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적 행동과 실천만을 학습이라고 부르는 엄격한 심리학이 그립다
사람들은 다양한 것들에 '배움'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일단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를 듣는 것을 '배움'이라고 칭한다.
학교에서 수업 듣는 것도 배움,
학원에서 강의 듣는 것도 배움,
TV에 나오는 유명 강사의 강연을 보는 것도 배움이라 부른다.
무언가 몸으로 하는 동작을 익히는 것도 배움이라 한다.
태권도의 동작을 따라하는 것도 배움,
농구의 기술을 따라하는 것도 배움이라 일컫는다.
영화나 드라마, 책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어도 배움이라 하고,
실수나 실패에서 교훈을 얻는 것도 배움이라고 부른다.
배움이라는 말을 너무 많은 곳에 사용하다보니,
배움이라는 말이 가진 무게가 참으로 가볍고,
가치가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듣기만 해도 배움이고, 보기만 해도 배움이란다.
동작을 한 번 따라하는 것만도 배움이란다.
뭔가 감동하면 배움이고, 찔리면 배움이란다.
여기도 배움, 저기도 배움.
배움이라는 것이 이렇게 희소성없이
아무데나 붙일 수 있는 말이었던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심리학자인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고?
심리학에서 '배움' 혹은 '학습(learning)'이라는 녀석은
반드시 '행동의 변화'를 동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배움은 아무 곳에서 붙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너무 묵직하고, 성스럽고, 거룩해서 감히 쓸 수 없는 단어가 '배움'이다.
강의 한 번 들었다고 감히 '배웠다'고 할 수 없고,
책 한 번 읽었다고 감히 '배웠다'고 칭할 수 없으며,
태권도 학원에서 동작 한 번 따라했다고 감히 '배웠다'고 이름 붙일 수 없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다가 깨닫고, 눈물 좀 흘렸다고,
배운 것이 아니요,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다가 감동 좀 받았다고
배운 것이 아니다.
인생의 실패나 실수에 대한 후회를 좀 했다고,
교훈을 얻었다고 말한다고 해서 배운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 심리학은 도대체 무엇에 '배움'이라는 표현을 쓰냐고?
지식을 보고 듣는 것은 배움이 아니지만,
배운 것을 실천하거나 가르칠 수 있게 되면
이렇게 행동으로 나타나면 배움이라고 한다.
운동 기술을 따라하는 것은 배움이 아니지만,
그 기술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실제로 써먹을 수 있게 되면 배움이라고 한다.
깨달음은 느낌 좀 받았다고 배움이 아니요,
실제 삶이 변화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며,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게 되어야 배움이다.
교훈을 얻었다고 말하는 것과 SNS에 써놓는 것은 배움이 아니다.
교훈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 교훈을 통해 삶이 변하고, 행동이 변하고,
태도가 변하고, 실천하는 것이 변했다면 배움이다.
심리학에서 배움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심리학은 철저히 행동의 변화만을 배움이라고 부르고,
실천이 뒤따르는 것만 배움이라고 부른다.
심리학에서 배움은 마음 먹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 먹지 않아도 실천하고 있다면,
더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것들을 실천하고 있다면,
그것을 배움이라고 부른다.
운동을 해야겠다는 깨달음은 배운 것이 아니다.
운동을 실제로 하게 되고, 꾸준히 해야 배운 것이다.
공부나 연습을 해야겠다는 후회는 배운 것이 아니다.
공부를 실제로 하게 되고, 계속 실천해야 학습한 것이다.
학습심리학의 대가,
폴 찬스(Paul Chance)가
자신의 지식을 집대성해서 쓴 학습심리학의 교과서명을
《학습과 행동(Learning and Behavior)》라고 지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학습은 곧 행동이고,
행동이 곧 학습임을 표현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학습은 곧 실천이고,
실천이 곧 학습이다.
폴 찬스가 보기에
행동하지 않는 지성은 죽은 것이고,
실천하지 않는 지성도 죽은 것이다.
살아 있는 배움, 살아 있는 지성은
실천하는 지성이고, 행동하는 지성이었던 것이다.
행동이 변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고 있으면서
머리가 잠시 즐거웠다고 감히 배웠다고 말하지 말자.
우리가 진정 배웠다면,
행동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었을 것이고,
실천이 뒤따르고 있을 것이다.
행동과 실천만을 배움이라 정의하는
엄격한 심리학이 문득 그리워진다.
*참고문헌
Chance, P. (1999). Learning and behavior. Pacific Grove, CA: Brooks.
*표지 그림 출처
인공지능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https://www.krea.ai/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