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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한결 Oct 22. 2020

농부에게 농사지을 땅이 없다

농사를 위한 농지는 농민이 주인이다

농사를 짓는 자가 농지를 소유한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다. 2020년 10월 21일 농민신문에서 발표한 고위공직자 농지 소유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위 공직자 1,862명에 대한 조사에서 무려 719명(38.6%)이 농지를 소유한 것으로 확인되었다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공직자의 신분을 망각하고 국민을 기만하는 정도가 도를 넘은 것이리라. 농민으로 등록되어 실제로 농사를 짓는다면 다행이지만, 국정에 집중하기도 어려울 텐데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땅에 집중하는가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각종 개발 및 규제가 풀린 후에 고가로 땅을 팔겠다는 뜻이다.


농지법상 예외 조항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고 해도 공직자라면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농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여건 마련에 동참한다면 보다 합리적인 사회가 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으니 걱정이다. 경자유전 원칙이 이론에 불과함은 지주가 횡포를 부리던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 지금까지 변한 게 없다. 손에 흙을 묻히는 자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자 사이에는 결코 넘지 못할 벽이 존재한다. 눈으로 농사를 짓는 자와 몸으로 농사를 짓는 자를 구분 짓는 것은 토지의 유무로 판가름 난다.


가난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농사를 포기한다.


내 부모님 세대에도 부조리는 만연해서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이는 늘 고통에 허덕인다는 사실을 잘 안다. 뼈 빠지게 일을 해도 늘 가난의 굴레에 머물 수밖에 없는 구조는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내 땅이 없어 남의 땅을 빌린 순간부터 파종에 필요한 종자, 성장에 필요한 각종 약재와 비료 구매 비용은 고스란히 실제로 농사짓는 농부의 몫이다. 게다가 아들, 딸 구분 없이 수확기를 비롯한 농번기에는 모든 가족이 노동력의 희생양이 된다. 내 가족도 예외일 수 없었듯이.


땅 주인, 지주(地主)는 가만히 앉아서 곡식이 여물기만 기다릴 뿐이다. 농번기에도 단 한 번이라도 들에 나서는 경우가 없다. 아마도 발이 무거워서일 테다. 좋은 공기를 마시며 익어가는 곡식을 바라보는 것은 그저 풍경 감상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딱 한 번 정도는 느린 발걸음으로 여유롭게 자신의 토지에 관심을 두는데, 바로 수확할 시점이 도래했을 때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의 수확량이 나올 것이고 그렇다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나에게 들어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기 위해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장사치가 다 걷어간다. 이 모습을 지켜본 힘없는 농부의 아들과 딸은 자라서 두 번 다시는 토지로 돌아오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러했으니 남들 또한 나와 비슷한 입장일 테다.


농촌에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귀농, 귀촌 인구가 점점 늘어나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 도시가 되살아난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자주 접한다. 실제로 귀농 인구에 대한 조사에서 성공적인 정착으로 여유로운 삶을 사는 이도 일부 존재한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귀농이 아닌 귀촌인 경우가 더 많다. 열 가구가 농촌, 어촌, 산촌으로 들어온다면 아홉 가구는 단순히 은퇴 이후의 여유로운 삶을 위해서가 대다수다. 간혹 한, 두 가구는 실제로 농업과 어업, 임업과 관련한 일을 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교육과 귀농 실습을 해본 결과,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것은 바로 토지를 구하는 일이다. 어릴 적부터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경험한 농사의 기본적인 지식에 땅은 필수였고, 지금에 와서 다시 농사를 생각했을 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다. 농지은행이라 해서 땅을 빌려 농사도 가능하나 언제까지 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언젠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땅을 소유해야 하는데 현실이 그리 쉽게 허용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농촌에 살기 위해 들어갔다가 다시 도시로 회귀하는 사례가 생겨나는 것은 농지의 소유 여부와 연관이 깊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땅이 없어 소득 창출이 만무할 테니까. 물론 보이지 않는 텃세라든가 각종 인간관계가 주요 원인일 경우도 많지만.


농부에게 농사지을 땅이 없다.


이 얼마나 슬프고 애석한 일인가? 삶의 터전이 되어야 할 근간이 없다는 것은 사상누각처럼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일이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땅을 줘야 비로소 나라가 바로 설 텐데 정부는 이를 개선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초고령화를 향해 나아가는 미래를 고려해보면 머지않아 우리네 땅에서 생겨난 먹거리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있다고 하더라도 늘어나는 자연재해로 인해 높은 가격으로 구매를 해야 하고, 이마저도 길게 늘어선 줄에서 순번을 기다려야 할 날이 코앞이다.


시간을 녹여내는 과정에서 흘린 땀과 정성은 고향으로 향하는 연어의 애절한 몸짓과 같다. 도시에 살면서 농촌에 대한 중요성을 잊고 살고, 잊고 싶어서 잊었으며 앞으로도 계속 잊어가면서 살면 그만일 텐데 그러지 못함은 결국 돌아갈 어떤 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날이 오기 전에 보다 나은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땅과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계속되리라.


이제라도 농부에게 땅을 되돌려줬으면 한다. 고위공직자를 포함하여 투기와 재산증식을 목적으로 생명의 근원인 땅을 소유한 이는 누구를 막론하고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땅은, 농사를 위한 농지는 농민이 주인이며, 이것이 경자유전이다.



Written By The 한결

2020.10.22 대한민국 대구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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