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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사공 Jul 18. 2023

바다, 잔디, 노을

인천 덕적도 백패킹

긴 겨울이 끝났다. 겨울 동안 백패킹을 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멘 가방의 무게가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는 가까운 인천의 섬 덕적도를 올해의 첫 백패킹 장소로 정했다.


동인천 역에 내려 비건 식당으로 갔다. 칠리가지와 파스타 두가지를 시켜 먹다가 남은 음식은 저녁에 먹을 참으로 포장을 했다. 시간이 빠듯해 택시를 타고 인천항으로 이동하면서 익숙한 인천 풍경을 만났다. 곧 배를 타고 떠난다는게 실감이 났다.

이때만해도 몰랐다. 날씨로 인해 돌아오는 배가 뜨지 않을줄은. 우리는 덕적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소야도에서 둘째밤을 보낸 후 돌아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소야도는 방문하지 못하게 되었다. 파도가 높아 배가 이틀동안 뜨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항상 편하게 섬을 다녀왔던 터라 섬 여행의 성공 여부는 파도의 기분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몰랐다.


배에서 내리면 항구에 버스 3대가 서 있다. 기사님께 물어 제일 앞에 있는 서포리 해수욕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서울보다 조금 쌀쌀했던 인천 날씨 덕분인지 이곳은 벚꽃이 이제야 만발해 있었다. 벚꽃 구경 시기를 놓쳐서 아쉬웠던 차에 활짝 핀 벚꽃나무를 만나니 반가웠다.


서포리 해변에 도착했다. 솔직히 덕적도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온 섬이었다. 그저 평범한 해변에 야영지가 있는, 그저 그런 어디에나 있을 법한 바닷가의 모습일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포리 해변에 도착했을때 펼쳐진 풍경은 기대 이상이었다. 조용한 바닷가 모래밭에 귀엽게 푸른 잔디가 돋아 있었다. 잔디와 바다가 잘 어울렸다. 바다 앞에 펼쳐진 모래사장에 잔디가 자라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나. 기억은 나지 않지만 풍경이 아름다웠다.

풀이 자라 있긴 하지만 땅은 여전히 모래밭이었다. 팩이 박힐 정도로 단단한 땅은 아니었다. 우리는 텐트를 고정하고 근처에 돌덩이들을 가져와 팩을 눌러 고정했다. 오랜만에 나온 터라 텐트를 치는 순서도 헛갈렸다. 우리는 뚝딱거리며 텐트를 쳤다.

해변에 부서지는 파도가 예뻤다. 불규칙한 곡선을 그리며 오가는 파도의 모습을 바라봤다. 바다가 내는 소리도 좋았다. 이걸 보러 바다에 오는거지 싶었다. 파도가 부서지며 일어난 거품이 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해변에서 조금 걸어나오면 편의점이 있다. 그곳에서 내일 아침 먹을 씨리얼과 두유를 사고 젓가락을 몇 개 챙겨 왔다.


해가 노란빛을 띄며 조금씩 넘어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포장해 온 음식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사이 하늘은 점점 더 노을 빛으로 물들었다. 해는 부끄럼타는 새색시처럼 우측에 있던 자그마한 언덕을 넘어갔다.

해가 지고 텐트 안에 누우니 조용한 바다, 파도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누워있다 텐트 밖을 빼꼼 내다 보니 밤하늘에 별이 설탕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우리는 잠시 밖으로 나와 별자리를 찾고, 별의 이름들을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새카만 하늘을 보러 우리는 자연에 나온다.


밖은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추웠지만. 침낭 안은 포근하고 따스했다. 우리는 핫팩을 몇개 터트려 그 온기에 의지하면서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자고 있는 동안 옆에 계시던 분들께서 우리를 깨워주셨다. 오늘 오후에는 배가 뜨지 않는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쌌다. 소야도에 가는 것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텐트에 묻은 모래도 제대로 털지 못한채 가방에 짐들을 우겨 담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손을 재빠르게 놀렸다. 우리는 섬에 올 때에 2박 3일 일정으로 오는 경우가 많았다. 멀리까지 배를 타고 왔으니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섬의 모습들을 더 천천히 눈에 담고 오고싶어서였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꼬리가 잘려나간 것 처럼 허겁지겁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눌러 담고 인천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덕적도는 다음에 한 번 더 와보자고 이야기 나누며 집으로 향했다.

                    


300mm - https://youtu.be/jnmi-zqWqJ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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