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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국 Mar 04. 2021

나는 일관성 없는 팀장과 일한다

작심 세시 간

다른 부서로부터 업무를 이첩받았다. 팀장도 나도 이걸 왜 우리 부서에서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첩받은 업무와 현 부서에서 처리하는 업무와의 관련성은 전혀 없다. 단지 각 업무에 유사한 키워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업무가 넘어왔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업무 관련 회의는 오후에 진행된다. 이번 회의는 업무를 이첩한 부서에서 준비하기로 하였다는 이야기를 며칠 전 팀장으로부터 전달받았다. 회의와 관련해서는 특별히 준비할 것 없었다. 그 메시지를 받기 전 까지는..






'오후 회의에 배부할 회의비를 준비하시고요. 회의가 끝나면 정리 업무를 하시면 돼요.'



메시지를 받고 잠시 의미를 생각했다. 분명 팀장은 회의와 관련해서 준비할 것이 없다고 내게 전달했는데 이첩한 부서에서는 회의와 관련해서 무언가를 준비해달라고 한다. 이성을 부여잡고 있는 끈이 순간 끊어졌다.






팀장에게 물어보니 처음 듣는 이야기라 한다. 전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본다. 전화를 끊고 곧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낸다.


"오늘부터 XX부서 업무에서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지 마!! 이것들이 싸가지가 없이 말이야."


그렇게 나도 팀장도 오전 내내 화가 잔뜩 났다.






"오후 회의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회의 준비하는 거 도와주러 내려가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세 시간 전 분명 그렇게 화를 내며 다시는 도와주지 말라고 소리친 장본인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먼저 나서서 도와주자고 한다. 혼란스러웠다. 돌아이도 이런 돌아이가 없다. 뭐라 할 말도 없었고 설령 할 말이 있어도 말 섞기 싫었다. 이렇게 일관성 없는 사람이 내 직속 상사이자 팀장이라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팀장은 오후 늦게 끝난 회의의 회의록을 다음날 오전까지 요구했다. 예의상 '해보겠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었겠지만 도저히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아무 대답 없이 냉랭한 퇴근 인사를 전하고 퇴근했다.


회사에서 노예처럼 일하기 싫다. 시키는 일만 수동적으로 하고 싶지 않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주인처럼 일하고 싶다. 하지만 회사는 온몸으로 거부하며 당신은 주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주인처럼 일해도 노예처럼 취급한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은 더 이상 없다. 감정적이고 비이성적인 힘의 논리만 존재한다.


팀장이 놓친 정답을 고한다.


이첩받은 업무가 부서의 업무와 관계가 없음을 적극적으로 해명했어야 한다. 이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이전 담당자에게 확실한 마무리를 요구했어야 한다.


팀장은 그 무엇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일관성 없이 비이성적인 감정만이 앞섰다. 그가 하루아침에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업무처리를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없다. 다만, 단 하나 바라건대 부디 일관성만은 유지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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