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선약수
유년의 기억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약수 같다. ‘유년 시절은 존재의 우물’이라 했던 바슐라르의 말이 떠오는다. 어쩌면 유년의 우물에서 퍼 올린 물은 어떤 물보다 맑은 상선약수가 아닐까.
좋아하는 단어 중에 상선약수란 말이 있다.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뜻.
즉, 둥근 용기에 담으면 둥글게 담기고 네모난 용기에 담으면 네모난 모양으로 담기는 물.
늘 변화에 능동적인 유연성을 가진 물.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을 유익하게 해주는 물.
그 자신은 만물을 이롭게 하는 데 뛰어나지만, 어떤 상대와도 이익을 다투지 않는 물.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서 막히면 돌아가는 물. 기꺼이 낮은 곳에 머무는 물!
물 본연의 성질을 으뜸가는 선(善)의 경지로 병치한 님의 날카로운 관찰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요즘, 유년의 기억을 자주 퍼 올린다. 일단 이 우물에 두레박을 던지면 멀리 비루했던 기억도 선하게 정화된다. 샘물처럼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뇌의 기억이 신기할 정도다. 기억을 퍼 올리다 보면 어느새 눈시울이 두둑해지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나. 오늘도 그 우물에서 사실보다는 가치를 길어 올렸다. 세파에 휩쓸려가는 내 마음의 배가 뒤집히지 않고 잠시나마 순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나 다행인가, 고마운가. 슬프지 않아서•••.
상선약수를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자주 연습해 본다.*
참 좋은 말 / 천양희
내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혀
한 잎의 혀로
참, 좋은 말을 쓴다
미소를 한 육백 개나 가지고 싶다는 말
네가 웃는 것으로 세상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
내 마음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
한 줄기의 슬픔으로
참, 좋은 말의 힘이 된다
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는 말
물방울 작지만 큰 그릇 채운다는 말
짧은 노래는 후렴이 없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말
한송이의 말로
참, 좋은 말을 꽃피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란 말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
옛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온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