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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나라의앨 May 22. 2022

시간을 삽니다

시간의 가치에 대하여



어른들이 ‘시간이 돈’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 사실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만큼 시간이 귀하다는 의미 정도로 짐작했을 뿐 실제로 둘의 가치에 값을 매겨본 적도, 그 무게를 달아본 적도 없었다.


젊은 날의 내게 시간은 그저 주어진 것이었고 난 그 시간을 어떻게 하면 버리는 시간 없이 알차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느라 바빴다. (그래서 스무 살 때 내 다이어리는 학교 수업은 물론이고 동아리 활동과 대외활동, 아르바이트, 그리고 개인 약속으로 가득 차있었다. 단 하루도 비어있는 날 없이 꽉꽉 채웠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돈을 버는 일이 아니더라도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여겼다.




세월이 흘러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프리랜서 통번역사로 살아가고 있는 2022년의 나는 요즘 시간이 곧 돈이라는 공식을 실감하고 있다.


일단 두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엔 내가 하고 싶은 일 또는 해야 할 일을 못한다. 집안일이 됐든 경제활동이 됐든 일을 하려면 남편이나 양가 부모님이, 어린이집 선생님, 이모님 등 누군가는 아이를 봐줘야 한다. 그게 다 돈이다.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써야 하는 아이러니.)


어디 그뿐인가. 누군가가 약속된 혹은 정해진 시간만큼 아이를 봐주는 동안 난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알뜰하게 잘 써야 한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집중하기가 쉽지 않아서 카페에서 일하곤 했다. 커피값, 자릿세 내고 집중하면 그걸로 본전이지. 그런데 최근엔 그 마저도 옆 테이블 손님에 따라 집중을 못할 때도 있어서 스터디 카페로 향한다. 역시나 돈이다.


최근에는 국내 출장을 몇 번 갔는데 이전과는 다른 기준으로 결정을 내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전에는 급하게 시간에 쫓겨 이동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집에서 기차역까지, 또 공항에서 행사장까지 버스 타고 이동하며 사람 구경, 바깥 구경하는 걸 선호했는데 이제는 십중팔구 택시를 탄다. 이동 중에 소소한 업무를 처리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해서 일을 하기 위해서다. 다음 날 컨디션을 위해 빨리 숙소에 가서 잠을 자고 쉬기도 한다. 또, 이전에는 다른 지역으로 출장 가면 일 마치고 맛집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맛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면 이제는 맛집 검색하고 찾아갈 에너지도 시간도 없다. 주변에서 눈에 띄는 곳에 들어가 간단히 끼니를 때우거나 호텔에서는 룸서비스로 저녁을 해결한다.




이런 나를 보며 순간 내가 돈을 너무 쉽게 쓰나, 사치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건 단순히 돈을 더 쓰고 덜 쓰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돈은 없고 시간이 많았던 스무 살 때와는 정반대로 지금의 나는 돈은 더 벌지만 시간이 없다. 그래서 돈 주고 시간을 산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현대인, 특히 맞벌이 가정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워킹맘으로 살며 온전히 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일과 육아와 집안일에 시간을 쓰고 나면 ‘미타임’을 갖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한창 손이 많이 가는 두 아이를 보고 밥 해서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고 내 잠을 줄여가며 일해야 하는 현실. 또, 밖에서 일하고 집에 도착하는 순간 바로 육아가 시작되어 치열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아이들이 잠들면 같이 쓰러져 잠이 들곤 한다. 그래서 어쩌다가 시간이 나면 잠 보충부터 좀 하고 싶다. (첫 출산 후 4년째 만성 수면부족…)


돈을 아끼고 모으는 것, 중요하다. 지금도 한 달치 가계부를 정리하며 어느 항목에서 조금 더 아껴볼 수 있을지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일할 때만큼은 점점 돈 보다 시간을 아끼게 된다.


현실을 핑계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어느 정도 포기한 채 편의와 효율을 따지는 다소 무미건조한 어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다. 하지만  9개월 배기 아기와 42개월 어린이가 있는 지금은 그 정도의 희생과 열심이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의 이야기다. 나도 남편도 여전히 꿈을 꾸며 꿈 안에서 살아가는 이상주의자이자 낭만주의자다.


나의 치열한 하루 속에서 시간을 아껴 먼저 나 자신을 조금 더 아끼고 사랑할 시간을 확보하고 싶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 잘 먹고 짧아도 깊은 잠 푹 자며 체력을 쌓기. 그리고 일 외에 내가 좋아하는 찬양, 바이올린, 독서, 운동, 친구들과 수다 조금씩 하기. 그래서 사랑하는 내 가족과 보내는 진한 시간을 더 양질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 내가 더 행복하게 에너지 넘치게 아이들과 살을 맞대며 깔깔깔 배꼽 잡고 웃는 시간을 더 많이 쌓아갈 수 있기를.


(돈을 벌기 위해 돈을 쓴다지만 결국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나 자신을 위한 시간, 그리고 가족과의 시간을 벌기 위한 몸부림이구나.)




지난 한 주간은 친정에 머물며 시간을 샀다. 두 손주와 딸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함께 해주신 부모님께 너무 감사해서 맛있는 밥도 사드리고 마음먹고 푸짐하게 요리도 한 번 했다. 이걸로는 턱 없이 부족하고 여전히 내가 드리는 것보다 받는 게 훨씬 더 많지만… 이렇게 또 시간을 확보해서 잠도 좀 자고 그간 미뤄왔던 병원 투어도 하고 틈틈이 일도 했다. 진정 나의 어벤저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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