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쌀 Jul 20. 2022

고구마꽃


  살아가면서 힘든 것이 가슴앓이를 억눌러 다스리는 것이다. 욱하는 성질은 없는데,  분노가 많아졌다. 정도를 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알맞게 조절하기가 힘겹다. 해를 더할수록 신체기능도 약해지면 돌보아가듯이 감정 기능도 제구실을 하게 하려면 단련이 필요할까.


  특별한 단련이 있을까마는, 인내는 언제나 분노를 이긴다는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아가고 있던 중, 한 도반이 고구마꽃 한 송이를 카톡에 올려주었다.


‘달밤에 이슬을 먹고 밭뚝에 살짝 핀 수줍은 메꽃…’ 이미지가 살포시 다가왔다.





고구마꽃 /




도반이 카톡으로


고구마꽃 한 송이 보내왔다



고구마…



꽃이 핀다고 생각 못 했다.


열매만 생각했다.


해마다 꽃 파워도


평생 한 번 보기 어렵다는 꽃.



올해


힘들고 지치고 너무 아팠나.


부끄럽게 피어난 고구마


어떤 꽃보다 예쁜


가슴앓이.*









가 정 ㅡ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


... 내 신발은


십 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매거진의 이전글 과거의 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