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동영 May 10. 2020

대한민국 해안선 1,800Km 자전거 도전기를 시작하며

강화도에서 목포, 남해, 부산을 돌아 강원도 통일전망대까지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딱 멈췄다. 원치 않은 장기간의 휴식을 강요받은 것이다. 난데없이 멍해진다.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게 도무지 없다. 모두가 코로나로 숨을 죽이던 지난 3월! 문득, 대한민국 지도 앞에 섰다. 이참에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다시 그려보는 호기를 누려보기로  한다. 해안선 끝자락 1,800Km를 약 25일간 자전거로 달려보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해안선 끝자락 한 바퀴를 달려보는 것은  어떨까? 한반도 지도의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슬슬 밀며 따라가 본다.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쳇바퀴 속에서 잠시나마 훌훌 벗어나 보는 것이다. 온실의 틀속에서 잠시 궤적을 이탈하여 도대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 발짝 떨어져서 보고 싶어 졌다.


뉴스에는 연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접하는 생소한 단어들이 쏟아진다. 펜데믹(Pandemic), 폐쇄 (Lockdown), 자가격리(Self-isolation), 사회적 거리 (Social-distance), 검역(Quarantine),  감염 (Infection) 등. 뉴스는 연일 집에 콕 박혀있으라고 끊임없이 방송해댄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문득 너무나도 부끄러워졌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고 달간의 정지로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삶의 터전들이 흔들린단 말인가? 얼마나 뿌리도 없고 기반도 없이 살아왔더란 말인가? 부초 같은 삶이 아닌가? 갈대 같은 일상이 아니었던가? 자괴감, 허탈함,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누구의 얼굴도 쳐다볼 수도 없었다. 이게 뭐냐고? 도대체!


답이 필요했다. '지금의 나'에 대한 해체가 필요했다. 그것을 토대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미래의 나'에 대한 재설계도를 찾아야 했다. 반항아가 되기로 한다. 쇼생크 탈출을 상상했다. 자전거를 정비하고 생존에 필요한 간단한 소품들만 챙겼다. 하루 최소 80~90킬로, 약 25일간, 1800킬로. 그것도, 혼자서  나아가 보기로 한다. 

무엇을 위한 무모함이고 무엇이 남을까

3월의 날씨는 만만찮다. 미지의 길이다. 특히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일은 간단치 않다.  " 무엇을 위해 무모함을 무릎 쓰는 것인지? 무엇을 얻기 위해서인지?"  주변에서 아우성이다. 더구나, 적지 않은 나이지 않는가.

'마디를 만들고 싶었다' '부러지거나 꺾어지지 않는 단단한 매듭'을 만들고 싶었. 두 번 다시는 이리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휘둘리지 않고 싶었다. 살아온 날들을 하나씩 복기하고 싶어 졌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디에서 사달이 것일까?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제대로 된 새 출발을 다짐하고 싶어 졌다. 힘든 것 잘 안다. 외롭고 적적한 일정이 되리란 것도 잘 안다. 비바람과 추위를 견뎌야 한다. 오르막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길이고 삶인 것을. 그 속에 새로운 희망의 싹이 움터고 있음을.


해안 등고선을 따라  흥미진진한 상상들이 나래를 친다. 때론 친숙하고, 또는 생소한 도시들 동네 이름들이 스쳐간다. 두 바퀴 자전거를 타고 조선말 1861년, 고산자 김정호의 길을 잠시 따라가 보는 것이다.


서해안 따라 땅끝 마을을 향해서, 700킬로

출발지를 강화도로 정했다. 강화도가 주는 의미는 강했다. 선사시대 고인돌의 유적지가 남아있고, 고려말 몽고에 저항한 삼별초의 기운이 감돌고,  단군이 하늘에 제를 지냈다는 마니산 참성단의 영험이 느껴지는 곳이다.  고찰 '전등사'에서 나름의 발대식을 치른다. 역사의 기운을 심장에 모아서 출발을 기약한다. 강화도를 시작하여 서해안을 따라 태안반도, 새만금 방조제, 고군산군도, 변산반도를 거쳐 목포로 방향을 잡는다. 그리곤,  천 개 섬들의 향연, 신안 섬에 발을 근다. 곧장 이어서 정약용의 애잔이 녹아있는 유배 땅 강진을 거쳐 남녘 끝 해남 땅끝 마을을 찾는다. 서해안 대장정 약 700킬로의 마침표를 찍는 곳이다.


"끝"은 마침이 아닌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이다.

 "끝"이 주는 의미는 강하다. "끝"은 마침, 종료,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점으로 다시 출발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Commencement라는 영어 단어를 처음 접하고 한동안 헷갈렸다. "시작"과 "종료"의 두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졸업식이라는 영어는 곧잘

Graduation ceremony 라고 배웠는데 정작 미국에서는 Commencement  ceremony라고 쓴다. 마침은 새로운 의미를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남녘 해남 땅끝의 의미는 컸다. 끝은 완결점, 종착점이 아니라 그것을 기점으로 새로운 출발을 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삼각형 세 꼭짓점, 즉 서쪽의 만리포 해변 '정서진', 동쪽으로는 호랑이 꼬리 '호미곶' 그리고 토말 남쪽 '해남'은 저마다 새로운 출발에 대한 의욕을 충동질해 주었다. 

수려한 섬들이 맘껏 노니는 남쪽 한려해상 600킬로

강진, 해남을 빠져나와 완도 향한다. 고금도, 신지도를 거쳐 홍길동의 고장 장흥, 차밭의 물결 보성을 지나고 밤바다가 아름다운 여수를 찍는다. 순천만 습지를 한 바퀴 돌아서 영호남이 만나는 화개장터로 들어선다. 3월의 섬진강 녘 광양 하동은 매화꽃이 한창이다.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가 앞길을 막기는 하지만 우리네 코끝까지 막지는 못한다. 연이어 남해섬에 들어선다. 사실 남해는 이틀로도 모자란다. 이제, 한려수도의 정점 통영에 다다른다. 시와 노래와 낭만이 넘실대는 곳이다. 바람이 세찬 거제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거가대교' 해저터널을 지나서 항구 수도 부산에 당도한다. 남쪽 섬 라이딩은 마치 아메바와 같다. 늘리면 한도 없이 늘어난다. 약 600킬로에 이르는 한반도 남쪽 섬들의 기억을 뒤로하고 동해안을 향해 달리기 위하여 광안리에 섰다.


길고도  동해안 해안선 770킬로

항구 1번지 부산의 변화는 눈부시다. 광안리, 해운대, 송정의 넉넉한 해변은 우리들장터이다. 기장으로 이어지는 절벽길은 절세다. 울산, 감포, 구룡포를 거쳐서 동쪽 땅끝 호미곶에 다다른다. 영덕, 강구,  울진, 그리고 정동진!  바다와 맞닿은 해변의 정동진역은 밤 열차의 상징이다. 강릉, 경포대를 거쳐서 설악산 자락으로 간다.  그리고 화진포를 냅다 질러서 강원도 금강산 고성 땅을 넘는다. DMZ라는 푯말이 보이기 시작한다. 약 20일 이상 깎지 않은 턱밑의 까칠함이 제법이다. 이윽고, 동해 최북단 제진역을 거쳐서 DMZ박물관을 지난다. 통일전망대 마지막 꼭짓점 약 5킬로 전방이다. 아뿔싸,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북으로 향하는 모든 길이 통제되었다. 아쉽게 끝자락 달리기를 접는다. 볓이 좋은 명파해수욕장에서 대미를 자축한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현재의 나를 직시하고', '미래의 나를 설계'하기 위한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25일간, 약 1,800킬로, 엉덩이에 딱지가 앉았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딱히, 무엇을 얻기 위한 건 아니었지만 두 번 다시 울지 않을 자신감이 생겼다. '매듭'이 만들어진 것이다. 굵은 '마디'가 가슴에 생겼다. 희미한 미소가 퍼져 나온다.


아름다운 우리나라, 화려강산의 발견은 덤

역마살과 직업의 특성이 겹친 덕택에 제법 이른 나이부터 다양한 여행길에 나섰다. 여행 자유화가 막 시작된 1989년, 처음 나선 유럽 여행길에서 그해 11월 9일 동서냉전의 상징인 '베를린 브란데부르크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인 현장을 목도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 그 이후, 90여 개국 약 500여 개의 도시들을 부지런히 다녔다. 세계일주를 한번 마치고, 또다시 돌고 있으니 무던히도 다닌 셈이다. 눈을 감으면 남미 끝에서 알래스카, 유럽 땅, 중동, 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까지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종종 묻는다.


" 전 세계 다녀보신 곳 중 어디가 좋아요? "

" 대한민국이 좋지요. 아기자기하고 볼거리가 많지요 "


빈말이 아니다. 차를 타고 1시간만 나가면 산, 강, 호수, 계곡 바다와 섬을 종류대로 만난다. 뷔페 코스다. 계절이 바뀌면 완연히 달라진다. 피는 꽃들도 형형색색이다.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다. 해외의 유명 관광지에 비해 웅장함에서는 취약할지 모르지, 오밀조밀하고 변화무쌍한 놀라운 우리나라를 새롭게 접한다. 화려강산이 애국가속의 미사여구만이 아니었음을 몸으로 눈으로 느낀 건 덤이었다.

스스로 산을 만들고 또 그 산을 넘는다. 그것이 도전이다.

문득 그리스 신화 "시지프스의 돌"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밀고 또 밀어 올려도 바위는 계속 굴러 내려온다. 쉼 없다.

이제 막 한숨을 쉬려 하면 또 내려온다. 마치, 천형을 받은 것처럼! 애당초 인생의 정거장에는 알량한 휴식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 행복함"은 없다. 새로운 도전은 늘 형태를 달리하여 떡하니 나타난다. 오늘도 내일도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한다. 마치, 두 바퀴 자전거가 잠시라도 페달링 하는 것을 멈추면 쓰러지듯이! 그렇게 마음을 딱 정했다. 한순간도 페달링 하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주어진 길이 오르막이건 산길이건, 느리더라도 쉬지 않겠다고 깊이 새긴다. 스스로 산을 만들고 또 넘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멈춰버린 지난 몇 달들.
스스로 멈추지 말자고 떠난, 대한민국 해안선 끝자락 두 바퀴 자전거 도전, 1,800킬로!


서해안의 방조제위로 몰아쳤던 세찬 바람들, 남해안의 끊임없이 꼬불꼬불하게 이어졌던 길들, 동해안 자락의 쉼 없이 나타난 오르막 내리막 낙타! 땀은 몇 번이나 젖고 마르기를 반복했다. 아침이면 해가 뜨지 않기를 바랐다. 자전거는 강원도 고성 땅 통일 전망대에서 멈췄다. 하지만, 가슴 두 바퀴는, 오늘도 느리지만 쉼 없이 페달질을 계속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멈춤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다. (Covid19 is another Commencement)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앞에 속속 드러나는 세상의 온갖 민낯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