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엔걸 스즈코와 사회적 낙인과 여성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외교에서는 물론 영화 산업에서 또한 분리할 수 없는 관계이다. 한국에서 불어온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 또한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페미니즘 연구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일본이 시대적으로 앞서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2000년대 초반에 들어오면서 일본의 가부장제 문화는 급격하게 심화되었고,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시점에서는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움직임 또한 한국 사회보다 둔화되어 있었다. 일본의 버블 붕괴 이후로 가정의 수입과 재산의 가치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 돌봄 노동을 전담하게 되었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2013년도 통계에 따르면 가정주부로 있는 여성의 비율이, 전체 기혼 여성의 30퍼센트를 넘었다. 이러한 일본 사회 속에서 2008년도에 발표된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는 일본 사회에서의 여성을 어떻게 재현하는지,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효과를 분명하게 표현하며 비판한다.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는 2008년도에 발표된 영화로, 원제는 “百万円と苦虫女” , 한국어로 직역하면 “백만엔과 고약한 여자”이다. 타나다 유키 감독이 감독하고, 여주인공으로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아오이 유우가 등장한다. 주인공은 여주인공인 스즈코로, 그녀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성공적이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살아간다. 그러한 그녀에게 갑자기 전개되는 범죄는, 평화롭고 평범하던 그녀가 낙인으로 인하여 살던 동네를 떠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는 이유가 된다. 아르바이트 동료의 제안으로 룸 셰어에 동의하고 계약하던 날, 그녀의 룸메이트는 돌연 남자친구와 셋이 살자고 이야기한다. 스즈코는 거절했지만,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고 어쩔 수 없이 세 명이 같이 살게 된다. 그러나 남자친구와 헤어진 아르바이트 동료는 영원히 집에 돌아오지 않았으며 동료의 남자친구와 둘이 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다툼이 벌어졌고, 스즈코는 남자의 짐을 다 버린다. 그러나 짐을 버렸던 스즈코는 전과자가 되고, 자신을 향해 쏟아내지는 비난과 낙인을 피해 도망친다. 그녀는 백만엔이면 집을 구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여러 지역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녀가 전과자가 된 계기와 그 이후에 만나는 남성들은 모두 그녀의 젊음을 탐하며 그녀에게 어떠한 형태의 부탁이라도 요구한다. 마치 사회 속에서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요구되고 강요되는 무언의 메시지와 동일하다. 아르바이트 동료의 전 남자친구는 동거를 요구했으며, 전과자가 된 이후에 만나는 형사는 그녀의 전과를 이용하여 성희롱한다. 그러한 시선을 피해 도망친 비일상적인 곳에서도 끊임없이 남성들은 그녀를 괴롭히며 곤란하게 한다. 처음에는 바다, 두 번째는 산, 세 번째는 소도시로 목적 없이 떠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현대사회에서 정처 없이 부유하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바다에서는 젊은 남성들에게서 시작되는 끊임없는 구애, 산에서는 시골 노총각의 결혼 대상이 되라는 강요, 마을의 상징인 “복숭아 처녀”가 되라는 강요 등 이미 전과자로 낙인이 새겨진 그녀에게는 더욱 힘든 여정이다.
스즈코는 20대 여성이지만 남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 사회에서 전과자이기도 하다.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스즈코는 “백만엔을 저축하고자 하는” “고약한 여성”이다. 그녀는 백만엔이라는 물질적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동하지만, 막상 노동 환경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제당하며 성적으로 소비된다. 실제로 마을의 대표인 “복숭아 아가씨”를 강요하는 마을 회의에서 스즈코는 그런 부당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전과자라는 것을 밝힌다. 자신이 갖고 있는 사회적 낙인을 공개함으로 벗어나려고 노력하나, “복숭아 아가씨”가 아닌 누구나 소비해도 되는 쉬운 “아가씨”로 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그녀가 산을 떠나 세 번째로 도착한 소도시에서 일하는 홈 센터 (원예용품 판매점)에서는 처음으로 사랑을 만나게 된다. 함께 일하는 남성인 나카지마는 배려심 깊고 스즈코를 이해한다. 스즈코도 그를 믿고 그녀가 갖고 있는 사회적 낙인, 전과자라는 사실을 밝힌다.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그 감정을 가지고 보통의 연애를 지속하는 스즈코는, 나카지마에게 지속적으로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요구를 받고 빌려주기를 반복한다. 사실은 나카지마가 필요한 것은 스즈코의 돈이 아니라, 스즈코가 백만엔을 모으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스즈코는 미련 없이 세 번째 도시를 떠난다.
스즈코는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목표를 위해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그녀를 붙잡는 것은 나이 어린 남동생이다. 엄마를 대신하여 남동생의 도시락을 싸고, 하교를 함께 했던 그녀는 남동생의 애정 담긴 편지를 받고 가끔 눈물을 훔친다. 그녀의 남동생은 스즈코의 전과로 인하여 학교에서 학교폭력 피해자로 힘든 생활을 하나, 그 와중 누나를 잊지 않는다. 감독이 그리고자 했던 것은 “가족애”이지만 그 상대가 남동생이라는 것은 여성 감독에게도 주어지는 남성적 시선의 강요에 대해 자유롭지 못함을 알 수 있으나, 반면에 이는 가족애가 없는 영화는 흥행할 수 없다는 일본 영화산업에서 정해진 일종의 낙인효과이기도 하다. 가정에서의 돌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 형제의 몫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효과로도 작용한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그녀의 굳건한 마음에 미세한 미동도 줄 수 없다는 사실은 여성 감독 영화를 응원하게 되는 가장 큰 애정과 이유다.
집을 떠나서 자신의 삶과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여성이라는 주제로 2008년도에 개봉된 백만엔걸 스즈코는, 2019년 제주 여성영화제, 2020년 도쿄 여성영화제에서 다시 한번 개봉될 정도로 젊은 여성들에게 오랜 기간 사랑받고 있다. 사랑하는 남자와 아끼는 남동생을 뒤로하고, 자신에게 사회적 낙인을 찍은 사회에서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스즈코는 스스로에게 “고약한 여성”이 아니라, 그녀를 착취하며 소비하고자 하는 남성들에게 “고약한 여성”으로 비치는 것이다.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이 마주하는 이기적인 여자에 대한 잣대와 닮아있다. 남성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배우 아오이 유우가 선택한 영화이기도 하기에, 일본 사회는 물론 국제사회에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가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