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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조셉 Feb 20. 2022

그대는 꽃봉오리 같다

언니가 지금 말년 계장이라 해서 언니 인생이 말년 계장인 것은 아냐. 

아는 언니 중에 꽃다운 얼굴에 말재주가 좋은 언니가 하나 있다. 

젊었던 시절 영국에서 공부할 때 지금의 프랑스 남편을 만나, 파리에서 20분 떨어진 작은 동네에 주택을 장만해서 아들 하나 키우며 잘 살고 있다. 유독 나이 이야기에 민감한 언니는 늘 내게 본인은 나이 50을 앞두고 있는 (회사에서 더 승진할 길 없는) 말년 계장이라 했다.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갈 줄 몰랐어.
난 지금 내 나이 즈음에는 아주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 줄 알았어. 
뭔가 화려하고 누구나 바라봐도 범접할 수 없는 멋진 그런 여자 있잖아. 

 

커리어 우먼.... 회사 영업 전략과 마케팅 회의에 잦은 외부 미팅에 일주일마다 있는 외국 출장 - 그리고 H 라인 스커트에 머리카락 한 올도 용납치 않는 단정한 올림머리, 은은한 향수 냄새가 나는 카리스마 있는 커리어우먼.

나도 8cm 힐을 신고 정장 차림으로 바쁘게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워커홀릭 엄마를 가끔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런 커리어우먼 엄마는 현실에서 참으로 찾기 쉽지 않다. 

재택이 일상인 요즘에 한 달에 두 어번 정도 회사를 나가야 할 일이 생겨 아침부터 화장을 하고서 눈을 희번덕 뜨고 마스카라를 열심히 덧칠하고 있으면 두 아들이 나를 멀뚱멀뚱 쳐다본다. 아침부터 늘 있는 그런 흔한 광경이 아니라서 마치 원숭이 쇼 구경하듯 한 참을 그렇게 나를 바라본다.


결론적으로, 난 그런 커리어 우먼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상상 속에서 그려봤던 그런 커리어 우먼은 아니다. 힐은 안 신은 지 오래되어 힐 코 앞이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채로 박스 한가득 창고에 들어앉아 있고 회사에서 잦은 회의는 있다 하더라도 18시 땡 하면 마치 신데렐라 마법이 풀린 것처럼 나는 어느새 아이들 저녁밥을 준비하는 엄마로 돌아와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중요 직책을 맡거나 계속 살아남으려면 야근은 기본이고 회사에 충성심을 다해 본인의 열정을 어필해야 될 텐데 나는 언제부턴가 그러질 못했다. 

출산을 하고 두 아이 육아를 하다 보니 그런 것이 더더욱 어려워졌다. 

나도 한 때는 영업직이었을 때, 회사를 아침 7시에 출근하기도 하고 매출 & 영업에 관한 온갖 서류를 다 집에 가져와서 밤낮으로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회사의 목표가 곧 나의 목표이기도 하고 내가 온 힘을 다해서 영업을 해서 실적이 잘 나오면 세상을 다 얻은 거 같던 그런 때가 있었다. 그러나 회사와 나를 하나로 빙의하던 그때 위장병이 오기 시작했고 서른을 앞둔 시점에 내게 인생의 중대 고민이 시작되고, 그렇게 어린 영업 사원의 꿈은 한차례 일단락되었다.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인 내게 회사를 바라보는 것이 많이 달라졌다. 

내 상황도 그리고 내 생각도, 내 목표도.  

내가 아이를 낳고 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엄마 Job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이 유일한 조건이었다. 그래서 똑 부러지는 연봉협상 그리고 나를 뽑으면 회사에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에 대해 많이 회사에 어필하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아이를 낳고 나서 그간 다녔던 회사는 어떻게 다 이래저래 그 조건이 충족이 되었다. 

전에 다녔던 (대기업) 회사에 하늘과 같은 사장님이 미국에서 파리로 오시는 일정이라 모든 직원이 다 일주일간 긴장의 연속이었다. 사무실 청소는 물론이고, 사무실 기기 점검, 건물 보안팀 연락 그리고 사장님이 즐겨 드시는 차 및 초콜릿 구비 등 점검 및 체크를 하고 또 해야 했다. 우리 본부장은 이태리 분이었는데 그 주에 사장님 의전으로 눈코 뜰새가 없었다. 사장님의 매시간 일정 동선 파악은 물론이고 3박 4일 동안의 미팅 일정 모든 것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완벽하게 Plan B까지 짜두었지만 때론 사장님의 지시로 막판에 일정이 바뀌는 일도 적지 않았다. 

마지막 날 일정에 사장님이 예정에 없던 미팅이 사무실로 잡혔고 그날 따라 차가 막혀서 인지 오시기로 한 시간이 계속 늘어지고 있었다. 18시가 넘어서야 사장님이 도착하셨다는 통보가 왔다. 본부장은 사장님 운전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서 차로 대기를 하라고 내게 전달을 하라고 지시하고 사장님께서 건물 안을 들어올 때 보안 검사를 바로 통과할 수 있도록 건물 reception에 연락을 바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주문이 또 이어졌다. 나는 내려가는 길에 reception에 얘기를 해두겠다고 했고 사장님 운전기사는 본부장님이 직접 바로 연락하시라고 전하고 나는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지금 바로 퇴근을 하겠다고 했다. 그 사람도 나를 한 2-3 초 빤히 바라보긴 했어도 이내 체념한 듯 그러라고 했다. 

더 남아서 사무실에서 사장님 미팅이 끝날 때까지 standby 했어도 사장님의 눈도장외에 내가 별 달리 할 일이 없거니와 사장님이 오시는 일정 바람에 그 주 동째로 이미 야간 근무를 했던 터여서 나는 나름 항변할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본부장이란 사람이 그 다음 날 내게 업무지시 불이행이라 하지도 않았고 나의 인사 점수가 이로 인해 깎였다던가 그렇지도 않았다. 

아마도 좋은 Director를 만난 덕분이거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일을 대충 하거나 열정 없이 일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는 억 단위로 연봉받는 사람들은 그만큼 회사에 충성도를 보이면 되고 나는 내가 받은 만큼 뚝심 있게 일하면 되는 거다. 가끔 회사 내 유명하고 잘 나가는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저녁 8-9 넘어서까지 미국과 통화를 하느라 아이들이 눈앞에 있어도 같이 놀아줄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한 달 걸러 출장이 잦은 그는 회사 내의 명성이나 업무나 성공의 가도를 가고 있는 듯해 보였다. 나는 그런 그가 한 번도 부럽다거나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통장에 꽂히는 액수가 각자 다른 긴 하더라도 아마도 그것은 각자가 선택한 것에 따른 결과일 거다. 또는 인생에 있어 어디에 더 가중치를 두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고.  


나도 언니처럼 나이가 들면 아마 말년 계장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어떠랴, 

그 사람 회사 직책이 말년 계장으로 끝났다고 해서, 누구나가 꿈꾸던 멋진 커리어 우먼이 아니었다 해서 그 사람 인생마저 말년 계장인 것은 아니다. 

나는 홀로 자책하는 언니를 바라보며 지금도 충분히 멋있다고 얘기해주었다. 그리고 50을 바라보는 나이, 인생이 아직 끝난 것도 아니므로 언제든 어떤 방법으로든 도전하고 또 꿈꾸어도 다른 길이 얼마든지 펼쳐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계속 어느 방향을 향해 가느냐이다. 



나는 나이가 들면 엔틱  가구를 가져다가 리폼하는 일을 한 번 해보고 싶다.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들일 가구를 한참 찾아보다가 옛날 가구를 리폼하는 유튜브를 보게 되었는데 아주 번득이는 아이디어인 거 같았다. 뭔가 뚝딱거리는 일 무언가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마음속에 있었는데 그것을 지금 업으로 삼기에는 아이들도 어리고 돈도 벌어야 되는 가장의 무게가 있으므로 당장에 실현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들 어느 정도 크고 나면 프랑스 곳곳 벼룩시장을 돌며 가구를 헐값에 사다가 예쁜 천을 덧대거나 깨끗하게 색깔별로 칠도 해보고 이런 리폼 쪽 일이 괜찮을 것 같다. 

아니면 늘 마음속에 꿈꾸고 있는 옷을 만드는 일을 계속해도 될 것이고. 

인생은 짧고 참으로 할 일은 많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꼭 꽃이 활짝 피어야만 아름답다 할 수 있을까 

한가득 맺어 있는 꽃봉오리도 충분히 아름답다.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지 못하고 시들시들해져도 괜찮다. 

누가 뭐라겠는가. 

그도 역시 하나의 화려한 꽃이었단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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