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벌레 Aug 13. 2021

침묵의 디스코

요즘 올림픽을 정말 열심히 보고 있다. 특히 펜싱은 꼬박꼬박 챙겨 본다. 보고 있으면 나까지 손에 땀이  만큼 짜릿하기도 하고, 기분 좋은 기억이 하나 떠오르기 때문이다. 펜싱 경기가 열리는 곳이 '마쿠하리 멧세'인데, 나는 2  그곳에 음악 페스티벌을 보러 갔었다.


새벽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만 풀어 놓고 바로 공연장으로 갔다. 그렇게 이리저리 장소를 옮겨 다니며 열심히 공연을 보던  마쿠하리 멧세 한구석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일단 울타리로 막힌 공간이 있고  안에 사람이 모여 몸을 신나게 흔들고 있었다.  앞에서는 디제이  명이 열심히 손을 움직였지만 아무런 음악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모든 사람들이 분홍색 불빛이 반짝이는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 '사일런트 디스코'라는 팻말이 눈에 띄었다. 무척 즐거워 보여서 나도 해보고 싶었지만, 클럽   가본  없는지라 자신이 없어져서 그만뒀다.  


그리고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 심야 공연을 기다리러 들어왔다가 사일런트 디스코에 아직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발견했다. 밤이라 주위에 구경꾼도 없어서  때다 하고 용기를 내서 가까이 갔다. 부끄럽지만 나한테는 그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진행 요원이 헤드폰에 문제가 없는지 정성스레 확인한  나에게 내밀었다. 그걸 쓰니 이제  귀에도 현란한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람들은 내가 들어오는  눈치도    같았다. 구석에서 조금씩 몸을 흔들어 봤다. 의외로 별로 부끄럽지 않았다. 디제이가 있는 앞쪽에  사람일수록 몸을  격하게 흔들고 있었다. 나도 둠칫거리며 조금  전진했다. 그러던  헤드폰에서 머라이어 캐리의 유명한 크리스마스 노래가 들렸다. 우리는 가장 귀에 익은 후렴 부분만 크게 따라 불렀다. 문득 내가  열두 시에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침묵의 디스코를 하고 있다는  그렇게 이상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디제이는  구석진 곳이 마치 메인 스테이지라도 되는  감격한 표정으로 외쳤다. "뷰티풀, 뷰티풀 피플!"  말이 지금껏 학교나 회사에서 들었던  어떤 칭찬보다도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인지 펜싱 경기를 보고 있으면 자꾸 그때가 생각난다. 가족들에게  저기   있다고 아는 척도 해본다. 물론 침묵의 디스코 얘기는  빼고. 다시 화면을 보면 선수들이  기다란 쇠꼬챙이에 인생이 달린  필사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모습을 보면서 또다시  디제이의 말이 생각난다. 뷰티풀, 뷰티풀 피플.

작가의 이전글 안나 카레니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