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출국을 못한다는 건,
공항성애자
어쩌면 나는 여행 그 자체보다
'공항 가는 길'의 설렘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니까 나는, 여행중독 보다는 출국중독에 가깝다.-
그 길에 늘 봐왔던 익숙한 다리가 눈에 들어오자
습관처럼 가슴이 쿵쾅였다.
'활주로 뷰'로 유명한 호텔에 도착해
유리창 너머로 박제된 공항의 모습을 보았을 땐,
조금 울었다.
"통일전망대 같아."
지금은 건너갈 수 없어.
언젠가, 다시 만나.
여행의 자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여행 중일 때의 나' 라는 별개의 자아가 있어서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여행 중'이라는 별도의 삶을 이어간다고.
그래서 일상으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현실로 돌아오지만
다시 여행 길에 오르면, 앞선 여행에서의 삶을 이어나간다고.
그 때 나의 마지막 기억은 직전 여행의 귀국길.
흐릿해진 줄 알았던 추억들이 다시 선명히 떠오르고,
잊은 줄 알았던 여행에서의 사소한 루틴이 다시 몸에 배어 나온다.
그 때의 나, 내 '여행의 자아'는
조금 더 잘 웃고, 관대하고, 여유로울 뿐 아니라
조금 더 현명하고, 훨씬 더 용감해서
현실의 나를 지탱하는데에
하나의 큰 동력이 되어왔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게 여행(출국)을 못 한다는 건,
단순히 놀거리가 떨어진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두어달 걸러 한 번씩 이어져온 삶이 끊어진,
나를 구성하던 두 개의 자아 중 하나가 무너져내린 그런 느낌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