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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Kim Jul 02. 2019

[무비패스] 꿈과 기회, 어른들을 위한 동화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서 바다를 응시하기만 해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 타고르



어른이 되면서 가장 낯설어지는 단어는 아마 '꿈'이 아닐까. 철저히 계획된 오늘 안에서 그런 이상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를 떠올리기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그보다는 '계획' 내지는 '목표' 같은 들이 우리 일상에 조금 더 숙하고, 또 어울렸다.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 (2019, 켄 스콧 감독)은 '꿈'으로 점철된 영화이다. 그 꿈은 때때로 되고 싶은 모습을 논하는 희망(hope)이기도 하고, 말 그대로 꿈, 몽상(fantasy)이기도 하다. 전자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라면 후자는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에 가깝다. 즉,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물음에 영화는 동화적 상상으로 답한다.


주인공 '파텔'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은 <고행 수행자의 특별한 여행>이라는 원작 소설에 기반한다. 국경 경찰이었던 원작자가 2014년에 출간해 단숨에 세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원작자의 직업이 '국경 경찰'이었다는 것에 단단히 수긍이 간다. 매일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보며 작가는 상상을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맞닥뜨렸을 현실의 문제들, 가령 '난민'이나 '불법체류' 같은 문제들이 영화 기저에 자리 잡고 있다.


이야기는 '파텔'이 소년범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년 파텔은 인도 뭄바이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는 가난아이였다. 아버지를 모른다는 것만 빼면 특별할 게 없는.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바다 건너 저편의 세상을 배우고 돌아온 그는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우리 가난해?(Mom, are we poor?)" 세상이 이렇게 넓다니. 자신이 속한 세상은 너무나 비좁고 초라했다. 그 뒤로 그는 부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촌들과 작당을 마술쇼 등을 벌이며 돈을 벌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우연히 발견한 이케아의 제품 카탈로그. 그는 라인과 제품명을 달달 외우며 이케아에 대한 로망을 키운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거실엔 이걸 놓을 거야." 여기서, 이 영화에서 '이케아'라는 브랜드가 갖는 상징성이 드러난다.  유럽에서는 저렴한 보급형 가구에 가까운 이케아를 동경하는 바다 건너의 가난한 소년. 이케아의 화려한 색채와 대비되는 뭄바이의 무채색 도시 풍경. 영화에서 이케아는 '유럽', '자본', 나아가 파텔이 닿지 못했던 바다 건너의 '세상' 그 자체이다. 파텔의 의도치 않은 긴 여행의 시작점이 이케아 옷장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소년 때에도 성년이 되어서도, 이케아는 파텔과 세상을 매개한다. 이쯤 되면 제목에 굳이 특정 브랜드를 언급한 것에 대한 의아함은 감탄으로 바뀐다. 호기심을 자극함과 동시에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영리한 장치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이케아를 동경하며, 마술쇼로 거리를 전전하며 성인이 된 파텔은 이제는 연로해진 어머니를 보살피고 있다. 열심히 돈을 모아 언젠가는 함께 아버지가 있는 파리에 갈 것을 꿈꾸면서. 하지만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어머니는 눈을 감고, 파텔은 어머니의 골분을 품에 안고 위조지폐 100유로를 달랑 든 채 무작정 파리로 떠난다. 파리에 도착한 그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에펠탑도 베르사유 궁전도 아닌, 이케아 매장이었다.


파리에 도착한 파텔은 이케아 매장부터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마리'라는 미국 여자에게 첫눈에 반한다. 마리 역시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두 사람은 서로의 고향과 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눈 뒤 다음 날 에펠탑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그날 밤, 빈털터리인 파텔은 이케아 매장의 옷장에 숨어 하룻밤을 보내기로 한다. 그런데 하필 그 옷장이 영국 런던으로 배송되기에 이르고, 억울하게 불법체류자로 잡힌 파텔은 마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영국 관리는 파텔을 다른 난민들과 함께 스페인으로 보내버린다. 그렇게 파리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스페인으로, 파텔의 강제 여행길은 시작되었다.


스페인에서도 난민들을 반기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스페인 공항에 억류되어 숙식을 해결하며 하루하루 근근이 삶을 이어가던 파텔. 그는 이것이 자신의 업보(karma)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건히 잠겨있는 문을 매일 수시로 밀어보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어느 날, 기회(chance)가 찾아왔다.  문이 움직인 것. 파텔은 화물칸으로 이어진 컨베이어 벨트에 몸을 싣고 또 다른 옷장에 숨어든다. 여배우 '넬리'의 명품 옷장은 로마로 향했고, 그렇게 그는 파리, 영국에 이어 이탈리아에 닿았다.


영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잡힌 파텔은 마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 한다.


파텔의 은인이 된 넬리와의 첫 만남.


자신의 옷장에서 나온 파텔을 발견한 넬리는 당황하지만 그가 옷장에 숨어 자신의 옷 위에 쓴 글에 감동하고, 그의 벗이 되기에 이른다. 오래전에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넬리에게 파텔은 용기와 기회를 준다. 두 사람이 무도회장을 한바탕 휩쓰는 바람에 앞에 기자들이 몰리고, 그 기자들을 향해 넬리는 옛사랑에 대한 고백이 적힌 메시지를 들어 보인다. 그렇게 넬리는 놓쳤던 사랑을 다시 찾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파텔에게 일확천금을 안겨준다. 파텔이 글을 쓴 셔츠를 약간의 거짓말을 가미해 고가에 팔아준 것.


그렇게 행운의 여신은 완벽히 그의 편이 되어준 듯 보였다. 그러나 막 돈을 들고 떠나려는 그에게 셔츠를 샀던 사람이 속은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내고, 파텔은 졸지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도망을 치던 그는 열기구에 올라타고, 성공을 자축하며 축배를 든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연료가 다 떨어져 바다 한가운데에 추락할 위기에 처한 파텔. 마지막 순간에 그는 가장 먼저 마리를 떠올린다. 마리의 친구에게 메시지를 남긴 그는 이내 가족사진을 꺼내 든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그를 나무란다. '업보'라 여기지 말고 '선택'을 하라고. 그리고 그때, 그가 탄 열기구는 큰 배 위에 안착한다. 극적으로 목숨을 구한 순간. 하지만 그가 탄 배가 향하는 곳은 리비아의 트리폴리였다. 이렇게 그의 네 번째 여행이 시작되었다.


열기구를 타고 도망치는 파텔. 돈 가방과 자유. 행운이 자신의 편이라 여겼다.


배의 선원들에게 돈이 들어있는 가방을 빼앗긴 파텔. 하지만 영국 국경에서 탈주 시 자신이 도움을 주었던 '위라지'와 우연히 재회해 그와 그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가방을 되찾는다. 고마운 마음에 파텔은 자신이 가진 돈의 일부를 난민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한다. "이 중에서 꿈과 희망이 있는 분은 앞으로 나와 말씀해 주세요." 사람들은 차례대로 파텔 앞에 앉아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관객은 긴장한다. 혹시 저 중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먹고 거짓말을 해 필요한 돈의 규모를 부풀리지는 않을까. 사람들이 파텔의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그를 해치진 않을까. 하지만 불안한 예감을 기분 좋게 빗나가고 동화 같은 마법이 펼쳐진다.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배를 갖고 싶어요." "비행기 티켓이 필요해요." 누구도 부풀리거나 거짓말하지 않는다. 자신의 꿈을 위해 꼭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요청하고, 감사히 받아 든다. 수십 명의 사람들의 수십 가지 꿈과 희망을 듣고 이뤄주며, 파텔은 말한다. 자신이 지금까지 한 중 가장 멋진 마법이 일어났다고. 그리고 이 마법을 통해 그는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각기 다른 모양의 꿈과 희망을 들으며 그 역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을 터. 그 답은 고향에 있었다. 그랬기에, 종래에 자신에게 남은 돈이라고는 고작 여권과 비행 티켓을 살 정도였지만 아쉽지 않았다. 그것이면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파텔은 파리에 들른다. 이케아 매장에 두고 왔던 어머니의 골분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다시 찾은 매장에서 그는 마리와 재회한다. 하지만 그녀 옆엔 이미 다른 남자가 있었다. 파텔은 자신의 고향인 인도 뭄바이로 돌아와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바다 너머의 세상을 알려준다. '서서 바다를 응시하기만 해서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는 타고르의 시를 읽어주던 어느 날, 그녀, 마리가 찾아온다.


파텔이 소년범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는 이렇게, 둘의 재회로 해피엔딩을 맞는다. 그리고 파텔은 덧붙인다. 감옥 대신 학교에 오라고. 파텔의 이야기를 통해 더 넓은 세상과 그 세상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새로운 기회들을 접한 아이들은 흔쾌히 승낙한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꿈(fantasy) 같은 꿈(hope)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이 업보(karma)가 아닌 기회(chance)가 되게끔 '선택'하라고 권유한다.


아이들과 헤어져 나오는 길, 관리가 묻는다. "모두 진짜 이야기인가요?" "대부분은요." 영화를 풀어나가는 동화적인 상상들이 납득이 가는 순간이다. 이 자체가 파텔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동화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동화는 비단 이 소년범들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닌 듯싶다. 그보다는 우리 관람객들, 어른들을 위한 동화에 더 가깝지 않을까. 잊고 있었던 단어, 꿈, 희망, 기회, 선택을 이야기하는. 불현듯 찾아온 여행처럼 기분 좋은 영화, <이케아 옷장에서 시작된 특별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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