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인류학자 Mar 05. 2020

과한 장보기로 빼앗긴 자유

미니멀리즘

우리 집 한 달 식비 예산은 30만 원이다.

5주를 한 달로 잡고 한 주에 6만원 예산에서 장을 봐야 한다.

그런데 이번 주에 무려 14만 원어치 장을 봤다. 물론 몇 주 동안 먹을 고구마, 오렌지, 홍차, 소스류 등을 구입하긴 했지만, 과한 지출이었다.

꼬마김밥, 또띠아 피자, 호떡믹스 피자.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새로 알게 된 레시피를 해봐야겠다는 도전의식과 다음 달에 나올 연말정산 "득템소득"에 대한 기대가 과소비를 불러일으켰다. 


앱 장바구니에 담을 때는 만들어질 요리를 생각하며 즐거웠다.

가공품이나 즉석식품이 아닌, 신선한 야채, 과일, 육류 등 원재료를 사서 건강한 요리를 하는 엄마라는 자부심도 느꼈던 게 사실이다. 

그 기쁨은 냉장고에 재료를 채워 넣을 때, 거기까지였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마음이 바빠진다.

야채, 고기, 두부, 유제품.. 모두 유통기한이 일주일 남짓 되는 것들이다.

일주일 안에 해 먹지 않으면 모두 버려야 한다. ㄷㄷㄷ

우선 냉장고에 있는 재료가 무엇인지 적어본다. 

그리고 당장 내일 사용해야 하는 재료들로 할 일을 적어본다.

'양배추 피클 만들기. 닭안심 돈가스 만들기. 국거리 소고기 소분해서 냉동에 넣기, 먹다 남은 된장국과 낚지 덮밥 처리하기, 만들어 놓은 피자소스 처리하기' 그러려면 조만간 또 피자를 만들어야 한다. 아 벌써 지겨워.. 


그런데 문득 핫 트렌드 '미니멀리즘'에 관한 한 생각이 떠올랐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한 친구가 말했던 '자유롭다'라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이 극단의 체험을 통해 알 거 같았다.


마음껏 장을 볼 때는 즐거웠지만, 그 소비는 곧 나를 바쁘게, 그리고 복잡하게 했다.

물론 "미니멀"하게 구입했을 때에도 이것으로 뭘 해 먹나 고민해야 했지만, 지금처럼 마음이 바쁘고 복잡하진 않았다. 오히려 제한된 재료로 창의력을 발휘해서 요리를 해 낼 때의 쾌감, 내지는 성취감이 있었다. 그리고 점점 비워지는 냉장고를 보며 내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것으로  냉장고는 꽉 차 있지만, 동시에 내 머리도 한 주간 저 재료들을 다 소모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꽉 차 있다.


낮에 아빠가 해온이가 보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나도 내심 친정에 가서 며칠 있고 싶었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썩어 버려질 저 수많은 신선한 재료들을 두고 갈 수가 없었다.

캐리어에 다 싸서 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렇다 난 "부자유"해졌다.

떠나고 싶어도,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ㅠㅠ 

그리고 난 다짐한다. 

고기 및 어패류 이만 원, 야채 만 오천 원, 과일 만 오천 원, 기타 가공품(우유, 두부 등) 만원 총 육만 원이 한 주 동안 우리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최대 음식 양임을 잊지 말자고...

그 이상은 누가 거저 준다 해도 먹을 수 없는 양이니 그 이상 사서 썩어 버리는 일 하지 않기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 골치 썩는 일 애초에 만들지 말기.   

 


2017.2.21


작가의 이전글 상가의 추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