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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비 글라스 Oct 22. 2020

지금 당장 감사할 수 있는 것을 찾자

일상 속 감상

 얼마 전 원작 소설 <<작은 아씨들>>이 영화로 만들어져 개봉했다.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속해있을 정도로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서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그런 만큼 이 작품은 벌써 몇 차례 영화로 만들어져 상영한 바 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지 궁금해서 <<작은 아씨들>>소설책을 읽었다.      


 1868년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라 당시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난하고 청렴한 목사와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네 명의 자매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각자의 꿈을 키워가고, 사랑도 하면서 아름답게 성장하는 이야기를 따뜻하게 표현했다. 분명히 이야기에서 극적으로 충격을 주거나 아주 특이한 소재나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상적이지만 그 안에서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느끼는 희로애락을 독자로서 저자와 함께 감정을 나눌 수가 있었다. 다 읽고 나면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감동의 메시지가 있었다.     

 

 당시 미국의 남북전쟁이 일어나서 목사인 아버지 마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냥 있을 수 없다며 전쟁터로 향한다. 목숨이 위험해지는 일이니 가족들이 말리려고 설득할 만도 하지만 이들은 그런 아버지의 생각을 존중하고, 그를 존경한다. 네 자매들의 어머니 마치 부인은 남편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딸들이 가진 것이 없어도 감사하며, 스스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마치 목사는 부자는 아니었지만 이웃을 돌보는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서 가지고 있던 재산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다 쓰느라 가난해졌다. 그런데도 그의 가족들은 불만하지 않고 아버지의 그런 선한 성품을 닮으려고 애를 쓴다. 

 크리스마스 날 자기들이 먹을 수 없고, 좋은 옷을 입을 수도 없어서 추운 겨울에 배고픈 채로 다 떨어져 가는 옷을 기워 입으면서도 유일한 아침 식사였던 빵조각을 더 헐벗은 이웃집에 주고 나서 기뻐한다. 특히 그런 상황에서 전쟁에 나간 아버지의 안전이 걱정도 되고, 허름한 모습의 자신들을 인식해 한탄하려고 할 때면 어머니 마치 부인은 자매들에게 ‘천로역정’ 놀이를 권유한다. 그들은 미국 크리스천의 청교도 정신과 통하는 유명한 책<<천로역정>>을 교본으로 삼아 책의 주인공 ‘크리스천’으로 분장해 역할극을 한다. 등에 잔뜩 짐을 메고 낡은 다락방으로 향하는 계단을 힘겹게 올라가면서 진정한 크리스천, 기독교인의 모습이 되어가는 체험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대목에서 나는 놀랐다. 몇 해 전에 봤던 영화<<천로역정>>에서 주인공 ‘크리스천’이 겪었던 온갖 유혹과 시련, 고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결국 진정한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수많은 고난을 극복해내고 하나님께 도착한다. 그 당시 나는 주인공 크리스천처럼 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고 생각해서 모든 연단의 시간을 거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었기에 내게는 그 일이 상상만 해도 힘겨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작은 아씨들’의 네 자매는 십 대의 어린 나이에 그것을 역할극 놀이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다.  

     

 전쟁에 나갔던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치료비를 마련하려고 둘째 딸 조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 남몰래 울지만 결국 자신의 작은 희생으로 아버지를 치료하고, 가족들이 행복해질 거라고 좋아했다.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어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어머니의 뜻에 따라 병에 걸린 가난한 이웃집을 돌보던 셋째 딸 베스는 그들의 전염병에 옮아서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몇 년 안에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본인이 그것을 아름다운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가족들도 슬프지만 어쩔 수 없기에 그녀를 하늘에 보내주고 나서, 본인들의 삶에서 감사할 것들을 발견하며 희망을 가지고 다시 극복한다. 이런 사건들이 내게는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항상 작은 것에 감사할 거리를 발견했다. 그러다 보니 또 감사할 수 있는 일들이 이어졌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들에게 늘 좋은 일들만 생겨서 감사를 한 것이 아니었다. 남들이 보기에 절망스러운 일들을 겪을 때도 감사할 거리를 찾았고, 그러면서 스스로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한창 힘들어서 삶을 포기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을 때 저들처럼 지극히 작은 일상 속에서 감사한 것들을 찾아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을이 되어 ‘추수감사절’ 기간이 성큼 다가왔다. 영상예배를 드리는 중에 ‘감사’를 주제로 말씀을 들었다. 한 아주머니가 어두운 상황에서 감사할 것을 찾은 일화였다. 남편이 알코올 중독에 걸려서 늘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 잠만 잤는데 그 모습만 보면 아주머니는 속이 탔다고 한다.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를 하면 더욱 감사할 좋은 일들이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반신반의하며 그 가운데에서 감사할 것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외롭게 혼자 사는 것보다는 술 마시는 남편이라도 있으니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남편이 술을 마시고 취했지만 다행히 집을 안전하게 잘 찾아와 준 것을 감사했다. 세 번째는 자신이 외출할 때도 술을 마신 채로 잠들어있는 남편 덕분에 집을 비우더라도 안심이 되는 것에 감사했다. 그렇게 감사할 것을 억지로 찾아내다 보니 나중에는 그 감사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바뀌는 것을 체험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아내가 감사하는 기도를 들은 남편이 감동을 해서 큰 결심을 하고 스스로 술을 끊었다고 하는 이야기였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수준의 재산, 명예, 권력, 미모, 학벌, 연애, 인격, 인맥, 직장 등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나의 생활에서 감사할 것들을 찾아봤다. 없을 줄 알겠지만 억지로 찾다 보면 누구나 하나쯤은 나오게 되어있다.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라도 말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들을 떠올려봤다. 

 첫 번째는 내가 아직 살아서 아침에 눈을 뜨고 내 발로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집 앞에 나와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먹고 싶을 때 언제든 냉장고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섯 번째는 옷장에 입을 옷이 있고, 잘 수 있는 방이 있다는 것이다. 일곱 번째는 시력교정 수술 후로 두 눈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덟 번째는 책을 많이 볼 수 있는 도서관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홉 번째는 나를 잊지 않고 연락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다는 것이다. 열 번째는 앞으로의 미래를 희망의 관점에서 기대해 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이 뭐가 감사할 일이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조그만 것들에 감사할 수 있게 된 것은 몇 해 전 교통사고로 건강을 잃어봤고, 사회생활에서 모았던 돈을 전부 잃은 적도 있었고, 오래도록 믿고 사랑했던 사람을 잃었던 적이 있었고,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체중이 급증했던 적도 있었고, 가족이 불치병에 걸려 투병하는 과정을 함께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잃어버리기 전에는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게 인간인가 보다. 


 그리고 희망이라는 작은 불빛은 정말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감사할 것을 찾을 줄 아는 사람에게로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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