"물건을 구할 수가 없어요"

우리의 빌더, 요티는 어깨를 으쓱하며 슬슬 하루 이틀, 쉬기 시작했다. 다정하고 가족 같은 그에게도 단점이 있었다. 바로 인터넷을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지금같은 비상시에 치명적인 문제점이었다.


"진정하고, 계속하자. keep calm and go on."

제 2차 세계대전에 슬로건이었던 '진정하자'를 되뇌이며,

나는 요티를 대신해 쇠기둥, 벽돌, 창문을 찾아 눈이 빠져라 온라인 쇼핑을 하게됐다. 동시에, '과연 온라인 쇼핑이란 무엇인가'에 나는 조금씩 눈을 떠갔다.


지난날, 직접 가서 물건을 눈과 발로 확인해야만 했던 때가 어린시절이라면,

이제 나는 핸드폰과 노트북 화면을 동시에 켜놓고 색을 비교하고, 그다음 이미지 검색을 통해 실제 공간에 놓인 제품을 보면서 어떤 크기 일지 감을 잡는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최종 검색을 통해 디스카운트와 각종 오퍼를 적용하고, 배송비와 기간을 고려하여 가장 합리적인 곳에서 구매를 결정하는 성숙함을 갖게 된 것이다.


과연 이게 기뻐할 일인지, 아닌지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코로나는 일어났고, 포스트 코로나란 새로운 형태의 적응,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대담하게 적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하며, 레노베이션을 거의 마무리가 되어갈때쯤, 정신이 차리고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되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가구'였다.


"그리 크지도 않은 집이건만, 소리가 웡웡 울려." 남편에게 운을 띄웠다.

길이 8미터, 너비 3.5미터의 오픈 플랜 키친은 스무평 정도의 1층 공간에서는 가장 넓은 공간이었다. 친구들과 열을 올려 얘기하다보면, 마치 네모난 동굴 안에 있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할 거라고 했잖아?" 남편이 어쩑 심드렁하게 반응했다.

"물론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지. 그러니까 아주 미니멀하게, 가구 몇 가지가 필요하다 이 말이야."


우리에겐 이미 두 가지의 가구가 있었다.

하나는 2미터 길이의 긴 나무 식탁.

아직 어린아이들이 마음껏 그림도 그리고 먹기도 하는 테이블로 쓰려고 갤러리 Gallery라는 중저가 가구 브랜드에서 '약간 흠이 있는 B급' 식탁을 사둔 것이었다. 큰 나무 식탁인데도 150파운드, 한화로 22만 원에 구입했기에, 후회는 없었다.


다른 하나는 스웨덴 회사 데꼴리끄Decolique의 리넨 소파. 커버를 벗겨서 빨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이 소파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집에 오자마자 둘째가 마구 뛰며, 결정적으로 포도주스를 흘렸고, 이어서 남편이 표백제 안에 푹 담가 둔 덕분에, 예쁜 베이지색 리넨 천은 군데군데 하얗게 벗겨져 버렸다.


"오히려 자연염색 같고 좋은데요" 지인들은 위로해주었다."그래 뭐, 이것도 우리 가족의 합작품이야." 한숨을 쉬며 받아들여야 했다.

하루종일 먹고, 읽고, 그림 그리고, 이야기하는 가구,  영국 브랜드 갤러리Gallery에서 들여온 식탁.


"그래서 이제부터는, 정말 오랫동안 함께 살아갈, 반려 가구를 들여야겠어". 주식 블로그를 보고 있는 남편에게 열정적으로 말을 이어갔다. "불편한 건 참을 수 있어. 그러니까 유행에 지났다거나, 소모되어서 쓸 수 없는 것들 말고, 가족같이 계속 같이할 가구를 하나씩 장만하는 거야. 한 달에 한 점씩."


어서 빈 공간을 채워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 함께 일을 하며 즐길 수 있는 가구 한 점은 어떤 것일까?


사실 오래전부터,  바 스툴 Bar stool을 들이고 싶었다.

공사할 때, 키친 아일랜드를 둘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180센티에 80센티, 하프 사이즈 아일랜드를 두게 된 것이다. 내가 앞에서 요리하자, 아이들도 관심을 가지고 요리하는 것을 보고, 또 따라 하려는 상황이 펼쳐졌다.

큰 아이는 발돋움을 하고 아일랜드를 쓸 수 있었지만, 작은 아이는 아일랜드 아래서 "나도, 나도!" 하고 속상해하곤 했다.


큰 아이는 문화적 음식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그리스식 플랫 브레드' 만드는 것을 배워오고선 자주 '그리스식 빵을 해줄까?" 묻곤했다. 이 거칭한 이름은 실은 '올리브유에 부치는 밀가루 전'에 가까웠지만, 나름 다 같이 모여 먹다 보면, 아일랜드를 좀 더 활용해볼까, 아침도 먹고, 함께 요리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가구와 소품과 관련하여, 내가 가장 먼저 돌아보는 사이트는 단연 아마라 Amara다. 유럽, 스칸디 가구의 트랜디한 재고를 영국에 가지고 있어서 배송료도 무료, 배송기간도 가장 빠르다. 한국에서도 직구하는 노르딕 스칸디, 로열 디자인도 차례로 방문해 본다. 더 헛 The hut이라는 사이트는 배송이나 연락이 원활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대신 가격이 언제나 좋다.


이들 사이트에서 공통적으로 헤이 Hay, 노만 코펜하겐 Normann Copenhagen 등 유명한 브랜드의 체어들을 보았지만, 아무래도 플라스틱 의자의 유행이 살짝 지난 것 같고, 유행에 덜 민감한 나무 체어들은 가격이 제법 나간다.


"사실은 나...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이 있거든요".

집에 놀러  친구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쉐즈  니콜 Chaises Nicolle이라는 다양한 색의 철제의자를 만드는 프랑스 가구회사였다. 가끔 잡지에 나오기도 했지만, 무심히 지나쳤었다. '니콜' 진가를  것은 코로나 직전, 파리의  작은 부티크 호텔의 로비에서였다. 호텔 바에  놓인 과감한 오렌지색의 니콜  스툴은 결코 야하거나 튀는 것이 아니었다. 세련되게 주변과 어우러지면서도, 무료한 공간에 색감과 영감을 불어넣어,  굽은  같은 의자가 없으면 어쩔 뻔했을까, 하는 감사가 나오는 것이었다. 예쁜 검정 정장을 차려입은 숙녀오렌지색 에나멜 슈즈를 신고 있는것 처럼, 새콤한 풍선껌처럼 지는 즐거움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스툴 세 개만 사면, 한 달 생활비가 다 나갈 거예요. 그러니 니콜 따위 생각하지도 말고, 아이키아 IKEA에서 빨리 사버릴까 봐요"

"한 개를 사도 제대로 된 걸 산다며, 반려 가구라고 하지 않았어요?" 친구는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그렇지만... 반려 가구 아니라 가족이라도, 생활비보다 더 비싸게 살 수는 없잖아요."


아이키아와 니콜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 집 아이'가 될 바 스툴에 꾸준히 관심을 갖던 어느 날이었다.


네덜란드 브랜드, 브로 스테 코펜하겐 Broste Copenhagen 카탈로그에서 사진 구석에 있는 둥근 나무 의자 사진을 우연히 보게  것이다. 앉는 자리는 망고나무로 되어 빈티지 느낌이 난다. 돌려서 높이도 맞출  있다. , 높이를 높여서  스툴로  수도 있고, 손님이 오면 식탁 의자로  수도 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  의자의 다리였다. 메탈로 되었지만, 얇고 차가운 정제된 느낌이 아니라, 투박하고 시골풍의 느낌이 나는  개의 다리. 어딘가 인더스트 리얼한  철제 다리는  좋아했던 그녀, 쉐즈  니콜의 느낌도 느낄  있었다. 그러나  의자가 한참 바라보게되는 하이힐이라면,  의자는 더욱 단순하고 캐주얼한 플랫슈즈 느낌이다.


온라인으로 보는 만큼, 브랜드에 대한 믿음도 필요했다. 이 회사에서 나오는 소품이나 가구를 구경한 적이 많지만, 럭셔리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고요하고 간결한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어쩌다 보니 하얀색으로 마감된 우리 집 키친에 독특한 느낌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렇다고 뜨겁거나 달콤해서 마구 당기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따뜻한 우엉차처럼, 어디서나 오래오래 마실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가격은 어떨까? 정가는 영국 파운드로 149파운드, 한화로 22  정도지만, 구글 검색의 단계를 거쳐 추려보면, 각각 16 원으로 구할  있었다.  개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  개야?" 남편이 물었다.  " 달에  개라고 하지 않았어?" 뭐라고 할지 답은 미리 생각해두었었다. "반려가구란, 그렇게 이성적으로 들일  있는  아닌  같아. 아이들 둘이 서로 앉겠다고 싸우는   달을  봐야 텐데 괜찮겠어?"


그리고 며칠 후, 완벽하게 포장된 커다란 박스가 도착했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화면으로 볼 때보다 조금 더 옅은 회색의 메탈 다리와, 더 연한 색의 둥근 나무 좌석이 달린, 두 개의 완벽한 의자였다. 아이들은 의자를 돌려 올렸다 내리기를 계속하고, 둘째는 의자를 가장 높게 해 놓고 서커스 하는 아기처럼 저녁 내내 앉아있었다. 아이들이 자러 물러가고 나서야 가만히 감상해볼 수 있는 있었다. 나무는 생각보다 훨씬 매끈매끈하고 차갑지 않은 느낌. 빈티지 느낌의 다리. 다행히 남편도 "예쁘다."라고 짧은 찬성을 보냈다. "백 퍼센트의 여자아이에 대한 짧은 소설 알아? 너무 예쁘거나 이상형인 것은 아닌데도, 그저 더 말할 필요 없이, 백퍼 센트라고 느껴지는, 그런 평범한 여자아이를 만나는 아침에 대해서 쓴 글이 있어."


이 두 개의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고 아이들이 밀가루 반죽을 하기까지  한 달 이상이 걸렸지만, 사실, 사는 것은 제일 쉬운 부분이었는지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십 년, 이십 년, 계속 좋아하며 잘 쓰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번, '반려 가구'는 누구일지도.




참고 Reference

쉐즈 니콜 Chaises Nicolle https://chaises-nicolle.com/en/

브로 스테 코펜하겐 Broste Copenhagen  https://www.brostecopenhagen.com/

아마라 https://www.ama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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