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그와 그녀가 만났다.
천오백 광년 떨어진 두 행성이 커다란 궤적을 그리다 스친 것처럼 우연한 사건이었고,
어쩌면 예측할 수 있는 결과였다.
바람과 체온과 아직 오지 않은 계절만이 그들의 몸이었다.
발이 닿는 곳마다 1도씩 기울었다. 그들은 비스듬한 계절을 절룩이며 걸었다. 불완전한 몸이었기에 더없이 행복했다.
길에서 만난 낯선 행인들의 표정처럼 시간이 지나갔다.
그녀는 노래를 부르고 싶어 시를 쓰고 싶어 장막 뒤에서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여행을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시를 쓰고 싶어서,
아프리카로 지붕으로 사막으로 다른 누군가의 행성으로 떠났다, 혹은 다른 누군가를 그녀의 행성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그녀는 낡은 극장에서 페도라를 쓰고 춤추는 늙은 여배우의 표정 같았다.
그 즈음 그는 자주 발밑을 내려다봤다.
한 발로 땅을 툭툭 찼다.
여전히 경사 위에 서 있는지, 그녀의 여행이 정말 이제야 시작된 건지, 언제쯤 그녀가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쓸 수 있을지 궁금했다. 그 계절 그는 매표소 직원의 졸음처럼 자주 미끄러졌다. 오래전 감아둔 태엽인형처럼 여름이 걸어갔다.
툭,
세상의 첫 낙엽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그 낙엽의 궤적이 지휘자가 휘두르는 봉의 동선으로 살아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를 떠나지 않았을까.
시를 쓰고 싶어 노래를 부르고 싶어……
긴 한숨처럼 어둠이 드리운 저녁, 오래된 노래가 흐르는 선술집에 앉아 고개를 젖혀 소주를 들이키는 그녀의 목덜미를 본 순간 그는 이별을 직감했다.
모든 예감은 해독된 언어의 속도로 찾아왔기에 그는 침묵했다.
그녀는 안녕, 이라고 적힌 명찰을 잠시 달았다 뗐다.
나는 좋지 않은 기억은 잘 잊는 편이에요, 그러니 당신도.
그녀가 웃었다.
지나간 유행가가 끝날 때, 그녀도 침묵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이미 끝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시 따위는 절대 쓰지도 읽지도 않겠다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들은 적 있는 노래처럼 가을이 흘러갔다. 이름 모를 동창생의 어색한 인사처럼 겨울이 잠시 주춤했다 다시 걸어갔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 길게 이어진 수족관 풍경처럼 지나갔다.
다시 꽃 피는 계절이 찾아와 눈부신 환멸의 기억들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가끔 길을 걷다 날카로운 기억에 조각난 시간을 지뢰처럼 밟고 서 있기도 했다.
그 계절은 그렇게 종종 오래된 기억을 주고 시간을 끊어 가져갔다.
불완전한 그 계절은 조각조각 잘려 완벽해졌다.