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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힘날세상 Nov 22. 2024

6화 아들아, 아름답게 끝내게 해줘

ㅡ아버님. 기침해요. 기침.

ㅡ아버지. 콜록콜록. 삼키면 안 돼요.

손녀 같은 간호사와 아들이 번갈아 재촉한다.

기도에 끼어있는 가래를 빼내려는 중이다. 석션 카데터를 조심스럽게 집어넣었지만 내가 느끼는 이질감은 심하기 짝이 없다.


코에는 산소마스크를 끼워 넣고 나의 호흡을 붙들어 보려고 하고 있고, 팔에는 몇 개의 주삿바늘이 꼽혀 있는지도 모른다.


ㅡ아들아, 이제 그만 멈추어다오. 나도 힘들지만 너도 이게 무슨 짓이냐. 내 손을 놓아주어라.


가을이 깊어가면서 기력이 떨어지고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그냥 그냥 견딜만했는데 일주일 전부터는 이승의 시간들이 자꾸만 내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잤다. 그동안의 고마움에 대한 마음이다.


 아침, 날이 새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온몸에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 눈을 뜰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숨을 쉴 가느다란 힘마저 가라앉고 있었다.


ㅡ그렇구나. 소풍을 마칠 때가 되었구나. 그래 즐겁게 가야지. 천상병 시인 말대로 가서 참 아름다웠다고 말해야지.


어둠이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 물먹은 솜처럼 몸이 무겁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 점점 가라앉는 몸.


ㅡ여보, 고마웠어. 나를 받쳐준 당신. 사랑해


소란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이렌 소리를 들은 것도 같았다. 차가워지던 몸에 온기가 돌았고, 코 속으로 상큼한 기운이 밀려들었다. 분주한 발걸음 소리와 함께 뾰족한 통증이 팔을 휘감았다. 밀려오던 어둠이 묽게 흩어지고 있었다.


ㅡ환자분, 괜찮아요?

ㅡ일단 고비는 넘겼으니 잘 치료해 보겠습니다.

ㅡ아버지, 눈 좀 떠봐요.


87년을 살았다. 가난한 살림에 눌려 허덕이고 있을 때 아내를 만났다. 부둥켜안고 울었던 밤이 얼마였을까.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온몸을 던져 돈을 찾아다녔다. 알뜰한 아내덕에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키워  큰아들은 중소기업 사장으로, 작은 아들은 공학박사를 만들었다. 세무사인 딸은 사위와 함께 세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병실에 누운 지 일주일이 지났고 나는 점점 어둠이 밀려오는 것을 보고 있다. 의사는 최선을 다해보자고 하지만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그런데도 모두가 놓아주지 않는다.

오늘부터는 씹을 힘도 남아있지 않다.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의사는 코로 밀어 넣는다. 고개를 흔들어 거부하고 싶은데 그럴 힘이 없다.


맑은 물가에 꽃이 피었다. 어린아이들이 통통 튀는 듯한 웃음을 뿌리고 다닌다. 향긋한 기운이 넘쳐난다. 어디선가 청량한 바람이 몸을 감싸왔다.


ㅡ아빠, 나 왔어. 은영이.

ㅡ아버님, 눈 좀 떠보세요.


막내가 왔구나. 그래 눈을 떠서 봐야지.

이쁜 은영이가 왔구나. 황서방, 은영이랑 잘 살아줘서 고맙네.


그 뒤로 아내의 손을 잡고 있는 며느리들도 서있다. 작은 아들은 미국에 가 있어서 못 왔구나.

ㅡ작은 애야, 우리 집 식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ㅡ그래도 정진이 에미가 제일 애쓰지. 내가 손에 쥐어 준 것도 없는데 큰며느리 노릇하느라고 애쓰는 거 내가 잘 안다. 고맙다. 영화야.


입이 열리지 않아 속으로만 부르짖는다.


ㅡ아빠, 눈 떴네. 내가 와서 뜬 거지.

ㅡ아버님, 얼른 일어나셔야지요.


석션을 할 때마다 힘들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늘어져 있었다.

ㅡ여보, 요양병원 찾아봤는데


아들이 보조침대에 앉아 며느리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는 게 청력인지라, 안 듣고 싶은 말을 듣게 된다.


ㅡ요양원보다는 요양병원으로 가는 게 좋대.

두 곳을 알아봤는데 비슷비슷하더라고. 직접 방문해 보고 결정한다고 했어. 내일은 제수씨가 병원에 있는다고 하니까 가보려고.


ㅡ은석아. 나 편히 보내줘. 이 주삿바늘만 빼주면 돼. 그게 효도야. 아가. 부탁한다.

간호사가 입주위에 묻은 음식 잘 닦지 않으면 곰팡이 생긴다는 말 들었지? 은석아. 나 좀 얼른 보내줘.


내 힘으로는 움직이지도 못한다. 병원에서 애쓰고 있지만 엉덩이며 등에는 이미 욕창이 생겼고 소독을 하고는 있지만 점점 커지고 있다. 배변을 조절할 힘도 없어 흘리고서도 흘린 지도 모른다. 아무리 눈을 못 뜨고  누워있다고 해도 가물가물하지만 의식이 남아있고 보면 나도 부끄럽다. 자식에게 이런 흉한 모습 보이는 게 어디 아비가 할 짓이겠냐 말이다.


요양병원으로 가서  오랫동안 있게 되면 자식들에게 얼마나 짐이 될까. 아들은 자식 된 도리를 다한다고 이러지만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지금 이대로 눈을 감았으면 좋겠다.


시원한 바람이나 한번 쐬었으면......



병원에 갔다가 본 어느 노인을 대신하여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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