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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t Jun 29. 2023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 해석/분석/감상

희망에 회의적인 웨스 앤더슨이 쌓아올린 사랑의 도시, 삶의 방식

이동진의 언택트톡 + 주관적인 해석

* 기억에 의존하여 쓰는 글인 만큼 세세한 장면이나 대사 묘사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해석임을 참고해주세요.

* 아래에 프롤로그, 제1막 등으로 목차를 나눠둔 것은 단순히 <애스터로이드 시티> 구성 방식의 패러디이며 실제 영화의 해당 장과는 순서가 무관합니다.

* PC로 글을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프롤로그

0 - 웨스 앤더슨 유니버스 (WAU?)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웨스 앤더슨이 여태껏 자신이 만들어온 영화에서부터 온갖 시네마에 대한 사랑을 담아둔 영화처럼 느껴졌다. 영화 시작부터 웨스 앤더슨의 영화를 여럿 본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액자식 구조와 나레이션 방식을 차용하며, 극중 극의 시작부터 <프렌치 디스패치>를 끌고 온 모습을 보인다. 바로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도착한 오기 스틴백의 차 옆면에 "French Press, International"이라고 쓰여 있는 것. 실제로 오기 스틴백의 직업 역시 'War Photographer' 즉 종군기자 격으로 소개가 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자는 아니고 사진사이기는 하다)

FRENCH PRESS / international

또한,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히 <문라이즈 킹덤> 역시 떠오른다. <문라이즈 킹덤>은 아주 짧게 요약하자면 12살의 어린 남녀 아이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 모습은 <애스터로이드 시티> 속 다이나 캠벨과 우드로 스틴백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와 아주 닮아 있으며, 어른들보다도 그들의 사랑과 감정 표현에 스스럼없다는 점에서 더욱 유사하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제3막에서 조금 더 자세히 하겠다.)


1 - 액자식 구성, 몰입 금지!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기본적으로 우리가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서 배웠을 '액자식 구성'을 띠고 있다. 다만 그 액자가 겹겹이 쳐져 있다는 것이 우리를 헷갈리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고, 인물의 이름을 외우기 어렵게 만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하)

가장 바깥 액자는 영화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흑백의 나레이터가 해설을 하고 있는 세상. 그 안쪽 액자에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제목의 연극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세상. 그리고 그 안쪽 액자에는 <애스터로이드 시티> 연극이 있다. 나아가, 이걸 액자라고 명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연극 속 밋지 캠벨이라는 인물이 연기하는 세상까지, 굳이 세세하게 따지자면 3개의 액자로 이루어진 구성이다. 조금 더 디테일에 대한 설명을 추가하자면, 컬러인 연극 내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영화 화면 비율로 진행이 되지만, 흑백인 바깥 액자의 모습은 영화사 초기의 화면 비율인 1.33:1(4:3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로 진행이 된다.

가장 바깥 액자.

이 가장 바깥 액자에 있는 나레이터의 말 중 인상 깊은 지점은 '애스터로이드 시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닐까. 영화의 시작부터 대뜸, 영화에 몰입하라는 말 대신 이 모든 이야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도시의 이야기를 그려낸 허구의 것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보통의 영화와는 사뭇 다른 전개이다. 이처럼 웨스 앤더슨은 의도적으로 영화의 가장 메인이 되는 서사와 완전히 분리되는 나레이터를 개입시킴으로써 영화에 감정적으로 몰입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장치를 자주 사용하는 듯하다. 실제로 영화 속 인물들 역시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구는 일이 거의 없고 거의 항상 일정한 목소리 톤과 무표정함을 일관하니 말이다.


제1막

1장: 외계인과 소행성

무시무시한 모습일 것처럼 분위기를 조성해두었으나 사실은 길쭉하고 깡마른 블랙 소르베 덩어리(...) 같던 외계인. 이러한 외계인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단박에 떠올릴 법한 이미지는 '귀엽다', 그리고 '수줍어 보인다'는 것이다. 어딘가 수줍은 구석이 있다는 것은 웨스 앤더슨 영화 속 인물들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오기 스틴백은 현상한 외계인의 사진과 밋지 캠벨의 사진을 나란히 방에 걸어둔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소행성을 가져가려고 들고 있던 중 어정쩡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이 찍힌 외계인의 모습과, 수건을 빼내려고 하다가 어정쩡한 자세로 사진이 찍힌 밋지 캠벨. 사진 속 둘의 모습은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외계인은,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방문에 소행성을 가져간다. 외계인이 소행성을 가져간 시기는 연극의 초중반부, 즉, 연극 속 인물들이 제각기 상실을 겪거나 사랑을 잃은 순간이다. 특히 오기 스틴백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아내를 잃은 지 3주가 지난 시점이고, 이를 아이들에게 처음으로 밝힌 순간이었기에. 하지만 외계인이 사랑으로 표상되는 소행성을 돌려놓은 후, 가장 큰 변화는 다이나 캠벨과 우드로 스틴백의 사랑 선언이다. 우드로 스틴백이 만든 과학 장비를 이용해서 그들은 달 위에 자신들이 사랑하고 있다는 표식을 그려 띄워 올리고 사랑을 나눈다.

외계인이 처음 방문했을 때, 상자를 들어 우주선이 있는 하늘을 보는 사람들.

이때, 외계인이 소행성을 가져가기 위해 방문해 새장을 살짝 들어올리는 모습은, 천체를 관측하게 위해 머리 위에 쓴 상자를 살짝 들어올리는 사람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떠난 아내이자 밋지 캠블로 표상되는 외계인이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찾은 이유가 소행성이었던 것처럼, 그 순간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있던 각자가 하나의 소행성이 된 듯해 보인다. 사랑하는 누군가의 사랑이었던 그들의 모습은, 오기 스틴백에게도, 그의 아이들에게도, 밋지 캠벨에게도 해당된다.


2장: 파리 소리

연극의 제1막 4~5장을 알리는 화면에서는 다소 거슬리는 듯한 파리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해당 장에서 두 번, 제2막에서 다시 한 번, 파리 소리가 들려온다. 이는 모두 오기 스틴백의 죽은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들려오는 소리이다. 바로 오기 스틴백이 우드로를 포함한 아이들에게 너희들의 엄마가 사실은 3주 전에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줄 때, 그리고 밋지가 오기와 연기 합을 맞추어 보면서 '죽은 아내를 떠올리면서 연기해 보아라'고 할 때. 주변에서 계속해서 맴돌며 신경이 쓰이는 파리 소리처럼, 오기 스틴백에게 죽은 아내 역시 비슷한 존재였을 것이다. 밋지 캠벨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오기 스틴백 역시 밋지와 같이 내면의 상처를 꽁꽁 숨겨두고 있는 사람이고, 오기의 그 상처에는 죽은 아내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오기는 실제로 아내를 정말 사랑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 오기에게 역시 아내의 죽음은 큰 상실을 안겨주었을 것이고, 무표정해 보이는 오기 역시 아내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좀 미안한 소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에 다다라서 등장하는 아내의 헤어 스타일도 좀 파리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I'm sorry...

오기 스틴백의 아내.

3장: 내기

J. J. 켈로그는 극중에서 별다른 서사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엉뚱한 내기를 시도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고추 먹기 내기부터 지붕에서 떨어지는 내기, 누르면 안 된다는 버튼을 눌러보자는 내기 등, 이상한 내기를 제안하고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혼자서 대뜸 그 행동을 요란하게 시도해서 관심을 사고는 한다. 사실상 그 행동 또한 큰 관심을 산다기 보다는 잠깐의 서프라이즈를 만들어내는 정도에 그치지만 말이다. 실제로 켈로그가 직접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이 행동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한다. J. J. 켈로그를 포함한 영화 속 아이들은 천문학쪽으로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천재들이고 스스로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무한한 우주에 대해 알면 외로워진다는 말을 흔히들 하는데, 켈로그 또한 그러한 케이스일 것이다. 광활한 우주의 작은 점 같은 자신이 그래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는 것,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타인에게 눈에 띌 만한 행동을 하고 내기를 하는 것. 사실상 이러한 켈로그의 행동은 '내기'라고 정의하기에도 어렵다. 실제로 영어로는 'dare'라고 표현되어 있으니,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이거 한번 시도해보지 않을래요? 안 한다고? 그럼 내가 해보지!'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러한 도를 넘은 그의 실험 정신은 결국 존재성 증명을 위한 무모한 행위가 되는 것이다.


4장: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

회의를 위해 극작가와 <애스터로이드 시티> 연극의 출연진들이 모두 모여앉은 곳에서, 극작가는 모두가 잠드는 장면을 구상하려고 한다고 말을 꺼낸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유일하게, 웨스 앤더슨의 강박적인 구도가 깨진다. 수평을 맞추는 것으로 모자라 대칭 구도까지 맞추던 웨스 앤더슨이, '잠들지 않으면 깨어날 수 없다'는 반복되는 강렬한 대사를 담을 때에 화면을 45도 가량 기울여 촬영을 한 것이다. 또한, 해당 대사를 말하는 사람을 한 명씩 클로즈업 할 때, 외계인이 등장했을 때와 같이 초록빛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진다.

그렇게 연극 도중에 처음으로 오기 스틴백이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는 모습이 비추어졌을 때, 세상은 변해있다. 격리는 하루밤 사이에 풀려 있고, 스탠리 잭과 오기 스틴백은 어찌 되었든 함께 살며 아이들을 보살피겠다고 결심을 내린다.

무엇보다도 연극에서 잠이 드는 행위를 현실로 잠시 돌아갔다가 오는 것으로 본다면, 오기 스틴백의 '깨어남'은 떠난 아내와의 대화 도중에 이루어지는 셈이다. 연극 장면 중에는 이미 잘려 버려 기억이 희미해졌으나, 떠난 아내 역할을 맡은 배우는 오기 스틴백에게 그와 자신의 극중 대사를 하나하나 되짚어준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이런 대사를 말한다, 그러면 나는 이런 대사를 말하고, ... 영화 속에서 '잠시 쉬고 오는 것'으로 표현되는 이 과정(=잠드는 것)을 통해 스틴백은 깨어나서 다시 연극 속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제2막 - 인물

1장

거의 대부분의 웨스 앤더슨의 영화(모든 영화를 보지는 않아서 '대부분'이라고 해둔다)에서 어른과 아이는 사랑과 감정 표현에 있어서 뒤바뀐 듯한 모습을 보인다. 어른들은 자신이 사랑을 하고 있는 건지, 연애를 하고 있는 건 맞는지, 자신들조차도 명확하게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애정 행각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는 모두 아이들이지 어른들이 아니다. 성인 인물들이 '했나 보다' 하는 것을 짐작할 만한 여지는 남겨주지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며, 그러한 반면에 아이들이 키스를 하는 장면은 <문라이즈 킹덤>에서도,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 아이들은 '너희들 썸 타냐'는 질문에 '이성적인 감정은 아직 아니다'라고 대답하거나, 공중에 자신들이 사랑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식을 그려 당당하게 띄우기도 한다. 보통의 사랑 이야기는 어른들의 것이 대부분이고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루며, 감정에 능숙한 것은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는 정반대인 것이다. 이러한 아이들의 대범함은 미국에서 부당해 보이는 격리 조치가 떨어지고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생각했을 때 어른과 아이의 행동 차이에서도 드러난다. 아이들은 공중전화를 이용해서 세상에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반면, 어른들은 함께 감추려고 노력하거나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이로써 소위 말하는 '덜 자란 어른'과 '성숙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너희 엄마는 별나라에 있어'라고 말하는 어른들과 그에 '별 표면은 뜨거워서 사람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도 성숙한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기제로 해석될 수 있지 않을까.


2장: 밋지 캠벨

밋지 캠벨은 마릴린 먼로의 오마주 격인 캐릭터이다. 이를 알 수 있는 지점은 첫 번째로 밋지 캠벨이 자타공인 뛰어난 코미디언 배우라는 것이다. 또한 밋지는 극중에서 알코올 중독자 연기를 하고 싶다며 욕조에 죽기 직전의 모습으로 축 늘어져 있는 연기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 지점 역시 마릴린 먼로의 마지막을 상기시킨다.

웨스 앤더슨의 디테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에서는 자판기 여러 대가 숙소 뒤편에 늘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중에는 마티니 자판기가 있다. 실제로 마릴린 먼로가 좋아했던 칵테일 역시 마티니였다고 하며, 밋지 캠벨의 방에는 마릴린 먼로가 모델이었던 샤넬 No. 5 향수가 올려져 있기도 하다.

또 한 가지 떠오르는 지점은, 밋지 '캠벨'이라는 이름이다. 앤디 워홀의 유명한 팝 아트 작품 중에는 <마릴린 먼로>와 <캠벨 수프 캔>이 있다는 것. 공교롭게도 이 캠벨 수프 캔과 밋지 캠벨 성씨의 철자가 동일하다. 앤디 워홀의 작품이 현대의 상업적 대량 생산과 소비주의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어쩌면 밋지 캠벨은 오기에게 죽은 아내를 상기시키는 극중 인물을 넘어서서 복제품 같은 세상 수많은 배우들 중 하나라는 외로움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밋지가 극중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코미디언 연기를 좋아하지만, 나는 삼류 영화 연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점 또한 연결지어 떠오른다. 밋지의 대사는, 공장에서 만들어내는 듯 똑같이 생긴 여러 점의 작품을 늘여놓아, 대량생산된 공장제 제품과 예술 작품의 모호한 경계를 표현한 앤디 워홀의 작품 세계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대중은 마냥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희극 연기(=대량 생산 제품)를 하는 밋지의 모습을 사랑했으나, 밋지는 소수의 이들에게 사랑받는 자신의 삼류 연기(=예술 작품)를 사랑하였다.

밋지 캠벨이 머무는 방. 뒤쪽에 샤넬 넘버 파이브가 올려져 있다.

밋지 캠벨 캐릭터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서 캐릭터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밋지 캠벨을 포함한 많은 영화 속 어른들이 외로운 모습을 보인다. 특히 밋지 캠벨은 자신이 갖고 있는 아픔을 구체적으로 상술하지는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도록 말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점을 배가한다. '두 번째 남편'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고-이는 이혼을 세 번 했던 마릴린 먼로의 생애와도 겹쳐진다-, 여태껏 폭력적인 남자들을 많이 겪어왔다고 하며, 무엇보다 오기에게 '우리는 둘다 상처를 갖고 있지만 내면에 꽁꽁 숨기고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러한 점에서는 밋지가 오기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최소한 밋지는 자신이 상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으나, 오기는 밋지의 말을 듣고서야 '그런가' 하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하는 정도가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밋지 캠벨은 자신이 애정을 느낀 듯했던 오기 스틴백이라는 상대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진실된 속내를 보여주지 못한다. 밋지 캠벨은 상처를 속에 꽁꽁 숨기고 있다고 하였지만 그 상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들추어 꺼내어 보이지 않았으며, 오기 스틴백에게 전해 달라며 카페 주인에게 남긴 집 주소지 또한 실제 주소가 아닌 공동 사서함 주소였다. 죄책감도 잘 모르겠다고 말하고 영화 속에서 웃음도, 눈물도, 분노도 좀처럼 보이지 않던 그녀였기에, 이러한 마지막 행동이 더욱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3장: 오기 스틴백

오기 스틴백은 영화 감독이었던 스탠리 큐브릭에게서 영감을 따온 캐릭터로 추정된다. 실제로 오기 스틴백의 장인어른 격으로 나오는 인물의 이름이 '스탠리 잭'이기도 하다. 또한, 밋지 캠벨과 비슷하게, 오기 스틴백의 '스틴백' 또한 그 이름을 실제 '스틴백(Steenbeck)'이라는 평판 편집기 제조사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영화 <파벨만스>에서 파벨만이 사용하는 영화 편집기가 바로 스틴백 제품이기도 하다.

오기 스틴백과 스탠리 잭.

그렇지만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기자 혹은 사진사로 표상되는 오기 스틴백이라는 인물을 창작하는데 참고한 것들은 왜 죄다 영화와 관련된 것들인가? 이는 아마 웨스 앤더슨이 자신의 모습을 오기 스틴백에게 투영한 것일 테다. 실제로 오기 스틴백의 원형인 스탠리 큐브릭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샤이닝> 등의 영화에서 완벽해 보이는 대칭 구도를 구현한 감독으로 유명했다. 웨스 앤더슨 역시 마찬가지다. 동화적인 색감과 강박적 수준의 대칭 구도를 자랑하는 것이 웨스 앤더슨의 영화이기 때문.

(궁금해서 인터넷을 좀 찾아보니 실제로 웨스 앤더슨과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화면과 타이포그래피 등을 디자인적으로 분석해둔 흥미로운 블로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https://slowalk.com/2361)


* 다른 인물들도 쓰고 싶은데 말을 너무 많이 하다(글을 너무 많이 쓰다) 보니 기력이 부족한 관계로 후에 여유가 되면 추가해 보겠습니다...


제3막 - 삶과 희망과 사랑

결국 이 영화는 러닝타임 내리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삶은 계속되고, 그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더라도 삶은 어찌 되었든 흘러가기 마련이다. 목적을 꼭 알아야만 그 모든 것이 제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며, 가끔 잘못된 것 같거나 하는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 잘 될 거라는, 혹은, 삶의 목적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을지도 모르지만, 웨스 앤더슨은 그러한 희망에 대해 지독하리 만큼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삶의 이유를 모르더라도 계속해서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를 보여주는 소재는 고장난 자동차 부품이 아닐까 싶다. 정비소 직원은 부품이 고장난 이유를 두 가지로 분류해 보려고 하지만, 오기 스틴백의 자동차 부품은 또 다른 문제를 갖고 있는 듯 보인다. 살아가며 경험을 통해 삶의 목적을 찾아 분류를 해내더라도, 결국 그게 정답일 가능성인 희박하다. 삶의 이유를 한두 가지로 정의내릴 수는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렇기에 극 초반부 이후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자동차 부품은, 오기 스틴백이 다시금 이 연극의 목적과 의미를 떠올리며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상자에서 불쑥 튀어올라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는 무엇보다 오기 스틴백이 이러한 목적과 이유를 알 수 없는 삶에 의문을 제기하는 가장 주된 인물이라는 점과도 연결된다. 등장할 때부터 오기 스틴백 역할의 배우인 존스 홀은 '왜 오기 스틴백은 버너에 일부러 손을 덴 것인가'라는 대사와 함께 등장한다. 후반부에 가서 애스터로이드 시티에 두 번째 격리령이 떨어졌을 때에도 오기 스틴백은 '오기는 대체 왜 손을 덴 것인가'하는 의문에 이어 '이 연극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말을 하며 무대 뒤로 뛰쳐 나간다. 그리고 바로 이때 고장난 자동차 부품이 다시 말썽을 부리며 등장한다.

스스로 버너에 손을 가져다 대는 오기 스틴백.

하지만 그렇게 연극(=삶)과 자신의 연기(=삶을 살아가는 것)의 의미에 의문을 제기하는 존스 홀에게, 극 연출가는 잘하고 있다는 말을 한다. '네가 오기가 된 것이 아니라, 오기가 네가 된 것 같다'며 말이다. 그래서인지,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아내를 연기한 배우와 베란다에서 마주할 때에도 그는 '내 아내를 연기한 배우네요'라고 하는 대신 '내 배우를 연기한 아내군요'라고 말한다. 존스 홀도 자신이 오기인지 존스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계속해서 삶의 이유와 목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존스 홀(오기 스틴백)이, 삶의 이유와 목적을 모르고 주어진 일을 해나가고 있을 뿐인 그가, 그의 일을 가장 잘 해나가고 있었다. 결국 이 지점이 웨스 앤더슨이 피력하고 싶었던 부분이 아닐까. 삶이라는 것은 그 이유와 목적을 모르더라도 잘 살아질 수 있고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를 보여주는 또다른 장치는 원폭 실험과 자동차 추격 신. 오기 스틴백과 아이들이 카페에서 처음 원폭 실험 소리를 들었을 때, 오기는 카페 주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만, 주인장은 별다른 설명 없이 '늘 하던 원폭 실험을 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쫓고 쫓기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자동차 추격 역시 마찬가지이다. 영화 속 그 누구도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를 내며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그 추격 장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특별한 의미가 없어도 지속되는, 그게 곧 삶이니까. 애스터로이드 시티라는 곳에서의 일상은 그러하다. 원폭 실험이 목적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지속되고 자동차 추격 역시 끊임없이 반복되는 와중에, 외계인과 소행성 약탈이라는 사건이 변주를 주기도 하지만, 어쨌든 애스터로이드 시티에서는 원폭 실험은 계속될 것이고 알 수 없는 추격전 역시 계속될 것이다. 그게 애스터로이드 시티이고, 일상이고, 삶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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