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힘든 것이 가슴앓이를 억눌러 다스리는 것이다. 욱하는 성질은 없는데, 분노가 많아졌다. 정도를 넘지 않도록 내 마음을 알맞게 조절하기가 힘겹다. 해를 더할수록 신체기능도 약해지면 돌보아가듯이 감정 기능도 제구실을 하게 하려면 단련이 필요할까.
특별한 단련이 있을까마는, 인내는 언제나 분노를 이긴다는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아가고 있던 중, 한 도반이 고구마꽃 한 송이를 카톡에 올려주었다.
‘달밤에 이슬을 먹고 밭뚝에 살짝 핀 수줍은 메꽃…’ 이미지가 살포시 다가왔다.
고구마꽃 /
도반이 카톡으로
고구마꽃 한 송이 보내왔다
고구마…
꽃이 핀다고 생각 못 했다.
열매만 생각했다.
해마다 꽃 파워도
평생 한 번 보기 어렵다는 꽃.
올해
힘들고 지치고 너무 아팠나.
부끄럽게 피어난 고구마
어떤 꽃보다 예쁜
가슴앓이.*
가 정 ㅡ 박목월
지상에는
아홉 켤레의 신발
아니 현관에는 아니 들깐에는
아니 어느 시인의 가정에는
알전등이 켜질 무렵을
문수가 다른 아홉 켤레의 신발을.
... 내 신발은
십 구문 반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그들 옆에 벗으면,
육문 삼의 코가 납짝한
귀염둥아 귀염둥아
우리 막내둥아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올린
여기는
지상
연민한 삶의 길이여
내 신발은 십구문 반.
아랫목에 모인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강아지 같은 것들아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내가 왔다.
아버지가 왔다.
아니 십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
아니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
존재한다
미소하는
내 얼굴을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