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근교(가와구치코, 하코네, 가마쿠라) 여행
도쿄 근교(가와구치코, 하코네, 가마쿠라) 여행
후지산을 만나러 가는 길, 도쿄 근교(가와구치코, 하코네, 가마쿠라) 여행 [4K]
벌써 몇 번째 일본 여행인지 모른다. 몇 번의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 쓰시마를 여행했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에서 든 생각은, 앞으로도 평생동안 일본에 오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도시 위주로 여행을 했다. 이번에는 그동안의 여행과는 조금 다른 계획을 세워보았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표는 멋진 후지산을 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도쿄에 도착했다.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해외여행을 하지 못했다. 우리를 맞아주는 읽을 수 없는 간판들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가 가슴을 뛰게 했다. 이번 여행에서 도쿄는 스쳐 지나가듯 잠시 머무를 뿐이다. 후지산을 품은 마을 가와구치코, 온천으로 유명한 하코네, 에노덴이 지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가마쿠라를 여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버스와 열차를 타고 긴긴 시간 이동을 할 예정이다.
첫 번째 행선지인 가와구치코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기대를 품게 한 곳이다. 겨울 후지산의 풍경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가와구치코 역에 도착하자마자 해발 3,776m의 후지산이 바로 등 뒤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가와구치코에서 이틀을 묵을 숙소, 아오이소에 도착했다. 자상하신 사장님이 우리를 방으로 안내해주시며 여러 가지 시설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방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자 창문 너머로 후지산이 마주 보였다. 거짓말 같은 풍경이었다. 우리는 짐을 풀지도 않고 가와구치코 산책에 나섰다. 빨리 조금이라도 더 후지산을 보며 걷고 싶었다. 마을은 조용했다. 사람 없는 거리를 걸어 가와구치 호수 방향으로 향했다. 호숫가에 자그마한 공원이 있었다. 그곳에서 구름을 살포시 덮고 있는 후지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일본의 시골은 한국과 비슷하진 않을지 걱정했더랬다. 이국의 낯선 정서를 충분히 만끽하지 못할까 봐, 어쩌면 도쿄에 더 오래 머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의 작은 마을만의 풍취가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준 곳 중 하나가 가와구치코의 작은 이자카야 탄포포였다. 우리 숙소 맞은편에 위치하여 저녁시간 우연히 방문하게 된 이자카야였는데 그곳에서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메뉴판이 없고, 사장님이 내어주시는 대로 먹어야 하는 곳이다. 우리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하니 생선구이를 내어주시며 뼈를 직접 발라다 센베이로 튀겨 주셨다. 그 외에도 직접 만드신 곤약사시미와 타코야키를 먹었다. 우리가 있는 내내 30년 넘은 가게의 에피소드를 풀어주시는 재미난 공간이었다.
날이 밝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 후지산을 보았다. 오늘은 구름에 덮이지 않은 후지산의 전체 모습이 보였다. 아오이소 사장님도 아침 식사를 내어주시며 어제는 우리가 온전한 후지산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갈까 봐 걱정하셨다며, 오늘은 날이 맑아 너무나 다행이라고 하셨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후 숙소를 나섰다. 날씨는 따뜻했다. 서울은 한파가 시작된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이곳은 코트 한 벌이면 따뜻하게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날이 푸근했다. 우리는 가와구치코의 명소 로프웨이를 타러 왔다. 관광객이 하나도 없는 듯 보였던 조용한 거리들과 달리 이곳은 사람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가와구치코에 온 관광객은 모두 이곳에 있는 듯했다.
높은 곳에 올라오니 후지산이 더 가깝게 보였다. 3,000미터가 넘는 산의 위용이 느껴졌다. 시야에 가려지는 것 없이 온전한 후지산의 모습을 마주했다. 다른 것 없이 후지산만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우리는 호수 반대편에 가보기로 했다. 호수 반대편으로 가면 호수와 후지산을 함께 볼 수가 있다. 후지산을 원 없이 보는 것이 좋았다. 걷는 동안도 후지산이 나타날 때마다 틈틈이 바라보느라 우리의 걸음은 자꾸만 느려졌다.
호수 반대편으로 가는 길에 지난밤 이자카야 탄포포 사장님이 알려주신 신사에 들렸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들로 가득한 신사였다.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나이 든 나무가 귀한 것 같다. 한 그루 서 있어도 감탄할 법한 크기의 나무들이 신사를 가득 채우고 있다니,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버텨 온 나무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호수 반대편에 오자 갈대밭을 만났다. 우리가 보고 싶었던 호수와 후지산의 모습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어 잠시 풀밭으로 내려갔다. 초등학교 때 크레파스로 그리던 산의 모습처럼 좌우 대칭의 삼각을 이루는 후지산과,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호수의 조화가 아름다웠다. 거대한 몸집과 달리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 후지산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오이시 공원까지 도착하고 나니 우리가 걸은 거리가 꽤 많이 되었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거리라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동안 지는 해를 따라 색깔이 변하는 후지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후지산은 시간마다 다양한 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침에는 푸른빛, 한낮에는 선명하고 짙은 색, 해 질 녘에는 보랏빛, 그리고 밤이 되자 어둠에 몸을 숨겼다.
이른 아침 숙소를 나와 하코네로 향했다. 중간에 버스가 연착되어 우회해서 오느라 고생을 했지만,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어르신들께서 자상히 우리를 챙겨주셔서 무사히 하코네까지 올 수 있었다. 하코네로 들어서자 풍경이 달라졌다. 아담한 나무와 정원들이 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담벼락에는 푸른 이끼들이 피어 있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숙소로 가는 길에 오와쿠다니를 들려서 먼저 보기로 했다. 곤돌라를 타고 하코네 산 위에 있는 오와쿠다니를 향해 올라갔다. 곤돌라가 분화구를 지날 때 유황가스의 냄새가 강하게 났다. 화산 분화구에서 유황가스가 끊임없이 분출되고 있었다.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분화구 너머에는 멀리 후지산이 보였다.
자그마한 열차로 옮겨 타고 숙소가 있는 역에서 내렸다. 우리는 료칸을 가지 않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독채 숙소를 예약했다. 작은 일본 집에서 살아보는 느낌을 가져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숙소에는 나무로 된 깊은 욕조가 있었다. 욕조에는 오와쿠다니의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나무 욕조의 깊이가 깊어 안에 들어가 앉으면 턱밑까지 물에 잠겼다. 그 따뜻한 느낌이 좋았다.
아침에 정원을 걸어보기로 했다. 자그마한 정원이지만 구석구석 정성을 담은 것이 느껴졌다. 이끼가 소복하게 자란 모습이 아름다웠다. 조금 일찍 와서 단풍이 든 모습을 보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작은 열차를 타고 또 한 번 이동을 한다. 다음 목적지는 가마쿠라. 가마쿠라는 두 번째 방문이다. 에노덴이라 불리는 열차가 바닷가를 달리는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다시 한번 가마쿠라를 찾게 되었다. 가마쿠라에 도착하여 에노덴에 올라타자 익숙함이 느껴졌다. 왔던 곳을 다시 방문하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지난 여행의 추억과 감상이 되살아났다.
가마쿠라는 에노덴이 풍경을 만드는 곳이다. 아기자기한 골목을 초록색 열차가 달린다. 지나는 차들도 여유 있게 옆으로 비켜주며 기다리는 곳. 가마쿠라에는 그런 여유가 있다. 열차를 타고 마을 풍경을 보다 보면 어느새 창밖으로 바다가 펼쳐진다. 탁 트인 풍경을 만나면서 내 마음도 시원해진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우리는 걸었다. 지난번에 가보지 못한 가마쿠라 대불상을 보러 가기로 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계속 걸었다.
저녁에는 에노시마 신사까지 걸었다. 숙소에서 다리만 건너면 바로 에노시마였다. 작은 산 위에 있는 이 신사에 오르면 가마쿠라의 야경을 볼 수 있다.
신사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비를 흠뻑 맞았다.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편의점을 찾아 먹을거리를 잔뜩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우리는 저녁마다 맥주 한잔을 마시며 그날그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도 역시 날이 흐렸다. 지난번 가마쿠라에 왔을 때는 쨍한 날씨였는데, 이번에는 흐린 날씨의 가마쿠라 바다를 바라보게 되었다. 잿빛이 감도는 가마쿠라의 풍경도 좋았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아서 잠시 바닷가 산책을 하고 열차를 타러 돌아왔다.
도쿄로 돌아오자 공기가 달라졌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며칠간 작은 마을에서 머물다 보니 어느새 북적이는 인파에 놀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양한 식당과 카페가 있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는 도시를 산책하기로 했다.
우에노 공원 안에 있는 서양미술관에 왔다. 전시보다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물이 궁금하여 방문하였던 미술관이었다. 하지만 풍부한 소장품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정도의 소장품을 상설 전으로 하고 있다니 놀랍기도 했다. 작품이 너무 많아 작품 간의 간격이 촘촘했다. 기대하지 않고 갔던 전시에서 오히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왔다.
저녁에는 쇼핑을 하고 비건 식당에 가서 버거를 먹었다. 도시에 오니 채식을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HEALTHY JUNK FOOD라는 재치 있는 문구가 벽면에 적혀 있는 개성 있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롯폰기 힐즈까지 걸었다. 숙소가 위치한 하마마쓰초에서 롯폰기 힐즈 까지는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도쿄타워를 바라보며 도쿄의 밤거리를 걷는 기분이 좋았다. 롯폰기 힐즈에는 반짝이는 일루미네이션이 설치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도쿄에서의 시간도 마무리되었다. 공항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언제나 아쉬움 가득하다. 이번 여행은 유난히 다채로웠다. 이동 시간이 많긴 했지만 도쿄 근교의 도시들을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이 좋았다. 비슷비슷하면 어쩌지, 계획을 세우며 걱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가 들린 도시들은 하나하나가 개성 있고 완전히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두 다녀보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런 작은 도시들을 여행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에는 앞으로도 계속 여행 오겠구나 싶었다.
300mm - https://youtu.be/vF2r7Sz_eG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