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오늘도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섰다. 뜸부기 알을 찾으러 가는 것이다. 지난 목요일부터 저러고 다녔으니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아버지의 1주기 기일을 지내고 두 달 쯤 지나서는 도라지꽃을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밖에 일이 있나보다 생각했다. 단짝을 잃어버린 지독한 상실감을 어떻게든 지워보려고 일부러 이리저리 발걸음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는 매번 얼굴이 벌개져서 돌아왔다. 누군가를 뒤쫓거나, 아니면 누군가한테 쫓긴 듯한 표정이었다. S는 순간 가슴이 철렁해서 여태 뭘 하다 왔느냐고 다짜고짜 화를 냈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너무 커보여서 자기도 모르게 그만…… 도라지꽃? 엄마가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엄마는 도라지꽃이 만발한 곳을 알아뒀다가 날마다 찾아간 거였다. 어느 날은 1호선 전철을 타고 하염없이 달려 병점역 근처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도라지꽃이 그렇게 좋으면 마당에서 키우면 되잖아.”
“비좁은 마당에서? 말만 들어도 숨이 막힌다. 당연히 내가 찾아 봬야지.”
엄마는 농담하듯 도라지꽃에게 존댓말까지 하며 손부채질을 했는데 가만 보면 ‘찾아 봬야지’는 진심으로 하는 말 같았다.
도라지꽃의 개화기는 7월~8월이었다. 엄마는 이 시기 동안 거의 날마다 외출했다. ‘서영옥’도 개화기를 맞은 것처럼 발갛게 활짝 피어난 얼굴을 하고서. 여름이 떠날 채비를 할 즈음 엄마의 얼굴은 시들어 떨어진 도라지꽃이 이렇지 않을까 싶게 까무잡잡해졌다. 해마다 아버지의 기일이 ‘여름’을 데려오면 엄마는 도라지꽃 사냥에 나서겠구나. 초롱초롱한 눈으로 욕심껏 도라지꽃을 포획할 줄 알았는데…… 잘못 짚었다.
아버지의 2주기 기일을 조용히 보낸 후 엄마의 특별한 나들이가 또 시작됐다. 엄마는 지난 해 보다 한 달 쯤 빨리 움직였다. 그게 지난 주 목요일이다. 벌써 도라지꽃이 피었나, 지구온난화가 개화시기를 앞당겼나, 입속으로 중얼거리는데 아버지의 앞모습과 엄마의 뒷모습이 번갈아 그려져 코끝이 찡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무사히 돌아온 엄마의 몸에서 비릿한 냄새가 언뜻언뜻 맡아졌다. 무슨 진흙 냄새 같기도 했다.
“도라지꽃 여자한테 꿉꿉한 냄새가 나네.”
“뜸부기 알 여자라 그런다.”
S는 베란다의 창문을 활짝 열었다. 후텁지근한 바람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엄마는 애호박을 얇게 썰어 채반에 널어놨다. 누리끼리한 옥수수수염도 신문지 위에 펼쳐져 있다. S는 햇볕에 그을린 듯한 옥수수수염을 보면 어김없이 땅에 떨어진 목련이 생각났다. 옥수수수염과 목련은 이질적인 조합인데 왠지 이란성쌍둥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몸으로 짱짱한 햇살을 받고 있는 동네가 눈부셨다. 뜸부기 알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고집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풀숲을 헤치고 다닐 엄마는 얼음물이라도 챙겨갔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아직까지는 뜸부기 알을 발견하지 못한 듯하다. S는 얼마 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뜸부기 알’이라고 입력해 봤다. 관련 이미지가 주르르 떴다. 사람들이 논두렁이나 연꽃농원, 논둑에서 우연히 발견했다는 뜸부기 알. 뜸부기가 초록색 커튼 같은 청보리 사이에 푹신푹신한 둥지를 만들어 곱게 낳아 놓은 알들이 신비스러웠다. S에게 뜸부기는 동요 속의 새로만 이미지화 되어 있어서 더 그랬다.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어쩌다 한 번 입안에서 날아다니던 새가 현실의 어느 논둑에 알을 낳아 놓다니. 엄마도 나처럼 뜸부기 알이 신기해서 직접 만나봐야 믿겠다는 듯 집을 나섰을까. S는 뜸북뜸북 노래를 부르며 엄마를 기다렸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S는 책을 읽다 말고 냉큼 일어났다. 모자를 한손에 들고 나타난 엄마의 얼굴이 붉으죽죽했다. 엄마는 냉장고를 열더니 시원한 물 대신 달걀을 꺼냈다. 오늘도 뜸부기 알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다. 엄마는 허탕을 치고 귀가하면 꼭 달걀을 삶아 먹었다. 달걀이 담긴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엄마는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후 물 끼얹는 소리가 들렸다. S는 엄마의 입이 먼저 열리기를 기다렸다. 몸도 마음도 끈적끈적하고, 뜸부기 알도 만나지 못했는데 누가 자꾸 말을 걸면 짜증이 솟구칠 테니까. 욕실에서 더위를 식히고 나온 엄마는 선풍기 앞에 바짝 다가앉았다.
“아, 선풍기 바람이 꿀맛이네.”
엄마는 입을 크게 벌려 선풍기 바람을 거푸 들이마셨다. 정말 달콤하고 고소하다는 듯이. 오늘따라 부쩍 초라해 보이는 엄마의 어깨가 눈앞을 가렸다. S는 빨래건조대에서 바싹 마른 수건을 걷어 엄마의 등 뒤에 앉아 젖은 머리를 말려줬다. 웬일로 가만히 있는 뜸부기 알 여자. 올 여름에는 도라지꽃이 아니라 왜 뜸부기 알이냐고 물어 보려다가 관뒀다. 반려자를 멀리 떠나보낸 엄마가 지혜롭게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확신처럼 무언가가 반짝 빛났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도라지꽃, 올해는 뜸부기 알로 환생한 아버지. 내년에는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까. 그건 오직 엄마만 알고 있겠지. 엄마가 선풍기에 대고 아~아~아~ 하며 여리게 소리를 냈다. 뜸부기처럼 뜸북뜸북 우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